여성의 안전 ‘앗아버린’ 관악구의원, 성범죄는 우연이 아니다[플랫]
‘전국 최초 여성안심귀갓길 폐지’ 홍보
구의회 홈페이지엔 사퇴 촉구 글 ‘빗발’
“다시 한번 말해봐라. 여성들의 공포감이 피해망상인지.”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삼은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 이후 정치권을 향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한 각종 젠더 갈등 이슈를 대선 공약에 내걸어 갈등을 조장한 정치권의 책임이 작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일각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자극해 표심을 얻고 의정활동을 벌이는 지역·청년 정치인에 대해서는 사퇴 촉구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20일 서울 관악구의회 홈페이지 참여마당 ‘의회에 바란다’ 페이지에는 최인호 국민의힘 관악구의원(22)의 사퇴를 촉구하는 게시글이 이날 오후 4시 기준 738건 올라왔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 피해자가 전날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성안심 귀갓길 전면 폐지’와 ‘불법촬영 감시 예산 삭감’ 등을 공공연하게 추진해온 최 의원을 비난하는 여론이 빗발친 것이다.
최 의원은 지난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중 최연소인 만 20세에 관악구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지난해 12월 유튜브 채널 ‘성평화 최인호’에서 “관악구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안심귀갓길 없어진다”고 의정활동을 홍보했다. ‘페미니즘은 성파시즘! 여성단체, 성인지예산, 여성가족과 폐지하라!’ 제목의 자유발언 영상도 올렸다. 지난해 3월 구의원 예비후보 시절에는 “대한민국은 몰카천국이 아니고, 남성들의 강간 카르텔이 만연하지도 않다. 오히려 치안이 좋고, 객관적으로 굉장히 안전한 나라다”며 “관악구에서 불법촬영 감시 및 점검을 위해 사용하는 예산 6412만원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구의회를 통과한 ‘2023년 관악구 예산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1억1980만원 책정된 ‘함께 든든한 여성안심마을 조성’ 예산이 올해는 전년 대비 5665만원(47.3%) 삭감된 6315만원 편성돼 있다. 1년 새 반토막이 나버린 셈이다. 지난해까지 관악구에 편성됐던 ‘여성안심귀갓길’을 표시하는 표지병(보도조명)과 프로젝터 설치 예산은 아예 사라졌고, 운영비와 홍보물제작비도 전년 대비 100만원 줄어들었다. 최 의원은 “여성안심귀갓길 관련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구민 전체 안전을 위한 안심골목길 사업액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관악구에서 안심골목길 사업을 맡고 있는 주무부서는 여성 안전·치안과는 거리가 있는 도시재생과로 지정돼 있다.
구의원 사퇴를 촉구한 시민들은 여성 폭력에 대한 최 의원의 왜곡된 인식과 그에 기반한 의정활동이 관악구에서 발생한 등산로 성폭행 살인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 관악구민은 이날 관악구 홈페이지에 “여자들이 몰카 및 성범죄 피해에 공포심을 느끼는 걸 피해망상으로 몰아가면서 여성안심귀갓길, 불법촬영 방지 예산을 삭감 계획을 자랑으로 떠들고 다닌 결과, 관악구 신림 치안은 완전 박살 났다”며 “어제도 무고한 여성분 한 분이 목숨을 잃었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관련 예산 다 없애자고 한 게 누구였냐. 양심 있으면 사퇴하라”고 비난했다.
📌[플랫]“CCTV 없는 것 알고” 성범죄 저지른 가해자, 둘레길이 범행장소로
또 다른 시민은 “(최 의원처럼) ‘관악구에서는 최초로 여성안심귀갓길이 사라집니다’라는 홍보영상을 퍼트리면, 범죄자들이 ‘범죄 저지르기 쉽다’ 생각해 일부러 찾아올 것”이라며 “구의원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재조명되길 바라며, 관악구의 안전 행보도 바뀌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최 의원 유튜브 채널 댓글창에도 “살다 살다 페미니즘 싫다고 지역구 주민들의 치안과 안전한 귀가까지 앗아버리는 인간을 다 보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때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서 이대남 표를 얻은 게 시작” 등의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최 의원은 2019년 자칭 ‘성평화 동아리’인 ‘왈리(WALIH)’가 없어지게 된 상황을 SNS에 올리며 이른바 ‘인헌고 사태’를 주도했다. 당시 해당 동아리는 성평등 의식을 왜곡하고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를 담고 있다는 학내 비판이 제기되면서 폐쇄 수순을 밟았다.
같은 해 최 의원은 자신의 유튜브에서 “여성이 성범죄를 더 많이 당할 수밖에 없다. 여성이 당해야 마땅하다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다”며 “여성의 공포감은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어디까지 실재하고 어디까지가 피해망상인지 확실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라고 발언해 문제시됐다. 2021년에는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 캠프에서 청년본부 양성평등특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지냈다.
이재명 대선 후보 청년특보 출신 김홍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자문위원(33)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김 자문위원은 전날 “서울 한복판에서 여성이 성폭행 당한 후 사망했는데 정치권이 너무 조용하다”며 “정치인이 연관된 뉴스에는 수도 없이 나오던 여성단체가 이번 사건에는 모두 자취를 감췄다. 정치적으로 얻을 것이 없어서 침묵하는 거냐”는 글을 올렸다. 이를 두고 SNS에는 “한 여성의 죽음을 이용해 사실 왜곡으로 혐오팔이 해서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냐”와 같은 비판이 쏟아졌고, 이에 김 자문위원은 해당 글을 삭제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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