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이미 다가온 미래, 뉴 모빌리티 시대
매년 4월이면 미국 뉴욕시에서는 부활절 퍼레이드가 열린다. 1900년대 초로 돌아가 보면, 당시에는 주된 이동 수단인 마차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난 같은 행사에서는 자동차로 뒤덮였다. 1908년 포드가 개발한 '모델T'가 비용 절감과 대량생산으로 대중화에 성공한 영향이 컸다.
수천 년간 지속돼온 마차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은 당시 혁신적인 모빌리티인 자동차가 본격 확산되는 티핑 포인트(변곡점)에 도달한 지 불과 수년만이었다.
◇모빌리티, 움직이는 모든 것
모빌리티란 사람이나 사물의 이동을 돕는 각종 수단을 의미한다. 자동차·철도·선박·소형 운송장치(전동휠체어·전동카트 등)와 같은 움직이는 모든 것이 해당된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이 결합되며 교통체계·운송수단·배송방식 등 이동성 전반을 혁신하는 수단으로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자율주행차·로봇·도심항공교통(UAM)·무인 무기체계 등이 대표적이다.
미래 모빌리티는 인간의 생활 방식과 도시구조, 산업 지형 등 인류의 삶 전반에 거대 변화를 일으키는 혁신 동인이 될 것이다.
자율주행 기능이 더해지며 더 안전해지고 교통 약자의 이동성도 개선되고 있다. 또한 첨단 모빌리티 수용을 위해 제반 인프라가 지능화 기반으로 바뀌며 도시는 첨단 디지털 시티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모빌리티는 초고령화 시대의 인력난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무인화·지능화 기반의 무기체계가 확산되며 국방력 강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모빌리티의 등장은 제조·서비스 등 산업 분야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지구온난화 문제와 디지털 기술 발전을 고려하면, 미래 모빌리티 진화 형태는 '전기전동화'와 '자율화·무인화' 두 가지 방향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를 견실히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핵심 지원기반과 산업생태계, 사회적 수용성이 제고돼야 한다. 이 중 한 가지라도 결핍된다면 혁신적인 모빌리티가 사회에 착근하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미래 모빌리티, '전기전동화된 자율행동체'로 진화
배터리·충전 등 기술이 발전하며 전기전동화를 위한 기술적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충전 시간이 빠르며, 수명이 길고 안전성이 담보되는 방향으로 배터리 기술이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연기관의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구동장치 또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먼저 상용화됐음에도 기술적 여건이 미비해 사장됐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더 나아가 지금 세계는 탄소중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봤을 때 미래 모빌리티 에너지원으로서의 '전기전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미래 모빌리티가 가지게 될 자율행동 능력은 인간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핵심은 두뇌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AI)에 있다. AI 도움으로 자율행동에 필요한 인지·제어·판단 등이 가능하게 된다.
최근 챗GPT와 같은 언어모델이 이미지 모델로 확장됨에 따라 시각인식 기술의 도약이 예상된다. AI와 함께 또 하나의 핵심기술이 센서다. 인간이 감각 기관을 활용해 인지하며 움직이듯이, 센서는 위치, 속도·방향, 장애물 등을 인식헤 측정하는 역할을 한다. AI와 센서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모빌리티의 '자율화·무인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를 움직이는 핵심, 반도체와 SW
첨단 모빌리티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측위·인지·판단·제어 등 다양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핵심부품이 바로 '반도체'다. 기존에는 반도체 활용이 전자제어·동력제어 등 일부 기능에 국한됐다. 하지만 미래 모빌리티에서는 자율기능과 안전 제어, 인포테인먼트와 같이 운행 전반에서 활용된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과 비례해 반도체 수요와 기술적 요구수준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미래 모빌리티는 '반도체의 집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에 결합돼 통합제어와 콘텐츠 구동, 타 기기 연동을 담당하는 핵심기술이 '소프트웨어(SW)'다.
무엇보다도 SW 업데이트만으로도 모빌리티 기능을 크게 향상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마치 스마트폰이 운영체계 업데이트만으로도 문제점이 개선되고 새로운 기능을 갖추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모빌리티는 활용되는 기능이 훨씬 많기에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모빌리티 기업이 앞다퉈 SW 중심으로 전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모빌리티 안전과 교통 효율을 증대하는 수단으로 5G·위성통신과 같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네트워크는 단순히 운행 정보를 수신하는 수준을 넘어 모든 기기가 통신하며 안전한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UAM 상용화를 위해서는 상공망과 같은 통신 인프라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한편, 모빌리티가 자율적으로 구동되기 위해서는 대용량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물체를 감지·분류해 모빌리티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데이터 양과 비례해 주행 정확도와 안전성이 향상된다.
이뿐 아니라, 수집된 데이터는 모빌리티 호출 플랫폼, 모빌리티 진단, 교통 분석 등 다양한 서비스로도 활용될 수 있다.
◇모빌리티를 둘러싼 서비스·플랫폼·콘텐츠 생태계
자율주행이 일상화되는 미래에는 모빌리티에 대한 소유 개념이 퇴색될 것이다. 이는 모빌리티 생태계가 제조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필요할 때 빌려쓰고, 안 쓸 때는 빌려주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이용요금의 하락을 유인하면서 모빌리티를 활용한 공유경제·구독경제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유·연계 '플랫폼'도 함께 발전할 것이다. 버스·택시·철도·공유 자동차 등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가 상호 연계될 수 있어야 한다.
이용자 또한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모빌리티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론 모빌리티 플랫폼 간의 혁신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미래 모빌리티는 단순한 운송수단이 아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동하는 중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가상 게임, 화상 회의, 디지털 교육 등 다양한 '콘텐츠' 활용이 가능해진다. 모빌리티 발전이 콘텐츠 확산을 촉진하고, 이는 다시 모빌리티의 편의를 증대하는 선순환이 기대된다.
이렇듯 미래 모빌리티는 제조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플랫폼, 콘텐츠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산업영역에 걸쳐 있다. 따라서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성하는 전·후방 산업 모든 혁신 주체들 간의 긴밀한 협업은 필수다.
◇사회적 수용을 높이는 안전과 규제개선 그리고 윤리
미래 모빌리티가 기술적으로 구현되더라도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특히 UAM과 같은 모빌리티는 안전성 담보가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혁신적 모빌리티 쇠퇴를 가져온 '여객비행선 폭발 사고(1937년)'와 같은 사례를 거울삼아야 한다. 미래 모빌리티의 안착 여부는 안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자동차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함으로써 영국 자동차 산업 발전을 지연시킨 '적기조례법(Red Flag Act·1865년)' 사례는 유명하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혁신적 모빌리티 확산을 저해하는 법·제도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더불어, 인프라 확충 과정에서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규제적인 요소는 선제적으로 해소해야 할 것이다.
윤리적인 이슈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군사용 킬러 로봇의 위험성이나 자율주행 사고 발생 시 판단기준 등에서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윤리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오용 방지, 사람 우선 등 법·제도 정비를 통한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편, 신규서비스가 도입되는 과정에서 신규 진입자와 기존 사업자 간 이해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신규 진입자는 이용자의 편의성을 강조하나, 기존 사업자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고 맞설 수 있다. 양측 모두의 합리적인 입장과 논리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해충돌 문제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도래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역사의 판을 바꾸는 모빌리티의 대변혁에 저항해서도 지연해서도 안 된다.
헨리 포드의 명언이 있다. “만약 내가 빠른 이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봤다면, 사람들은 더 빠른 마차라고 답했을 것이다.”
기존 방식에 얽매여서 빨리 달리는 마차만을 추구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철저하고 기민한 준비로 미래의 모빌리티 시대를 대한민국이 주도해 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esbjun@iitp.kr
〈필자〉전성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1991년 체신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30년 동안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두루 요직을 섭력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전파정책국장과 대변인, 과기정통부 출범 이후에는 통신정책국장과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한 정보통신기술 전문가다. 2021년 1월 IITP 원장으로 부임, 30년 동안 축적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네트워크와 경험을 바탕으로 ICT 연구개발(R&D)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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