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별자의 나라][한겨레21×한국심리학회 공동기획] 20대에 자살 사별을 겪은 김세연, 황웃는돌씨가 겪은 고통… ‘OECD 자살률 1위’지만 자살사별자 생존엔 무관심한 사회
한국에선 하루 평균 36.6명이 자살한다(2021년 기준). 365일이 쌓여 매해 생기는 한국의 자살자 수는 1만3천여 명이다. <한겨레21>과 한국심리학회는 공동기획을 통해 ‘자살 사별 경험’에 주목하기로 했다. 전국 성인 남녀 2003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관계 내에서 자살 사별 경험 여부, 자살사별이 정신건강과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심리지원 이용실태 등을 조사했다. 자살 사별 경험의 범위를 가족으로 한정하지 않고 연인·친구·지인·직장동료·친인척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로 넓혀 온라인 설문조사(2023년 6월19일∼7월4일까지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2.2% 포인트)를 진행했다. 한국심리학회가 설문항목 설계와 분석을 했고, 조사와 일부 분석은 글로벌리서치가 맡았다. -편집자주
다른 사람에게 ‘왜?’를 설명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가족과 친지의 채근, 친구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 면접장에서 받는 질문에 번번이 말문이 막혔다. 당신은 왜 인생에서 그런 선택과 결정을 했는지, 어떻게 해서 지금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려면 결국 그 사실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자살했다. 10대와 20대에 갑자기 닥친 사건은 재난과 같았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인생을 요동치게 했다.
엄마의 장례식장에 있었더라면
2002년 자택에서 숨진 어머니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김세연(37)씨였다. 정작 장례식장에는 가지 못했다. 김씨가 받을 충격과 상처를 우려한 어른들은 김씨를 친척 집으로 보냈다. 그 일주일 동안 많은 게 어른들의 뜻에 따라 결정됐다. 아버지는 원래 살던 집을 내놨고 이사할 집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 김씨의 전학 절차도 진행 중이었다. 어린 김씨는 무력감을 느꼈다. 어머니의 죽음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최소한 그 장례식장에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십수 년 동안 이렇게 힘들지는 않지 않았을까 스스로 자주 물었다.
김씨는 전학 간 학교에서 철저히 고립되기를 선택했다. 또래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겪은 일을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족이 대화 소재로 나오는 순간 스스로 상처받을 게 분명했다. 필요한 말을 할 때를 제외하면 학업에만 열중했다. 미술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왜?’라는 의문이 나한테 올 틈이 없게 바쁘게 지내야만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 2년을 보낸 뒤 공허함에 휩싸였다. 휴학 뒤 친척이 사는 독일로 여행을 떠났다. 3개월이 1년이 됐다. 더 시간이 흘러 휴학을 연장할 수 없게 됐을 때 한국 대학을 자퇴하고 2008년 독일 대학에 입학했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도피처였다. 그는 “엄마의 자살이나 과거를 깨끗하게, 말끔하게 도려내고 새 출발을 하고 싶은 열망이 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독일 생활에 익숙해져서 다시 여러 생각이 밀려올 때면,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려 애썼다.
어느 날 미뤘던 애도가 해일처럼 덮쳐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을 무렵이다. 이전에도 겪은 일이었지만 감정이 훨씬 더 거칠게 요동쳤다. 온종일 어머니를 생각했고, 자살 기사를 찾아보는 일이 매일매일 반복됐다. 불균형한 생활이 이어졌다. 사흘 내내 음식을 먹지 않거나 폭식했고, 술을 과하게 마실 때도 있었다.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려 잠자면 꿈에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나왔다. 몇 년 동안 발버둥 친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2013년 한국에서 두 달간 머무르며 자살유족 회복 프로그램과 자조모임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처음 마음속 깊이 덮어뒀던 어머니의 자살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귀국해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다. 졸업을 서둘러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왔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취직 준비를 하거나 경력을 쌓기보다 아르바이트하며 상담과 치료에 힘을 쏟았다. 그런 그를 주변에선 이해하지 못했다. “너만 보면 안타깝다” “왜 자꾸 옛날 생각을 하니” “쟤를 좀 보고 배워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구보다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었다.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30대 후반이 된 김씨는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제때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한 사회였다. 왜 독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왜 이력에 공백이 있는지 같은 질문을 면접 자리에서 받았다.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오로지 엄마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는데, 꾸며서 말하면 너무 어색해졌고 금방 어색함을 면접자에게 들켰다.” 미술관과 문화재단 등에서 일했지만 계약이 끝난 뒤 일자리를 이어가지 못했다.“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자신에게 비관적이 되고 위축”됐다. 2019년 다시 한번 삶에 대한 무력감과 자살충동이 심하게 찾아왔다. 독일까지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내면의 뭔가가 풀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좋게 보면 드디어 내 삶을 살 수 있는 때” 황웃는돌(31·필명)씨는 자살을 시도했다. 2019년 말, 2020년 초였다. 20대 내내 족쇄처럼 그의 발목을 붙잡았던 채권추심업체들의 소송에서 벗어난 시기였다.
황씨의 아버지는 황씨가 스물두 살 때인 2014년 숨진 채 발견됐다. 사업하던 아버지는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빚을 남겼다. 황씨는 상속재산 범위 안에서 채무를 변제하는 한정승인을 선택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산골 지역에 5분의 1 지분이 있던 토지가 문제가 됐다. 상속재산을 처분해 빚을 갚아야 하는데 재산상 가치가 없다시피 해서 경매로도 팔리지 않았다. 채권추심업체들은 처분되지 않은 재산이 있었기에 상속자인 황씨에게 소송을 걸었고, 가압류를 신청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이듬해 어느 날, 황씨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신용카드로 계산하려는데 결제되지 않았다. 이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 1~2년은 “불구덩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송사에 대응해야 했고, 패소에 대비해 목돈을 손에 쥐어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다. 콜센터와 공장 생산직에서 일했고 인력사무소에 나가 식당일을 찾았다. 대부분 급여가 적었기에 한꺼번에 세 가지 일을 병행했다. 4대 보험을 들지 않고 월급을 주는 미술학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거나 과외, 노점상, 창업 등을 했다. 한 직장에 안정적으로 다니기 어려웠다. 4대 보험을 들지 않는 단기·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슬퍼하고 고인을 기리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다고 여겼다.
20대 자살사별자 39.2% ‘자살 시도한 적 있다’
언제부터인지 출근 시간대 지하철에서 기절해 쓰러지는 일이 반복됐다. 병원 응급실에서 검사해봐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지나가듯 “공황장애가 아니냐”는 주변 동료의 말을 떠올리고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에게 “해야 하는 일이 많아 쓰러지면 곤란하니 안 쓰러지게 해달라”고 말했다. 의사는 검사해 미주신경성 실신과 공황장애를 진단했다. 이때도 자신에게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건 숱한 소송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5년쯤 이어진 송사가 마침표를 찍을 무렵엔 쉬고 싶었다. 휴식이 아닌 인생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나 정말 할 만큼 했는데 이제 가도 되지 않나? 내 할 몫을 다 했는데?’ 시야가 점점 좁아졌다. 한겨울 밤에 구조된 뒤 황씨는 자신의 자살 시도와 아버지의 죽음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자살 사별자는 다른 세대보다 더 우울하고 더 많은 슬픔을 느끼며, 실제 가장 많이 자살을 시도했다.
<한겨레21>과 한국심리학회는 자살 사별 경험 유무와 사별경험이 정신건강·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 전국 만 19~69살 남녀 2003명에게 온라인 설문조사(2023년 6월19일∼7월4일,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 2.2% 포인트)를 했다. 가족(직계가족, 형제·자매, 배우자)·친구·직장동료·지인·친인척 등 사회적 관계에서 ‘자살 사별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 비율은 23.3%(467명)였다. 자살 사별 경험 유무에 따른 우울점수(PHQ-9)를 보면, 사별 경험자들은 우울 위험군(10점 이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비율이 30.4%에 달했다. 이는 자살 사별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과(23.6%)와 비교했을 때 유의미하게 높은 수치였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대 사별자의 약 절반은 우울 위험군에 속했다. 우울척도(PHQ-9) 검사 결과 20대 자살 사별자의 우울위험군 비율은 53.1%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 30대 42.8%, 40대 25.2%, 50대 18.4%, 60대 23%였다. 또 이들은 자살사고·자살계획·자살시도 등 자살행동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았다. 자살행동척도(SBQ-R) 분석 결과, 자살행동위험군(7점 이상)으로 분류된 20대 자살사별자는 60.7%였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자살 사별을 경험한 뒤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0대 사별자의 39.2%는 ‘있다’고 응답했다. 이어 30대(31.4%), 40대(26.3%), 50대(16.8%), 60대(14.8%) 순으로 나타났다.
고선규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위원장은 “자살 사별 경험 자체가 자살 사별자의 자살 행동 위험률을 높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20대는 심각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어 보다 적극적인 심리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시사한다”고 말했다.
애타게 다른 사별자를 찾아서
20대 자살사별자는 ‘사별 이후 일상생활의 변화를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도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20대 사별자는 직업 역량이 저하됐다고 느꼈고(16.5%), 소득이 줄었으며(13.9%), 음주행동을 시작하거나 이전 음주량보다 늘었다고 보고했고(13.9%), 도박과 같은 중독행동과 자해행동을 시작하거나 전보다 증가했다고 응답한 비율(7.6%)도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고 위원장은 “모든 연령대에서 자살 사별 경험은 충격적인 경험이지만, 발달 시기상 청년에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낯설고 대하기 어려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며 “자살 사별 경험은 사별자에게 자신과의 단절, 대인관계와 사회와의 단절·고립을 불러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사회로 확장하는 청년기의 상실 경험은 이후 삶에 미치는 파급력이 여러 영역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세연씨와 황웃는돌씨는 절박할 정도로 다른 자살사별자들이 쓴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황씨는 “자살 유족인데 잘 지내는 사람, 이 과정을 거쳐 나보다 조금 앞에 가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런 이야기는 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애타게 그런 이야기를 찾고 있을 것 같았다. 2019년 김세연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틈틈이 썼던 기록을 정리하고 출판사에 전자우편을 보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 만화를,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황씨는 2020년부터 인스타그램·포스타입·트위터 등 온라인 플랫폼에 만화를 연재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자유롭게 담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만화가 좋을 것 같았다.
김씨의 책 <세 번째 이별의식>(엑스북스)은 2022년 6월 말 출간됐다. 황씨의 책 <나는 자살 생존자입니다>(문학동네)는 2023년 7월 초 출간됐다. 고인과 이별하고 다시 제대로 애도하는 과정이었다. 김씨는 “2년 동안 글쓰기를 병행할 수 있는 업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자주 일자리를 옮겨야 해서 새 업무에 적응해야 하는 일이 반복됐고, 경제적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내면은 지금이 제일 편하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만화의 마지막 편을 완성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침이었다. 집 근처 초등학교로 학생들이 등교하는 소리를 들으며 펑펑 울었다. 그는 “만화를 그리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다 그릴 때쯤부터는 덜 힘들었다. 오히려 내가 만든 만화에 위로받는 느낌이었다”며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이면서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다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이해받지 못해 오는 외로움이 있다”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랐다. 자살 사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김씨는 “자살이라는 사건은 한 사람이 정상적이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사람이 보기에 이해 안 되는 삶을 살 수도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자살과 자살 유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외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황씨는 “아버지가 자살한 게 슬프지만 부끄럽진 않다. 자살한 사람의 가족이란 게 왜 주홍글씨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살사별자가 회복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또 유족이 재건해나갈 일상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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