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기관·기업 공매도 카르텔? 소설 같은 얘기”
8월 9일 에코프로 종목토론방에 한 개인투자자가 올린 글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 주식시장의 가장 뜨거운 테마는 2차전지였다. 수많은 2차전지 관련 주식 가격이 몇 배씩 뛰어올랐다. 2차전지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발표만 해도 기업 주가가 폭등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른바 'K-배터리' 대장주로 여겨진 에코프로는 그 중심에서 2차전지 테마를 이끄는 구심점이 됐다. 종가 기준 1월 2일 11만 원이던 에코프로 주가는 3월 40만 원대에 이르더니 6월 70만 원대를 거쳐 7월 100만 원을 넘겨 '황제주'에 등극했다. 7월 26일 장중 150만 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튿날 90만 원대로 잠시 내려왔지만 그다음 날 또다시 100만 원대를 회복해 8월 초순 기준 110만~120만 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에코프로 주가를 지탱한 건 개인투자자의 믿음이다. 이동채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 고평가 논란, 4월부터 이어진 임직원들의 주식 매도 등 악재가 있었지만 개인투자자는 추가 매수로 맞섰다. 기관이 공매도를 한 뒤 악재를 부각함으로써 개인투자자의 매도를 유도한다는 믿음이 결집 원동력이 됐다. 개인투자자는 결국 '쇼트 커버링(빌린 주식을 갚기 위해 되사는 것)' 현상까지 일으키며 공매도 세력의 백기를 받아냈고, 이는 다시 주가에 불을 지피길 반복했다. 이를 다르게 보면 현재 에코프로 주가는 기업의 펀더멘털을 넘는 기현상(奇現象)이 빚어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우려를 나타내는 지점이다.
개인투자자, 너무 빨리 큰 수익 봤다
8월 4일 서울 영등포구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만난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에코프로를 비롯해 현재 2차전지 관련 주식 가격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빠르게 수익을 보기 위한 '단타' 투자자가 몰려든 결과"라며 "주식시장이 마치 '천하제일 단타 대회'가 된 듯하다. 단타로 몇 번 재미를 볼 순 있지만 결국 잃게 된다. 개인투자자들이 볼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황 선임연구위원은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일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금융위원회 혁신금융심사위원회 위원·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다수 유튜브·방송 출연 등을 통해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황 선임연구위원은 인터뷰하면서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관·기업이 공매도를 통해 이른바 '작전'을 벌인다는 것은 음모론에 불과하다"며 "기대 수익률을 낮추고 투자처를 분산함으로써 장기적·안정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차전지 관련주가 더 갈지, 멈출지 논란이 분분하다.
"끝물이라고 본다. 이미 징후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임직원들이 자사주를 매도하는 것이 대표적 시그널이다. 또 주가가 상식 수준을 뛰어넘었다. 에코프로는 지주사다. 자회사들의 실적을 그대로 가져오는 회산데, 주가는 더 뛰었다. 합리적이지 않다. 개인투자자들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현상이 이상하다고 판단하는 게 정상일 텐데…. 단기적 수익을 보기 위해 뛰어든 '단타' 투자자가 많아서 그렇다고 본다. 개인투자자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이 2주가 채 안 된다. 이젠 '초전도체'로 테마가 옮겨가는 양상도 보이는데, 마치 주식시장이 '천하제일 단타 대회'가 된 느낌이다. 굉장히 우려스럽다."
단타가 나쁜가.
"한두 번 정도는 꽤 큰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속하기 어렵다. 한번 실수로 이전에 본 수익을 모두 날리거나 더 잃는 상황이 벌어지기 쉽다.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종목을 담아 가져가는 게 훨씬 더 바람직한 투자다."
정말 교과서적인….
"공자님 말씀 같을 수 있다(웃음)."
흔히 우량주 장기 투자를 바람직한 투자라고 하지만 삼성전자나 네이버를 사서 몇 년째 물려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도 우량주 장기 투자가 낫다고 볼 수 있나.
"그래도 그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실제로 내가 효과를 본 방법이기도 하고. 우량주를 사도 30~50%씩 손해를 볼 수 있다. 시장이 과열됐을 때,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에 휩싸여 사들여서 그렇다. 저평가 상태일 때 사서 보유하면 대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 개인 투자자는 단타 성향이 너무나도 강하다. 기대 수익률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 이들은 대개 2020년 2분기 무렵 '동학개미운동' 때 진입했다. 3개월 만에 재산이 두 배가 되는 걸 경험했다. 2021년엔 코인 시장이 뜨거웠는데, 여기선 3개월 만에 5배~6배씩 돈이 불어났다. 재산이 너무 빨리 늘어남을 맛본 경험이 이젠 독이 되고 있다. 1년에 수익률 10%면 매우 훌륭한 수준임에도 이 정도는 하찮게 여겨지는 상황이다."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마라
개인투자자도 단타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2차전지 산업이나 관련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을 수도 있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수준의 주가를 맹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실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신이 투자한 종목과 사랑에 빠지는, 일종의 '일체화'다. 과거 화장품, 바이오 등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었다. 물론 2차전지 시장은 유망하다. 에코프로와 그 계열사, 관련 기업도 지금보다 돈을 더 잘 벌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주가 수준이 20~30년 미래 실적을 가져온 상태나 마찬가지다. 20~30년 뒤 일을 알 수 있나. 2차전지 시장이 생각보다 좋지 않을 수 있는데, 현재와 같은 비상식적 주가와 상승세가 지속 가능할 리 없다. 예컨대 에코프로를 140만, 150만 원에 산 투자자는 평생 본전을 못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한국에 공매도가 본격 도입되고 지난 20년 동안 내내 나오는 불만이다. 당국·기관·언론·증권사 등이 합작해 카르텔을 만든다는 건데, 음모론일 뿐이다. 공매도도 위험을 수반한 투자 방식이다. 큰 손해를 보기도 한다. 2020년 미국 '게임스탑' 사태가 대표 사례다. 에코프로 주가가 비상식적이라고 판단되면 투자자는 당연히 공매도를 할 수 있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이나 언론도 '주가가 과열됐으니 경계하라'고 경고할 수 있고. 어찌 보면 오히려 그게 각자 소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투자자는 대개 보유 종목에 부정적 견해가 나타내면 '공격'이라고 생각하고, 적대적 반응을 보인다. 주가에 제동이 걸리는 것을 우려해서 그렇겠지만 시장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그래야 시장 발전에도 이롭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월 기준 공매도 시장에서 외국인이 70%, 기관이 20% 비중을 차지한다. 개인투자자는 5%에 불과하다. 무차입 공매도(빌리지 않은 주식으로 매도 계약을 체결하는 것)에 대한 약한 처벌, 상환 기간 차이 등 개인투자자에게 불리한 조건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이에 대해 개인 투자자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성토가 적잖다.
개인·기관 간 공매도 조건 차를 감안하면 개인투자자로선 할 수 있는 생각 아닐까.
"많은 개인투자자가 '불평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다르게 대우받는 게 당연하다. 예컨대 나와 삼성전자가 각각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다고 해보자. 당연히 은행은 내게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것이다. 자산 규모, 신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매도도 주식을 빌리는 행위이니 당연히 기관이 우대받을 수밖에 없는데, 전자엔 불평등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후자엔 불평등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옳은 걸까."
기관투자 증가, 개인투자자에게도 이득
미국은 개인투자자도 자유롭게 공매도를 할 수 있다."맞다. 하지만 미국 역시 개인투자자에겐 더 높은 수수료를 요구한다. 애초 한국 주식시장 제도를 어디서 가져왔겠나. 미국에서 가져와 한국 사정에 맞게 바꾼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한국도 미국처럼 공매도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미국 시장은 공매도가 훨씬 더 살벌하게 행해진다. 예컨대 미국은 무차입 공매도를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황세운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주가가 적정한지 평가하기 위해선 기업에 대한 정보가 많아야 한다"며 "코스닥시장의 정보 비대칭성 문제가 크다. 이를 해결해야 한국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의 성장 엔진은 코스닥"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거 코스닥이 한국의 성장 엔진이라고 말했다. 대개 코스닥에서 테마주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그럼에도 그러한가.
"물론이다. 코스피와 코스닥 가운데 어디에 더 성장하는 기업이 많을까. 당연히 코스닥이다. 작은 기업이 코스닥에서 성장해 코스피로 옮겨가 한국경제 주역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네이버·카카오 같은 코스피 대표 기업도 원래 코스닥에서 시작했다. 물론 대기업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지만 역동성·유연성이 떨어진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기업 덩치가 다소 작은 코스닥 상장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도전·변화를 반복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기업들이 경제 성장 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코스닥 상장기업은 상대적으로 시가총액 규모가 작은 만큼 주가조작 같은 사건이 왕왕 벌어진다. 성장 원동력이라기엔 문제가 많지 않나.
"당연히 개선할 부분이 있다. 코스닥이 더 성숙한 시장이 되기 위해선 기관투자자가 더 늘어나야 한다. 현재 코스닥은 사실상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기관투자자 증가가 중요한 것은 기관이 코스닥 기업에 관심을 가져야 증권사 리포트가 나오기 때문이다. 리포트가 발행된다는 건 증권사가 해당 기업을 분석한다는 뜻이다. 분석하다 보면 허실(虛實)이 파악되고 자연스레 감시 기능이 이뤄진다. 기업도 더 조심하게 돼 갖은 문제가 방지된다. 개인투자자로서도 리포트를 바탕으로 객관적 투자가 가능해 정보 비대칭성도 줄어든다. 기관투자자가 포트폴리오에 코스닥 기업을 포함해 시장을 이끌어주는 게 바람직하고, 이것이 용이하게끔 당국도 제도를 보완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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