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경계 허물며 ‘혁신’ 선도… 교육엔 거침없는 쓴소리 ‘외유내강’[Leadership]
‘소통’ 중심 새 교육 모델 제시
통합사고력 갖춘 인재양성 위해
2024년 첨단융합학부 신설밝혀
무전공 입학·4학기때 전공 선택
‘다양성’ 최고 가치로 역설
성적 넘어 잠재력·인성도 평가
대학별 특화 면접 고사 등 강조
지역균형 전형 대폭 확대 계획
“유홍림 교수는 ‘신사’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학자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유홍림 신임 총장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유 총장은 지난 2월 1일 서울대 28대 총장으로 취임해 4년간의 임기를 이어나간다. 제23대 정운찬 전 총장에 이어 21년 만의 사회대 출신 총장이다. 유 총장은 학교 안팎으로 ‘외유내강’형 리더라는 평을 받고 있다. 주변에 유 총장에 대해 물으면 ‘신사’ ‘덕장’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의 상아탑인 서울대의 수장이 보여줘야 할 모습은 ‘젠틀한 학자’ 그 이상일 것이다. 서울대 이사회는 지난해 10월 유 총장을 총장 최종후보자로 낙점하며 “미래비전, 실행방안, 운영능력과 리더십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유 교수의 강점을 높이 샀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출산 시대,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은 유 총장이 그리는 ‘서울대의 비전’에 따라 자녀를 교육하고 미래를 내다볼 것이다. 유 총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융복합형 인재’ ‘사회공헌형 리더’ =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유 총장은 영역을 넘나드는 통합적 사고와 유연한 지성을 갖춘 ‘융복합형 인재’, 교육과 연구를 통해 얻은 지식과 실천적 박애정신을 연결할 수 있는 ‘사회공헌형 리더’를 ‘서울대 인재상’으로 보고 있다. 유 총장은 취임식에서 “대학 신입생이 1학년부터 소속학과의 칸막이에 갇혀 특정 분야만의 전문 지식을 습득하고 교문을 나서는 교육의 시효는 끝났다”며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어우러져 토론하고 논쟁하며 서로에게서 배우는 서울대 교육,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교육의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과 영역을 초월하며 소통하고, 기성관념을 성찰하는 교육과 연구의 경험이 쌓이면 ‘따뜻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유 총장의 시각이다.
유 총장이 학부·전공을 허문 교육과 학생들 간의 적극적인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대가 정부의 첨단 산업 분야 인재 양성 기조 속에서 추진 중인 ‘첨단융합학부’는 유 총장의 이런 생각과 맞닿아 있다. 2024학년도 첫 신입생을 받는 첨단융합학부는 이공계 미래 융합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신입생 218명은 무전공 상태로 입학 후 3학기 동안 교양과 전공 개론 위주의 수업을 들은 뒤 4학기부터 5개 세부 전공(△디지털헬스케어 △융합데이터과학 △지능형반도체 △지속가능기술 △혁신신약) 중 1개를 주전공으로 선택하게 된다. 유 총장은 지난 5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존 입학 단위에서의 수직화된 커리큘럼으로는 미래인재 양성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첨단융합학부를 새로운 교육의 틀을 만드는 실험대로서 구상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밝혔다. 서울대는 학생들 간의 소통을 위해 신입생 전원을 관악캠퍼스 기숙사에서 지내게 하는 ‘거주형 대학 제도(RC·residential college)’도 수년 내 도입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시범 운영으로 캠퍼스 내 기숙사(관악사) 한 동을 리모델링해 다양한 학과 학생을 입주시키는 ‘LnL(Living & Learning)’ 사업을 올해 3월부터 시행 중이다. 유 총장은 “단과대 학생을 섞어서 기숙사 단위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 포용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며 “비교과 프로그램을 학생들 스스로 개발하게 해 자연스럽게 시민성과 리더십 함양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양성 확보를 위해 지역균형 선발 인원 확대할 것” = 새 시대에 맞는 ‘서울대 인재’를 배출해 내기 위해서는 학생 선발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게 유 총장의 시각이다. 유 총장은 출생 인구가 한 해 25만 명밖에 되지 않는 저출생 상황에서, 귀중한 인재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한 입시·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킬러 문항’ 논란이 일었던 수능에 대해서는 ‘자격 시험화’하고 대학에 ‘선발 자유권’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능 점수만 보고 학생을 뽑는 ‘한 줄 세우기’ 입시로는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선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재의 다양성도 유 총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그는 “하버드대 같은 유수 대학들은 학생 구성을 사회 전체 구성과 유사하게 만드는데, 그 속에서 배워야 사회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지금 서울대 학생은 수도권과 고소득층에 집중돼 다양성이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유 총장은 이에 다양성 확보를 위해 ‘지역 균형 전형’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유 총장은 “대학도 (면접 등에서) 교과 지식보다 잠재력과 역량을 평가하는 저마다 특화한 선발 방식을 세워야 한다”며 “입시에서는 학업 성취도가 아니라 역량과 재능, 잠재력, 인성까지 학생을 종합적으로 보는 면접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의 위기에 쓴소리 해온 정치학자 = 유 총장은 1995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에 임용된 후 줄곧 ‘정치학 외길’을 걸었다. 정치학 중에서도 현대 정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정치사상을 전공했지만, 오히려 정치사상에서 다뤄지는 교육과 인재에 대한 논의가 유 총장을 대한민국과 대학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다는 시각도 나온다. 실제로 유 총장은 교수재직 중 교육의 위기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유 총장은 언론을 통해 “내신 위주의 대입 제도를 포함한 획일적인 대학 입학전형은 학생들의 비효율적인 제로섬 경쟁을 유도하고 교육을 대학 진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교각살우’”라고 비판한 바 있다. 대학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학 혁신은 융합 교육과 연구, 맞춤형 온라인 교육 플랫폼, 유연하고 분권화된 거버넌스, 재정 확충 등 다양한 요구를 해결해야 가능하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학의 모습을 그려왔다.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밑으로부터 학습과 토론모임을 활성화하고 시민이 주도해서 만든 공론을 정치인들에게 제시하고 타협을 요구해야 한다”거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열망과 필요를 우리가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서로 소통해야만 한다”는 등 ‘소통’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1961년 충북 청주 출생 △청주고 △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럿거스대 정치학 박사 △서울대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01∼2002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2009∼2010년 미국 럿거스대 정치학과 방문교수 △2012∼2015년 서울대 신문사 주간 △2013∼2015년 서울대 기록관장 △2017년 한국정치사상학회장 △2020∼2022년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2023년 2월∼2027년 2월 제28대 서울대 총장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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