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괴물’ 내면, 이해하려고 애썼나[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카뮈 ‘이방인’
사람을 죽여놓고 죄책감은커녕 관심도 없는 반사회적 괴물 ‘뫼르소’
인간말종 영원한 격리 단죄하기 전 그의 삶 헤아렸나
프랑스의 1940년대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해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뫼르소라는 프랑스 청년이 자기 친구와 싸움을 벌였던 알제리의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 것이다. 다툼의 와중이 아니었다. 싸움이 끝나고 상처를 입은 친구는 치료를 받고, 모든 것이 일단락된 상황에서 뫼르소 홀로 싸움의 현장으로 되돌아와, 그곳에서 누워 쉬고 있던 아랍인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왜 죽였을까? 친구를 대신한 복수였을까? 아니었다.
취조실을 찾은 예심판사는 뫼르소에게 묘한 흥미를 느꼈다. “당신의 행위에는 내 이해 범주를 벗어나는 것들이 있소”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격 사이에 왜 기다렸나요?” 뫼르소는 침묵했고, 예심판사를 동요시켰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땅바닥에 쓰러진 몸에 총을 쏜 겁니까?” 예심판사가 윽박지르며 밀어붙였지만, 뫼르소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아랍인에 대한 적개심이나 친구에 대한 복수심이 없었다. 합리적 이유 없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유일한 이유라면, 불길처럼 벌겋게 파열하는 태양, 모래와 조가비, 유리 조각, 그리고 아랍인이 내밀었던 단검에 반사돼 파열하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태양 때문이었다. 그것에 그의 온 존재가 팽팽해져 손에 쥐어져 있던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졌던 것이다.
뫼르소는 삶에 대한 허무 의식에 빠져 있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타인에 대해서도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장례식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슬픔보다는 장례식 환경과 기후에서 느끼는 짜증과 피곤함에 지배를 받았다. ‘자기 나랑 결혼할래?’ 여자친구가 묻자, ‘그래도 상관없어. 자기가 원하면 결혼할 수도 있지, 뭐’라고 답하고, ‘그러면 자기 나 사랑해?’라고 되물으니 ‘그런 말은 아무 의미도 없어. 하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아’라고 답한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반사회적 인물이다. 그러니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이성적인 예심판사 눈에는 흥미롭고 이해 안 되는 존재일 수밖에. 요즘 말로 하면 “갑자기 어디서 툭 튀어나왔는지 모를 괴물”인 셈이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은커녕 그 어떤 관심도 없다. 재판에도, 자신의 형량에도 각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의 변호사조차 혀를 내두른다. “건전한 사람들도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조금씩은 바란 적이 있지 않나요?”라는 말에 질색하고 만다. “당신의 영혼처럼 굳어버린 영혼은 결코 본 적이 없소.” 예심판사는 뫼르소를 인간말종 취급한다. 그럴 만도 하다.
다 알다시피, 이것은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설의 1부에서는 일상에서 무난히 지내는 것만 같은 뫼르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여러 행동은 다소 이상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허무 의식과 삶에 대한 피로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1부의 마지막 지중해의 정오에 벌어진 사건은 그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법 체계 속으로 끌어들인다. 소설의 2부는 결국 뫼르소를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이방인’ 아니 비정상적인 ‘괴물’로 단정하고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뫼르소는 자신을 격리한 세상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며, 평온한 모습을 갖는다. “모든 게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하려면, 내게 남은 일은 나의 사형 집행일에 구경꾼이 많이 와 주기를 바라는 것, 그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이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한 사람을 단죄하기 전에 그도 소중한 삶을 살 권리가 있었던 존재임을 헤아리고, 그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작가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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