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식·ADHD 딛고 볼트의 길로…라일스, 100m 9초83으로 우승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노아 라일스(26·미국)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는 9초65, 19초10을 뛸 것(I will run 9.65 19.10)"이라고 썼다.
100m 9초65, 200m 19초10에 도전하겠다는 의미다.
은퇴한 '육상 황제' 우사인 볼트(37·자메이카)를 떠오르게 한 라일스의 패기 있는 메시지는 세계육상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리고 라일스는 개인 첫 세계선수권 100m 우승을 차지했다. 200m에서는 대회 3연패를 노린다.
라일스는 21일(한국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3 부다페스트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83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2019년 도하, 2022년 유진에서 200m 2연패를 달성하며 '200m 최강자'의 입지를 굳혔지만, 100m에서는 우승 후보로 꼽히지 않았다.
라일스는 미국 대표선발전에서도 10초00, 3위로 막차를 탔다.
하지만, 세계선수권 결승에서 라일스보다 빨리 달린 선수는 없었다.
20세 미만 세계 기록(9초91)을 보유한 레칠레 테보고(20·보츠와나)가 2위, 자넬 휴스(28·영국)가 3위에 올랐다.
테보고, 휴스, 오블리크 세빌(22·자메이카)은 9초88로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1천분의 1초까지 측정한 기록에서 순위가 갈렸다. 테보고가 9초873, 휴스가 9초874, 세빌이 9초877로 2∼4위에 자리했다.
가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일본 스프린터 사니 브라운 압둘 하키무(24)는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세계선수권 2회 연속 남자 100m 결선에 오르더니, 10초04로 지난해(7위)보다 한 단계 높은 6위를 차지했다.
2022 유진 세계선수권 챔피언 프레드 컬리(28·미국)와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러먼트 마셀 제이컵스(28·이탈리아)는 준결선에서 탈락했다.
인생 목표로 내세운 100m 9초65를 이번 부다페스트에서 달성하지 못했지만, 라일스는 '볼트 이후 첫 세계선수권 남자 100m, 200m, 400m 계주 3관왕'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다.
라일스는 경기 뒤 세계육상연맹, AP통신, 로이터 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육상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SNS에 패기 있는 목표를 공개한 이유를 밝히며 "내가 100m에서도 우승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비웃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 있었고, 결국 해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어 "세계육상이 2023년을 '라일스가 세계선수권에서 100m, 200m, 400m 계주에서 우승했던 해'라고 떠올릴 것"이라고 3관왕 도전을 선언했다.
남자 100m 9초58, 200m 19초19의 세계 기록을 보유한 볼트는 2009년 베를린, 2013년 모스크바, 2015년 베이징에서 3차례나 3관왕(100m·200m·400m 계주)에 올랐다. 2011년 대구 대회에서는 100m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해 200m와 400m 계주에서만 금메달을 땄다.
볼트 이후 세계선수권 남자 육상 100m와 200m를 석권한 선수도 나오지 않았다.
라일스는 "나는 육상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200m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종목이다. 내가 어떻게 뛰는지 지켜보라"며 "내 남은 경기를 지켜보며 '왕조의 시작'(That is the start of a dynasty)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위대한 질주'를 예고했다.
사실 라일스는 이미 육상계를 넘어 스포츠계에 많은 이야기를 전했다. OTT 넷플릭스는 라일스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라일스는 트랙보다 병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유년에는 천식을 앓았고, 고교 시절에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난독증 진단을 받아 치료받았다.
'작은 세상'에 머물던 라일스을 병원 밖으로 인도한 이는 어머니 케이샤였다.
라일스는 "네 살 때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병원에 간 기억이 있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배경은 주로 병원"이라며 "작은 병원 침대에 어머니와 함께 누웠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어머니는 바깥세상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고 떠올렸다.
케이샤는 남편과 이혼한 뒤, 라일스 형제를 홀로 키웠다.
라일스는 "집에 전기가 끊긴 기억이 있다"며 "그만큼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헌신했다. 내가 ADHD 치료를 받을 때, 내가 그림을 권한 것도 어머니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장난을 섞어 "내 꿈은 화가가 아닌 랩퍼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기에는 그림보다는 랩이 편하니까"라고 덧붙였다.
라일스의 투병은 끝나지 않았다. 투병기를 공개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그는 2020년 8월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라일스는 "우울한 상태로는 내가 목표한 것을 달성해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며 "여전히 정신과 치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몸이 아픈 사람은 악당이 아니야. 병을 고치려는 노력은 선한 일이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부다페스트에서 라일스는 100m에서 우승하며 '성취감'을 느꼈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에 라일스는 우승할 때마다 '엄마, 내가 세계 챔피언이야'라고 말한다. 세계선수권 100m에서도 어머니에게 같은 소식을 알렸다"고 전했다.
"세리머니는 어린아이처럼 해야 한다. 그래야 보는 이들도 즐겁다"라고 주장하는 라일스는 이날도 어린 시절 즐겨 본 만화 드래곤볼을 떠올리며 '장풍 세리머니'를 펼쳤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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