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폭몰이’하다 뒤늦게 “부실공사 단속” 외치는 정부
민간·공공 부실공사 만연에 “부실공사 엄단”
[주간경향] 지난 8월 16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 ‘낯익은’ 장면이 다시 연출됐다. 5시간가량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이 압수품을 파란 상자에 담아 건물을 나섰다. “철근 누락 부실공사 관련 압수수색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굳은 표정을 한 경찰이 “네”라고 짧게 답한 뒤 서둘러 차에 올랐다.
2년 3개월 전인 2021년 5월에도 LH 본사는 10시간 동안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LH 전·현직 임직원들의 신도시 사전투기 비리 의혹 관련 수사였다. 공기업이 2년여의 시차를 두고 두 차례나 강제수사로 인한 압수수색을 받은 일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한준 LH사장은 “내부 자력만으로는 혁신이 어렵다”며 직원들을 수사해달라고 경찰에 의뢰했다. ‘백기투항’도 모자라 ‘자포자기’에 가까운 이 사장의 발언은 LH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참에 LH를 해체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철근 누락 사태에서 유독 LH가 난타를 당하는 이유는 설계, 감리 업체 등과의 계약과정에 ‘전관’이 관여됐다는 의혹 때문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남미 파라과이 출장 현장에서 “전관 업체와 용역계약을 모두 중단하라”고 LH에 지시했다. 수사를 통해 실제 전관의 개입과 유착, 불법적인 특혜가 있었다고 드러난다면 마땅히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의문점은 남는다. 전관 계약을 끊고, LH를 해체하면 적어도 공공주택에서는 부실공사가 사라질 것인가. 건설업계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부실공사 문제를 관리하고 감독했어야 할 정부는 그동안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파트 붕괴 반복, 삼풍 교훈 잊었나
여기 ‘낯익은’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지난 4월 29일 LH 인천 검단 아파트(GS건설 시공) 주차장 붕괴사고가 발생하기 약 15개월 전인 2022년 1월 11일. 광주 화정동에 신축 중이던 HDC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한 동이 붕괴됐다. 28층 꼭대기부터 무너져내린 건물은 23층까지 반파됐다. 붕괴한 건물 잔해에 깔려 작업 중이던 건설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15개월 간격으로 벌어진 두 건의 붕괴사고는 원인도, 과정도 판박이처럼 닮았다. 논란이 된 ‘무량판’ 구조인 것도 같고, 정부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GS건설 붕괴사고의 경우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가 없다는 게 차이점이다.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의 HDC현산 붕괴 참사 조사 결과를 보면 무단 설계 변경으로 인해 꼭대기 층에 가해지는 하중을 그 아래층이 견디지 못한 것이 발단이 됐다. 설계보다 높은 하중이 실렸음에도 현장에서는 약간의 내력벽만을 세워둔 채 지지대(동바리)를 모두 철거했다. 공기 단축을 위해서였다. 무너진 건물에서 채취한 콘크리트는 17개 층 중 15개 층에서 설계기준 강도에 미달됐다.
GS건설 붕괴사고도 발단은 설계 문제였다. 해당 지하주차장은 상판(아파트단지 1층)을 지지하기 위해 본래 32개 기둥 모두에 전단보강근(철근)을 넣어 시공해야 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15개 기둥에 철근을 넣지 않도록 설계했다. 그나마도 부족한 철근을 현장에선 다시 절반 정도 빼고 시공했다. 상판 위에는 흙을 덮어 나무를 심는 등 조경이 예정됐는데, 설곗값(1.1m)보다 2배가량 많은 최대 2.1m의 흙이 쌓였다. 콘크리트 역시 부실해 설계기준 강도(24MPa)보다 월등히 낮은 강도(16.9MPa)를 보였다.
두 사고 모두 설계·시공·감리로 이어지는 건축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만 정상적으로 작동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도 상판(꼭대기 층)의 과도한 하중을 건물이 견디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HDC현산 붕괴사고 이후 정부는 지난해 3월 말 ‘부실시공 근절방안’을 만들어 부실시공 예방, 감리 내실화, 부실시공 무관용 대응 등에 나섰다. 그럼에도 ‘총체적인 부실’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붕괴사고가 1년여 만에 재현됐다.
순살 아파트 심각해지자 단속 나선 정부
정부의 ‘부실시공 근절방안’은 발표 직후 치러진 대선과 윤석열 정부 출범 등을 거치며 흐지부지됐다. HDC현산 아파트 붕괴 참사 처분도 ‘솜방망이’에 그쳤다. 전임 정부 당시 국토부는 사고책임자인 HDC현산에 대한 처분권자인 서울시에 “최고 수위(등록말소) 처분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린 처분은 ‘영업정지 8개월’이었다. 이마저도 HDC현산이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걸면서 실제 처분이 이뤄지지도 못했다.
국토부는 민주노총과 싸우는 데 열중했다. 지난해 12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타워크레인 월례비 문제, 노조의 업무방해 문제 등을 들어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끝까지 엄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1월 열린 ‘건설현장 불법행위 민관협의체 회의’도 온통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건설현장에서 부실공사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불법하도급 문제는 회의에서 다루지도 않았다. 지난 2월 21일 연 국무회의 주제는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였다. 윤 대통령은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현장 폭력)”으로 지목하며 “임기 내 반드시 건폭을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날 발표된 범정부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에 일부 불법하도급 문제가 포함됐지만, 주요 표적은 건설노조 단속이었다. 원 장관은 “현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노동개혁의 실현을 위해선 건설현장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건폭몰이’를 계속하자 건설노조는 지난 3월 ‘건설현장 불법시공 부실공사 실태 고발’ 증언대회를 열었다. 건설노조는 “정작 정부가 개선하고 바로잡아야 할 건설사들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외국인 불법고용, 불법시공 부실공사’ 등의 불법행위는 외면하고 있다”며 철근 부실시공 사례 등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실공사 문제를 제기했다. 이는 최근의 철근 누락 아파트 사태로 결국 사실로 드러났지만, 당시 정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4월 9일 ‘건설현장 불법행위 중간점검’ 발표에서는 건설노조 검거실적 등을 밝히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GS건설 붕괴사고는 이로부터 20일 뒤 발생했다.
붕괴사고가 발생한 뒤 파문이 확산하고 여론이 악화됐다. 국토부는 부랴부랴 불법하도급 단속에 나섰다. 원 장관은 5월 22일 “불법하도급은 공사비 누수, 불법시공으로 이어져 국민피해로 이어진다”며 100일간 특별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결과는 놀라웠다. 한 달간 139개 현장을 단속한 결과 57개 현장(41%)에서 93건의 불법하도급이 무더기로 적발됐고, 173개 업체가 영업정지 내지는 형사고발 처분을 받았다.
또 “전 정권” 타령한 정부, LH만 잡으면 끝?
건물 붕괴나 철근 누락 등의 부실공사 사례를 보면 일명 ‘1군 건설사’로 불리는 대형건설사에서부터 중·소규모 건설업체들까지 다양하게 얽혀 있다. 민간·공공을 가리지 않고 건설업계 전반에 부실공사가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8월 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LH 아파트의 철근 누락 문제를 거론하며 건설업계의 ‘이권 카르텔’과 ‘전임 정부’를 원인으로 들었다. 윤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며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 오류, 부실시공, 부실감리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부실공사에 현 정부의 책임은 없다는 맥락으로 해석된다. GS건설 붕괴사고의 경우 발주는 전 정권에서 했을지 몰라도 시공과 감리는 엄연히 현 정부 출범 후 이뤄졌다. 철근 누락으로 확인된 다른 LH 아파트 중에도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단지가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쏙 뺀 채 지난 정부에서 공사가 완료된 아파트만을 가리켜 “현재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불법하도급, 공기 단축 등을 통해 건설사들이 그간 과도한 수익만 추구해온 것이 건설업계에 뿌리 깊은 부실공사의 근본적인 문제”라며 “이를 관리·감독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했어야 할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이권 카르텔’ 운운하며 남 탓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실공사 문제로 원 장관이 사과하긴 했지만, 국토부에서 처벌이나 징계를 받은 책임자는 없다.
LH 아파트 부실공사 문제 역시 전관 차단이나 LH를 해체하는 등의 방식이 근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공공주택사업은 수익성 문제로 대형건설사들이 참여를 거의 안 한다”며 “중·소건설사들의 저가수주 경쟁도 부실공사의 원인인데, 애초에 발주금액이 품질을 보장할 만큼 적절한지 등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LH 고위 관계자는 “전관이 없는 업체를 거의 찾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전관 문제에 매달리다 공공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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