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항마가 어쩌다… 지지율 추락 디샌티스, 경선 2위도 흔들
한때 공화당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뛰어넘는 지지율을 보이며 유력후보로 주목 받았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고전하고 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올 들어 공화당 경선후보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크게 차이나는 2위에 머물러 왔고,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바이오기업 창업자인 비벡 라마스와미에도 밀려 3위로 내려 앉는 충격적 성적을 받아 들었다.
이런 가운데 그가 19일(현지 시각) 플로리다 스탠다드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추종하는 미 의회 내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의원들을 ‘무기력한 자들(listless vessels)’이라고 표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자신을 ‘명색만 공화당원(RINO·Republican in Name Only)’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트럼프 측의 선거자금 모금을 담당하는 정치활동위원회인 ‘마가 인크(MAGA Inc.)’는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디샌티스 측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아니라 의회 내의 지지자들을 지칭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공화당 내 여론에는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Listless Vessels’가 뭐길래, 트럼프 측 사과 요구
19일(현지 시각) 플로리다주 현지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디샌티스는 의회 내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거론하며 “만약 우리가 매일 아침 트루스 소셜을 통해 무엇이 내려오든 따르는 무기력한 자들이라면 그것은 오래갈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지난 2020년 트위터(현재의 X) 계정을 영구 정지당한 뒤 만든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하는 말만 따라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디샌티스는 “궁극적으로 어떤 운동(movement)은 한 개인의 개성에 관한 것이 될 수 없다. 미국민을 위해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는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면서 마가 의원들이 트럼프를 맹목적으로 추종한다고 주장했다.
디샌티스의 발언은 곧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일부 지지자들은 영단어 ‘베셀(vessel)’에 ‘그릇·용기’란 뜻과 ‘선박’이란 뜻이 다 있다는 점에 착안해, 디샌티스의 말이 트럼프의 지시를 받아 들이기만 하는 ‘무기력한 그릇’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조건 남을 따르는 ‘무기력한 배들’을 의미하는 것인지 갑론을박을 벌였다. 기독교에서 독실한 사람을 ‘신의 그릇(God’s vessel)’으로 일컫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그릇’이 맞다는 해석도 나온다.
논란 속에 ‘마가 인크’의 캐롤린 레빗 대변인은 “힐러리 클린턴에게 트럼프 지지자들은 ‘개탄스러운 자들(deplorables)’이었고 론 디샌티스에게는 ‘무기력한 자들’이다. 진실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애국자란 것이며 디샌티스는 즉각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모욕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디샌티스의 대변인 브라이언 그리핀은 일반 유권자가 아닌 트럼프를 지지하는 의원들을 가리키는 발언인데 왜곡되고 있다며 반박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와 의회 내의 지지자들은 ‘무기력한 자들’이다. 왜? 트럼프와 디씨 인사이더들은 트럼프가 당연히 당신 표를 받아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와 의회 내 지지자들이 아무 노력도 없이 공화당 유권자들이 던져주는 표를 받기 위해 놓여있다는 취지다.
◇한때 트럼프 이길 것 같던 디샌티스, 당내 3위로 추락 위기
한때 ‘리틀 트럼프’로 불렸던 디샌티스가 트럼프를 공격하면서 이런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처해있는 역경을 보여준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디샌티스가 트럼프를 제치거나, 적어도 비등비등한 경쟁을 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디샌티스는 작년 12월 3~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공화당 지지자들을 상대로 벌인 트럼프와의 가상대결에서 52%의 지지를 얻어 당시 38%의 지지를 얻은 트럼프를 14%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지난 2월 출간한 회고록 ‘자유로워질 용기(The Courage to Be Free): 미국의 부활을 위한 플로리다의 청사진'이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의 관심과 인기도 모았다.
하지만 지난 3월 뉴욕 맨해튼 지검이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과 관련한 기업 문서 조작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트럼프가 기소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재결집하면서, 트럼프는 이후 공화당 경선 여론조사에서 계속 안정적인 과반을 기록하고 있다.
디샌티스의 지지율은 그만큼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디샌티스가 디즈니와의 ‘문화전쟁’, 낙태 찬성론자나 성소수자들(LGBTQ+)과의 대립을 거듭한 탓에 중도층으로의 지지층 확대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15~17일 여론조사기관 ‘에셸론 인사이트’가 1017명의 투표의향자를 상대로 실시한 공화당 당내 경선 여론조사에서 디샌티스는 12%의 지지 밖에 받지 못했다. 트럼프(55%)는 물론 라마스와미(15%)에게도 밀려 3위로 추락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5~16일 ‘카플란 스트레티지스’가 1093명의 투표의향자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10%의 지지 밖에 받지 못한 디샌티스는 트럼프(47%)와 라마스와미(11%)에 밀려 3위로 떨어졌다.
16~18일 유고브와 CBS 뉴스가 531명의 투표의향자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디샌티스는 16%를 기록해 라마스와미(7%)보다 9%포인트 앞선 2위였다. 그러나 트럼프(62%)와의 격차가 너무 커서, 선거 운동의 돌파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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