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 잠시 쉬러 간 사이… 88분 기다리고 던진 투수가 있다, KIA 9월 플랜에 들어가나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후반기 들어 서서히 성적을 끌어올리며 5할 승률을 회복한 KIA지만 좀처럼 탄력을 붙여 치고 나가지는 못했다. 지루한 5할 공방전, 그리고 5위 공방전이다. 20일 대구 삼성전에서 4-6으로 지면서 승률도 다시 5할 아래(48승49패2무)로 내려왔다.
타선이 비교적 잘 터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KIA의 고전은 역시 선발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토마스 파노니, 이의리가 나름대로 잘 던지고 있는 반면 마리오 산체스와 토종 에이스 양현종의 투구 내용은 근래 들어 썩 좋지 못했다. 연패가 길지도 않지만, 연승이 길게 이어지지도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특히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양현종의 부진이 뼈아팠다.
양현종은 전반기 16경기에서 90⅓이닝을 던지며 5승5패 평균자책점 3.79를 기록했다. 다소간 부침이 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려 하며 팀에 헌신했다. 외국인 투수들이 들쭉날쭉하고 이의리의 이닝소화력이 떨어졌던 KIA의 전반기에서 이 정도 성적이면 나쁘지 않은 축에 속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 체력이 떨어진 듯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후반기 3경기에서는 16⅓이닝을 던졌으나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7.71에 그쳤다. KIA로서는 행운의 노게임으로 비에 씻겨 나간 8월 8일 광주 LG전(2이닝 8실점 6자책점)까지 생각하면 더 심각한 난조였다. 한 차례 행운을 등에 업고 나선 15일 키움전에서도 5⅔이닝 7실점으로 부진하자 KIA는 결단을 내렸다.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거르고 휴식을 주기로 했다.
‘열흘’의 명확한 기간이 붙기는 했지만, 시즌 내내 마땅한 6번째 선발 자원이 없어 고전하던 KIA로서는 대체 선발 하나를 써야 하는 썩 달갑지 않은 여건이 됐다. 여기서 KIA의 선택은 우완 황동하(21)였다. 인상고를 졸업하고 2022년 2차 7라운드(전체 65순위) 지명을 받은 황동하는 아직 KIA 팬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선수였다. 지난해는 1군 등판이 없었고, 올해 5월 30일에야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와 데뷔를 치렀다.
1군 콜업 후 한 달 정도를 머물며 8경기에 나갔지만 평균자책점은 5.11로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1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2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돌았고 2군에서는 가장 준비된 선발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양현종의 자리인 20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 기회를 얻었다. 개인적으로는 1군 두 번째 선발 등판이었다.
결론은 성공적이었다. 완벽한 투구 내용은 아니었지만 패기 있게 삼성 타선과 맞붙으며 소기의 성과를 남겼다. 4⅔이닝 동안 4피안타(2피홈런) 3실점했다. 4사구는 하나 뿐이었다. 대체 선발에게, 이제 2년 차 투수에게 기대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투구를 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는 능력과 경기 내용에서도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투수에게 가장 어렵다는 1회를 잘 넘겼다. 2사 후 구자욱에게 2루타를 맞기는 했지만 강민호를 3루수 땅볼로 잡고 1회를 마쳤다. 무엇보다 스트라이크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패기와 제구가 인상적이었다. 1회 투구 수 9개 중 볼은 딱 하나였다. 2회에도 세 타자의 타구를 모두 내야에 가두며 좋은 흐름을 이어 나갔다.
고비도 있었다. 3회초 KIA 공격을 앞두고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비가 그치고 경기장을 정비하는 데까지 무려 88분, 1시간 28분이 걸린 상황이었다. 보통 이 시간을 기다리면 투수의 어깨는 식는다. 부상 방지를 위해서라도 교체하는 게 일반적이다. 삼성은 선발 원태인을 그렇게 다뤘다. 규정상 어쩔 수 없이 한 타자만 상대하고 바로 교체했다. 하지만 KIA는 황동하를 그대로 밀어붙였다.
불펜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황동하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은 벤치의 마음도 있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황동하는 씩씩하게 던졌다. 3회를 무실점으로 넘긴 황동하는 4회 강민호, 5회 오재일에게 각각 솔로포 하나씩을 허용했으나 4⅔이닝을 버티며 KIA에 추격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나 마운드를 내려가는 황동하에게 KIA 팬들은 아낌 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사실 강속구는 아니었다. ‘트랙맨’ 집계에 따르면 포심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시속 145㎞ 남짓이었다. 그러나 공에 힘이 있었고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할 줄 아는 선수라는 것을 입증했다. 맞아서 무너질지는 몰라도, 적어도 볼넷으로 자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남기기에 충분한 투구였다.
양현종이 돌아오면 황동하는 다시 불펜으로 가거나 혹은 2군에서 선발 수업을 계속 받을 전망이다. 그러나 시즌은 이제 시작이다. KIA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의리 최지민 최원준이 소집된다. 이의리는 선발이다. 리그에서 경기가 가장 많이 남은 KIA는 선발 로테이션을 계속 돌려야 할 전망이고, 이의리의 빈자리를 채울 선발 한 명이 더 필요하다. 황동하의 20일 투구는, 그 자리를 향해 번호표를 뽑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종국 KIA 감독도 이의리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고민하고 있다. 김 감독은 “플랜 C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2군 선발을 올리는 방법, 불펜 상황에 맞게 불펜 데이를 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고려되고 있을 전망이다. 여기서 황동하가 상당히 유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20일 패배에서도 KIA가 찾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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