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을 결합해 세상을 바꾼다…신간 '슈퍼사이트'

이세원 2023. 8. 21.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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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안경·공간 컴퓨팅·인공지능이 변화시키는 미래
가상현실 체험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한 미국 육군 대령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중요한 교류 행사가 열리기 전날이면 종일 참석자의 인적 사항 등이 기재된 '얼굴 사진첩'을 외웠다.

대령의 임무는 행사 때 장군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가 마주치는 인물의 정보를 귓속말로 미리 알려주는 것이었다.

배우자나 자녀 관련 정보는 물론, 좋아하는 스포츠나 반려동물 관련 정보, 출세를 위해 무엇을 부탁하면 좋은지 등 장군을 위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했다.

기술적으로는 앞으로 모든 사람이 장군과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컴퓨터비전과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탑재한 스마트 안경을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귀로 들을 수 있다.

스마트 안경에 장착된 소형 카메라는 마주치는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 음성으로 이름을 알려주거나 그의 얼굴 근처에 자막을 띄운다. 상대의 전문 분야나 관심사, 업무 경력, 평판도 알 수 있게 된다. 사전 정보가 있으면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할 가능성도 커진다.

데이비드 로즈 [https://www.supersight.world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로즈는 최근 번역 출간된 저서 '슈퍼사이트'에서 이런 변화가 다가온다고 예고했다.

그는 인간의 시각적 체험을 확장하고 인간과 사회의 연결 방식을 바꾸어 놓을 새로운 시각 현실을 슈퍼사이트(SuperSight)로 규정하고 달라질 미래의 모습을 전망했다.

책에 따르면 슈퍼사이트는 공간 컴퓨팅, 인공지능(AI), 컴퓨터 비전 등의 기술이 네트워크 정보와 결합해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슈퍼사이트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 안경을 쓰고 뉴욕을 걸으면 홀로그램이 만들어낸 디지털 이미지가 실제 건물과 결합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풍경이 펼쳐진다. 스카이라인을 쳐다보면 앞으로 세워질 건물의 이미지가 여기저기 투사되고 일부 건물에서는 공사 관련 정보도 제시된다.

상점가를 지나다 보면 미리 설정한 취향에 맞춰 평점이 높은 식당의 요리 메뉴가 튀어나오고 패션가에서는 유행하는 재킷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식의 광고가 싫다면 손을 내저어 차단할 수도 있지만 눈썹을 치켜드는 동작으로 이 제품을 즐겨찾기에 저장할 수도 있다.

스마트 안경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다소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기술적으로는 이미 가능하다고 한다.

슈퍼사이트는 실제 사물 위에 공간적으로 정보를 배치하고 현실 위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다. 이용자는 현실의 확장을 경험하게 된다.

공간 컴퓨팅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적절한 장소와 적당한 시간에 제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정보는 거의 무한하고 너무 많아서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이용자가 방문하고 있는 곳에서 당장 필요한 정보, 평소 관심 분야와 연계된 정보를 적절한 양으로 제공해 몰입감을 높인다.

슈퍼사이트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체험을 확장하고 있다.

한 회사는 스마트 거울을 통해 이용자가 집에서 일대일 맞춤 운동을 받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스크린을 터치해서 가상 트레이너를 호출하고 스마트폰의 앱을 켠 뒤 운동을 시작하면 트레이너는 새로운 운동을 소개하고 동작의 횟수를 세거나 스쾃 자세가 좋지 않으면 수정하도록 조언한다.

이용자는 거울 속에 등장한 트레이너와 자기 모습을 함께 보면서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린다.

실내에 설치한 자전거와 헤드셋을 이용해 알프스에 마련된 가상의 도로에서 수천 명의 동호인과 자전거 경주를 하거나 방안에서 노 젓기 동작을 하며 가상의 조정 경기에 참여하는 등 경험을 확장하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소방 장비 제조업체는 소방관들이 어둠과 연기를 뚫고 앞을 내다볼 수 있도록 하는 생체공학적 눈을 개발하기도 했다.

감시 카메라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스모크 다이빙 헬멧이라는 장비를 착용하면 벽이나 사람의 윤곽이 강조되어 보이며 온도가 매우 높은 '핫 스폿'이나 불길이 소용돌이치는 곳을 색깔로 식별할 수 있다.

슈퍼사이트 분야의 또 다른 스타트업은 헬멧을 착용하지 않거나 보호시스템에 몸을 고정하지 않은 채 높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위험한 기계에 너무 가까이 가는 작업자를 포착해 기록한다.

시스템을 일련의 문제 상황을 기록해 근로자와 관리자에게 전달하고 위험을 알고리즘으로 측정해 부상 위험을 수치로 제시한다. 카메라 기술의 확장과 딥러닝 시스템을 활용해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민간 인공위성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과거에는 소수가 독점하던 정보를 다수에게 분배하고 있다.

오비탈 인사이트라는 인공위성 정보기업은 월마트와 같은 대형 소매업체의 주자창에 있는 자동차 숫자를 컴퓨터 비전으로 집계해 소비자 수요를 측정하고, 논밭의 이미지를 분석해 농산물의 공급 상황을 예측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외곽을 찍은 위성사진 [Maxar Technologies·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기업은 소비자가 저항 없이 지갑을 열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슈퍼사이트를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신용카드 정보를 연동시키면 매장에 있는 물건을 원하는 대로 그냥 들고 나갈 수 있는 '아마존고'를 2018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장했다.

천장에 설치된 많은 카메라와 인공지능 선반이 이용자가 가져간 물건을 파악해 자동으로 결제하도록 한다. 아마존고를 방문한 저자는 물건을 집어 들면서 재빠르게 위치를 바꾸고 재킷으로 손을 가리는 등 감시 시스템을 교란하려고 시도했다.

매장을 나가자 그가 반출한 물건 5개가 모두 결제됐다는 메시지가 스마트폰으로 날아들었고 '훔치기'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뉴욕의 아마존고 매장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슈퍼사이트 기술을 확장하면 맞춤형 판매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이용자가 소매점에 들어가면 카메라가 얼굴을 인식하고 그의 취향에 맞는 제품이 스마트 안경의 화면에 펼쳐지며 입고 있는 옷을 보완할 아이템을 소개하는 것도 5년 이내에 가능해질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슈퍼사이트를 바탕으로 한 기술 진화는 정부에 의한 감시의 가능성과 정보 관리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 등의 문제도 낳는다.

아마존이 인수한 스마트홈 업체 '링'(Ring)은 카메라와 무선통신 장비를 이용해 가정용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고 택배 분실 등의 우려를 덜어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저장된 영상이 제대로 관리되는지에 관한 의문도 제기된다.

실제로 링은 이용자의 사생활 보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제소당하기도 했다.

책 표지 이미지 [흐름출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저자는 슈퍼사이트가 "방대한 정보와 타인과의 긴밀한 연결을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고 삶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라고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함과 동시에 "감시의 디스토피아, 필터 버블, 딥페이크 같은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진단한다.

그는 과거 10년간 모바일 기술이 인류의 삶을 바꾼 것처럼 슈퍼사이트가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면서 변화 앞에서 '완고함과 회의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 '학습자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대응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독자에게 조언한다.

흐름출판. 박영준 옮김. 400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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