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WHO 대신 ‘무역기구’, ‘보건기구’ 어때요?…“적절해요” 압도적 [우리말 화수분]

이강은 2023. 8. 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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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국제 조직(기구) 약칭 로마자 대신 우리말로 바꿔 쓰기 제안
국어는 한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밀려드는 외국어와 국적불명의 신조어, 줄임말 등에 국어가 치이고 있습니다. 특히 국민 누구나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할 정부와 지자체, 언론 등 공공(성)기관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의 그늘도 짙습니다. 세계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함께 공공분야와 일상생활에서 쉬운 우리말을 되살리고 언어사용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우리말 화수분’ 연재를 시작합니다. 보물 같은 우리말이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력을 지니도록 찾아 쓰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편집자주>
 
16개 국제 조직(기구)의 로마자 약칭 인지도와 새로 만든 우리말 약칭의 국민 수용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WHO, OECD, WTO, IAEA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조직의 인지도 평균은 12%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국민 10명 중 7명은 이들 조직을 표현할 때 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을 사용하길 원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보건기구(WHO) 본부의 전경. AP연합뉴스
21일 한글문화연대에 따르면, ‘우리말약칭제안모임’이 지난달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티엔오코리아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47명을 대상으로 국제 조직의 로마자 약칭 인지도와 우리말 약칭 수용도를 온라인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03%포인트) 이같이 나타났다. 조사 대상은 ‘○○기구’로 번역되는 국제 조직 15개와 국내 경제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다. 

우선 로마자 약칭 인지도에선 WHO(세계보건기구)가 71.5%로 가장 높았다. 이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69.0%, WTO(세계무역기구) 57.7%, IAEA(국제원자력기구) 43.7% 순이었다. 5위를 기록한 ISO(국제표준화기구, 26.7%)부터 인지도가 확 떨어졌고, IMO(국제해사기구, 9.3%)와 BIE(국제박람회기구, 3.5%) 등 한자릿수에 그친 조직도 7개나 됐다.    

신문에서는 지면 제한을 이유로, 방송에서는 시간 제약을 이유로 우리말로 번역한 온 이름을 사용하기보다 로마자 머리글자로 이루어진 약칭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세계보건기구’는 ‘WHO’로 적거나 ‘더블유에이치오’로 부른다. 이 경우 글자 수에서는 로마자 약칭이 적지만 음절 수에서는 7음절이라 세계보건기구 6음절보다 더 길다.
이와 관련, 우리말약칭제안모임은 “국제 조직의 영향이 커지면서 언론과 정부 공문서에서 국제 조직의 로마자 약칭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소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국제 조직의 온 이름을 사용하는 게 낫지만 부득이하게 줄여 불러야 할 때 로마자 약칭 대신 우리말 약칭을 만들어 쓰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국내 조직에는 ‘기구’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이 거의 없는 만큼 조직의 성격을 표현하는 핵심 용어만 골라 로마자 약칭의 글자 수와 비슷하게 만든 우리말 약칭을 제시했다. 예컨대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각각 ‘무역기구’, ‘보건기구’, ‘원자력기구’로 약칭을 쓰자는 것이다. 핵심 용어 하나만 선택하기 어려울 때는 여러 용어의 머리글자를 따 약칭을 만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경제’와 ‘협력’의 머리글자를 따서 ‘경협기구’로,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는 이미 사용하는 약어인 ‘지재권’을 가져와 ‘지재권기구’로 줄였다.

이런 우리말 약칭에 대한 응답자 수용도는 높은 편이었다. 평균 71.2%가 선호했다. 수용도 최상위권은 ‘세계무역기구(WTO)→무역기구(79.9%), ‘국제에너지기구(IEA)→에너지기구(79.4%)’, ‘국제표준화기구(ISO)→표준화기구(79.2%)’ 등이고, 최하위권은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지재권기구(58.2%)’,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연공위(58.5%)’,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관광기구(65.9%)’ 등이다. 

한편, 이번 조사를 시행한 ‘우리말 약칭 제안 모임’은 지난 3월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어문기자협회,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등 언론·국어단체가 중심이 돼 꾸려졌다. 언론인 3명과 국어학자 4명, 국어단체 관계자 2명이 연구위원회로 활동하고 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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