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월드컵] 32개 팀으로 판 키웠더니…함께 찾아온 평준화·흥행 대박

이의진 2023. 8. 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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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랭킹 1·2위 없는 첫 8강…'영원한 승자' 사라져 매 경기 '전쟁'
경기 수 많아졌는데 관중 늘어…24팀 체제서 못해본 '3만 관중' 달성
2023 여자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지난 20일 스페인의 최종 우승으로 마무리된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을 지켜보며 잔뜩 기세등등한 사람이 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다.

인판티노 회장 체제의 FIFA는 2019년 8월 여자 월드컵 규모를 기존 24개 팀에서 32개 팀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그는 "여자축구 성장을 위한 구체적 조치가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이에 여자축구 자체가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데, 양적 규모만 불리는 게 독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우려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여자축구가 '양과 질' 모두 흡족한 발전을 이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로부터 4년이 지난 이달 18일 인판티노 회장은 'FIFA 여자 축구 컨벤션 2023'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결국은 우리가 옳았습니다."

스페인 선수들을 바라보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 회장 [AFP=연합뉴스]

'질적 향상'의 방증은 전력 평준화…"이제 매 경기가 전쟁"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최근 여자축구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영원한 승자'의 부재다.

8강 진출 팀 중 FIFA 랭킹 1·2위인 미국과 독일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세계랭킹 1·2위 팀이 8강에 들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콜롬비아(25위)는 랭킹 20위 밖의 팀으로는 최초로 8강행에 성공했다.

범위를 16강으로 넓혀도 이번에 '변방의 팀'이 가장 많이 올라왔다.

처음 16강 토너먼트가 자리 잡은 2015년 캐나다에 이어 2019년 프랑스 대회까지 20위 밖에서는 2개 팀씩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올해 대회는 '랭킹 20위 밖' 팀이 5개로 늘었다. 콜롬비아를 비롯해 나이지리아(40위), 자메이카(43위), 남아프리카공화국(54위), 모로코(72위)가 16강을 밟았다.

특히 모로코는 아랍권 국가 중 처음 여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고, 70위권 팀으로 최초 16강에 오르는 쾌거도 이뤘다.

모로코의 16강 진출을 기뻐하는 선수들과 팬들 [EPA=연합뉴스]

아프리카, 중동 등 여자축구 '주변부' 팀은 특유의 운동능력을 앞세워 유럽팀들이 선보이는 선진 축구와 비등한 성과를 냈다.

준우승팀 잉글랜드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8강에서 아쉽게 짐을 싼 나이지리아의 공격수 이페오마 오누모누는 '변방의 반격'이 시작됐다고 짚었다.

오누모누는 잉글랜드전 직후 "국제전을 많이 소화해 (강호를) 따라잡는 팀이 많아졌다. 변화가 생긴 것"이라며 "이제 매 경기가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전력 평준화의 결과는 '재미'다.

우승팀 스페인과 4강을 밟은 호주가 각각 조별리그 일본전(0-4), 나이지리아전(2-3)에서 패하는 등 예상이 벗어난 경기 결과가 심심찮게 나왔다.

5번째 월드컵에 출전한 호주의 '전설' 클레어 폴킹혼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 "이 대회가 대단히 성공적인 이유다. 매 경기가 예측할 수 없다. 그냥 미친 것 같다"고 평했다.

잉글랜드와 혈투를 펼친 나이지리아 선수들 [로이터=연합뉴스]

'양적 확대 폭' 따라잡은 흥행…24개 팀 체제엔 없던 '3만 관중'

가장 많은 평균 관중을 기록한 여자월드컵은 1999 미국 대회다. 당시 평균 관중은 3만7천319명이었다. 2007년 중국 대회 때도 3만7천218명이었다.

당시만 해도 '평균 3만 관중'은 어렵지 않은 목표처럼 보였다.

그러나 출전국이 24개 팀으로 늘어난 2015 캐나다 월드컵 이후 평균 관중은 2만명대에 머물렀다.

여자축구 팬들은 한정돼 있는데, 이들이 찾아가야 하는 경기 수는 늘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는 이와 반대되는 추세를 보였다. 출전국 확대로 경기 수가 64개로 늘었는데 평균 관중은 3만900명가량으로 늘었다.

직전 대회인 2019 프랑스 월드컵의 평균 관중은 이보다 9천명가량 적은 2만1천756명에 그쳤다.

물론 '흥행 돌풍'의 중심은 개최국 호주다. 호주가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치른 3경기 모두 전 좌석이 동났다.

호주-잉글랜드전 전 좌석이 동난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 [EPA=연합뉴스]

아일랜드와 개막전, 덴마크와 16강전, 잉글랜드와 4강전 모두 최대 수용 관중인 7만5천784명이 이 경기장을 찾았다.

특히 잉글랜드전은 호주 전역에서 평균 700만명이 넘은 시청자를 모아 2001년 집계 이후 최다 기록을 썼다. 시청률 조사업체 오즈탐에 따르면 실시간 시청자 수가 1천115만명까지 증가했다.

다만 팬들이 개최국 호주나 뉴질랜드의 경기만 찾은 건 아니다.

이들 국가와 별다른 연이 없는 우리나라 경기에도 평균 2만5천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했다.

콜롬비아, 모로코, 독일전에 각각 2만4천323명, 1만2천886명, 3만8천945명을 기록했다.

인판티노 회장에 따르면 이번 대회는 최소 5억7천만달러(약 7천655억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지난 18일 "5억달러가 넘는 수익이 나는 대회는 남자축구에서도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호주 축구대표팀을 응원한 팬들 [EPA=연합뉴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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