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사 수, OECD 회원국 중 사실상 꼴찌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2023. 8. 2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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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수가·소송 대안 마련을 동시 진행해야
비수도권, 필수 의료과 의사 부족으로 의료체계 붕괴 초읽기

(시사저널=노진섭 의학전문기자)

전문의가 되려는 전공의들 사이에는 이른바 '인기 과목'과 '기피 과목'이 있다. 성형외과·피부과 등 인기 과목에는 전공의가 모집 정원 이상으로 몰리지만 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기피 과목은 미달이다. 예컨대 지난해 전국적으로 63명을 모집한 성형외과에는 107명이 몰렸으나, 60명 정원의 흉부외과에는 25명만 지원했다. 

전공의가 없으니 전문의 수도 줄어든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4월 발표한 시도별 내과·의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등 5개 필수과목의 전문의 현황을 보면, 전남·울산·세종에 있는 병원의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전국 평균 이하로 조사됐다. 인천은 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전북은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 대전·부산·충북은 응급의학과가 전국 평균에 미달했다.

아플 때 동네 병원을 찾아 쉽게 진료받을 수 있어 외관상으로는 의사 수가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하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구급차를 타고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응급환자 수는 연간 3만 명이 넘는다. 수도권과 대도시가 아닌 비수도권과 지방에서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는 여러 배경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상황도 한몫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발표한 'OECD 보건 통계 2023'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한의사 포함·치과의사 제외)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이다. OECD 평균 3.7명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자료를 제출한 30개 회원국 중 멕시코(2.5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의사 수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의사 부족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가 의뢰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2021년)에 따르면 2030년 1만4334명, 2035년엔 2만7232명의 의사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 

경기도 한 병원의 산부인과 수술 장면 ⓒ시사저널 최준필

"무턱대고 의사 수만 늘려봐야…" 비판도

매년 약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되고 현재 의사 중 55세 미만이 70% 이상이므로 향후 20년 동안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게다가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하므로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25년 2.95명, 2035년 3.91명으로 오히려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그러나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의사 수는 부족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우리처럼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겪는 선진국도 인구 대비 의사 수가 우리나라보다 많음에도 의사 수를 늘리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6월 한 라디오 방송에서 "고령화가 되고 건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니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내 의사면허 소지자(치과의사·한의사 제외)는 2022년 12월말 기준 13만4900명이고 이들 중 활동하는 의사는 11만2321명이다. 의사 수를 얼마나 늘려야 할지 특정하기란 어렵다. 병상 수, PA(진료보조인력), 의사의 지역 분포 등 다양한 문제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OECD 평균(1000명당 3.7명)까지는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2035년 약 2만7000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면 산술적으로 한 해 2700명씩 10년간 배출하면 된다. 현재 의대 정원은 약 3000명으로 18년째 동결된 상태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6월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2025년도 입시에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 다만 구체적인 증원 규모는 추후 논의를 통해 다시 정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무턱대고 의사 수만 늘려봐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돈 되고 편한 인기 과목 의사만 늘지 돈 안 되고 힘든 기피 과목 의사는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도권 병원에만 의사가 몰리고 지방 병원에는 의사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대 정원을 늘렸으나 필수의료 인력난과 지방 의료 인력난을 해결하지 못한 해외 사례도 있다. 그리스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2007년 5.31명에서 2019년 6.31명으로 늘렸으나 특정 진료과목 쏠림 현상과 지방 근무 기피 현상을 해결하지 못했다. 일본도 2008년부터 의대 정원을 꾸준히 증원해 2023년 9384명까지 늘렸으나 지역 의료인력난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건강보험 재정 부담만 커져 다시 의대 정원 감축을 진행 중이다(46쪽 딸린 기사 참조).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 수가 증가하면 기피 과목 의사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소위 '낙수효과'다. 또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일정 비율을 지방 의료인력으로 충원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도 의대 정원을 늘리되 필수 의료인력과 지방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동시에 진행할 수밖에 없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7월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지방의료원 의사 구인난 등 어려운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의사 인력 부족에서 기인한다. 의사 인력 확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 인력 확충이 없으면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필수의료 정책을 패키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5월24일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폐업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의사들 "의료 수가·악성 소송 대안 필요"

의대 정원 확대와 동시에 필요한 대안은 무엇일까. 의사들이 공통으로 내세우는 것은 악성 소송 대책과 의료 수가 현실화다. 필수의료 과목일수록 악성 소송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으므로 전공의가 기피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응급의학과 의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전공의들이 응급의학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졌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의학과는 일이 힘들어도 필수의료라는 자부심으로 한다.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는 사망이나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소송이 많다. 이에 대한 국가적 보호장치가 없으니 전공의가 기피한다. 미국·유럽처럼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우리나라 의사가 의료과실로 경찰 조사, 검사 기소 및 형사재판을 받은 건수 및 유죄율은 다른 나라보다 매우 높다. 최선의 진료 후 고소를 당할 확률이 일본의 9.1배, 영국의 31.5배, 독일의 1.7배인데 어떻게 전공의들에게 필수의료를 선택하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한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아이들을 진료하는 것이 좋아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됐다. 그런데 의사가 대하는 상대는 아이가 아니라 그 부모들이다. 일부 부모는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악성 민원이나 소송을 제기한다. 그런 일에 시달리다 보니 정작 아이를 진료하기가 어렵고 두렵다"고 밝혔다. 

안 그래도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소아청소년과는 수익난과 악성 소송으로 인한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5년간 소아청소년과 662개가 경영난으로 폐업했고, 의료 서비스 불만족 등을 이유로 소송을 당한 소아청소년과는 최근 일주일 사이에만 10여 곳에 달한다. 소아청소년과 수가는 1만3000원으로 미국(약 27만원)과 호주(약 28만원)의 20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은 3세 미만 아이의 의료 수가를 성인의 200~500%(의원급 기준)로 가산 적용한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유독 우리나라만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전문의가 부족하다. 내부 설문조사를 해보니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싶지만 저수가·소송 부담 등 외부 여건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일하지 못한다는 사람이 20% 이상이다. 그동안 소아청소년과가 운영돼온 것이 이상할 정도로 수가가 낮다. 소아청소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방에서도 소아청소년과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체계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그런데 의료 수가 인상만이 해법은 아니다. 기피 과목 전공의 지원율이 낮아지면서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자, 보건복지부는 2009년 흉부외과와 외과의 수가를 30~100%, 2010년 산부인과 수가를 25~50% 인상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수가는 올려주면서 병원이 부족한 전문의를 추가로 고용하도록 하는 인력 기준은 만들지 않았다. 병원은 전문의보다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전공의를 뽑는다. 전공의 과정을 마친 전문의는 그 병원에 자리가 없어 동네 의원을 차린다. 그것도 자신의 전공 과목과 다른 진료과에서 일한다. 예컨대 흉부외과 의사 중 31%가 의원에서 일하는데 실제 흉부외과 진료 의사는 14%에 불과하다. 그 결과 2009년부터 2조원가량 재정을 투입하고도 전공의 지원율은 높아지지 않았고, 전문의도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원인 진단이 잘못됐으니 대책이 효과적일 리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의료 수가 인상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흉부외과 수가를 높인 적이 있지만 여전히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은 늘어나지 않았다. 필수의료과목 의사의 수입을 개원의 수준으로 맞추려면 건강보험 5조원이 필요한데, 가능한 일인가. 따라서 의대 정원을 늘리면서 의료체계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지역에 따라 필수의료 의사를 배치하는 정책, PA 제도, 비급여 수준 통제가 필요하다. 2000년대 초부터 이런 논의가 있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다. 그 결과로 현재 의료체계는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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