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카자흐스탄의 추억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3. 8. 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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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카자흐스탄이 4일 동안 구소련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그 4일간 구소련의 멤버가 아니라 구소련 자체였다. 1991년 구소련 구성국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구소련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카자흐스탄만 남게 되었다. 벨라루스가 탈퇴했는데 그 다음으로 러시아가 탈퇴해버렸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은 본의 아니게 유일한 소련 국가가 되었고 4일 후에 탈퇴(?)해서 독립 카자흐스탄이 된 것이다.

그 후 10일간 소련은 영토 없는 연방으로 존속하다가 구 멤버들이 해체를 결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카자흐는 러시아와 긴 국경을 맞대고 있다. 7,644km로 미국-캐나다의 8,893km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국경이다. 대부분이 초원 지역이어서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7년에 로스쿨이 도입되기 얼마 전이다. 필자는 서울법대의 국제부학장을 맡았었다. 학생교류나 다른 제휴를 맺은 해외의 몇몇 법대를 방문했다. 그중에 카자흐스탄 인문대학이 들어 있었다. 법학과가 인문대학 내에 있다. 우리를 초청해 왔다.

대한항공은 카자흐스탄의 옛 서울이자 최대 도시인 알마티까지 운항했다. 거기서 하루를 넘기고 국내선으로 새 서울인 아스타나로 향했다. 아스타나는 인구 약 1900만의 카자흐스탄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황량한 평지에 계획 건설한 도시다. 나라의 북쪽에 있다. 거기에 카자흐스탄인문대학이 있다. 아스타나는 인도네시아의 새 서울 누산타라의 (아직은) 유일한 자매도시다.

총장을 만나 상호교류 확대에 관한 협의를 했다. 직함이 총장이지만 학교 규모로 보면 우리 대학 학장급이다. 그런데 총장이 상석에 앉아 손님인 우리를 배석에 두고 회의를 하는 것이 특이했다. 맞은편에 카자흐 측 보직자들이 앉았다. 서열순인 것이 분명했다.

총장 다음인 부총장이 매우 젊은 여성이었다. 영어를 가장 잘했다. 의상은 샤넬이었고 고급 시계를 차고 있었다. 표정이 도도했지만 알고 보니 대단히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 일행의 일정을 잘 배려해 주었고 심지어 자기 차까지 쓰라고 기사와 함께 내주었다. 대형 토요타 최신형 SUV였다. 좀 놀랐는데 한 직원이 귀띔해 주기를 프랑스 파리대학을 나왔고 당에서 매우 높은 분의 자제란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도 방문했다. 우리가 들어가니 대표 학생이 벌떡 일어나서 뭐라고 말했고 그러자 학생 모두가 일제히 일어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학생들은 러시아계 외모와 몽골과 유사한 카자흐계 외모 반반으로 보였다. 가지고 간 PPT로 우리 학교를 소개하고 나왔다.

좀 있다가 전교생을 다 모아놓은 강당에서 간단한 스피치도 했다. 계획에 없는 요청이어서 좀 당황했는데 마침 영어를 아주 잘하는 학생이 있었고 통역을 해주었다. 새로운 교류협정을 체결하는 세레모니가 뒤따랐다. 국가 정상 간 조약을 체결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진지하고 엄숙했다.

카자흐 측은 우리 일행을 시종 극진하게 대접했고 안내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1번 방문지가 당시 대통령 누르술탄 기념관이었다. 우리 어릴 때 자주 보았던 대통령 우상화 공간 비슷하게 생긴 곳이었는데 어쨌든 흥미있는 경험이었다. 당시 나라의 모든 곳이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전형적으로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부 건물은 모두 한 곳에 모여있었고 대통령궁의 높이가 대법원보다 더 높았다.

카자흐의 주력 산업은 석유와 천연가스다. GDP의 60%를 담당한다. 광업이 그다음이다. 한국 사업가들의 진출도 상당했는데 주로 부동산개발이었다고 했다. 몇 해 전에 그때 생각이 나서 지도를 찾아보니 아스타나가 통 찾아지지를 않았다. 이름이 바뀌었던 것이다. 28년 11개월 장기 집권했던 누르술탄이 2019년에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올라앉은 것 같은데 후계자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의회 결의로 수도 이름을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개칭했던 것이다.

2022년 초에 카자흐에서는 경제난과 코로나 여파를 포함 여러 가지 이유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보안군과 경찰 26명, 시위대 164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공수군이 신속 개입해서 진압되었는데 누르술탄은 벨라루스로 망명했고 정부는 개헌 등 민주화에 필요한 여러 조치를 약속했다. 수도 이름은 다시 아스타나로 되돌려졌다.

얼마 전 유럽 출장을 가는데 러시아 항로가 사용할 수 없게 되어서 비행기가 돌아가는 바람에 카자흐스탄 위를 지나게 되었다. 항로 안내 화면에 반가운 아스타나 지명이 나왔고 비행기는 그 아래쪽으로 날았다. 카자흐스탄이 잘 되고 우리를 친절히 맞아주었던 사람들과 학생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bsta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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