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지장산 계곡 피서] 에어컨 없는 집에서 탈출하다
서울에 있는 작고 귀여운 우리 집엔 에어컨이 없다. 그렇게 산 지 5년 넘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어느 환경단체가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사무실에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이긴 기분이었다. 이긴 것 같은데 기쁘지 않았다.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렇지, 작고 귀여운 집에 에어컨은 어울리지 않지. 우리 집은 아파트 10층, 베란다와 방 창문을 열어 놓으면 맞바람이 분다. 그리고 집 바로 뒤에 불암산이 있다. 불암산 그늘이 아파트까지 내려오진 않지만 산에서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으면 진짜 시원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따져보면 1년에 에어컨 켜는 날은 얼마 안 된다. 길면 일주일 될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나와 아내는 그렇다고 믿고 올해도 에어컨은 없다!고 합의했다.
집에 에어컨이 없는 우리는 더운 게 뭔지 확실히 안다. <더울 땐 이렇게>라는 제목으로 두꺼운 책도 만들 수 있다. 더울 땐 가만히 있어야 한다. 더울 땐 찬물 샤워를 하루에 4~5회 해야 한다. 더울 땐 냉동실에 얼음을 가득 쌓아 놔야 한다. 등등 목차만 A4 한 장 가득 찰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피서避暑의 개념을 정확하게 안다. 피서를 단지 휴가 기간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한여름 우리에게 피서는 절실하고 간절하고 보고 싶은 단어다. 그건 마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부적같이 느껴진다. 이름 정말 예쁘다. 피서, 피서! 반복해서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우리는 피서 기간을 보통 8월 초로 잡는다. 어느 해엔 이글이글대는 집에서 뛰쳐나와 서울의 한 호텔에서 3일 정도 묵은 후 귀가한 적 있다. 올해는 그 시간을 좀 앞당겼다. 7월 첫 주 날이 무척 더웠기 때문이다.
"우리 어디로 가?"
아내에게 물어봤다. 아내는 스마트폰을 뒤적이더니 포천 지장산 계곡 풍광이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 속 사람들은 계곡에서 수영하고 있었다. 물이 깊어 보였다. 아내가 설명했다.
"여기, 회사 선배 아는 사람이 근처에서 목욕탕을 한대. 그 사람들이 자주 가는 덴데, 계곡에 사람이 얼마 없대."
"뭐라고? 거기서 목욕탕을 한다고? 왜 그랬지?"
궁금한 게 많았는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래,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모시고 가자"고 했다. 아내는 좋다고 했다.
다음날 차를 갖고 아버님 어머님 댁으로 갔다. 두 어르신은 먹을 걸 한보따리 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네 명이 그것들을 이고 지고 차에 실었다. 트렁크의 반이 찼다. 나는 운전석으로 가서 앉았다. 내비게이션에 '지장산 계곡'이라고 쳤다. 햇빛이 유리에 반사됐다. 눈이 살짝 부셨다.
의정부를 지나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다. 철원이 나왔다. 한탄강도 건넜다. 이윽고 생애 처음 보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니 저수지가 나왔고 저수지 주변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오, 여기다!"
우리는 차를 대고 트렁크를 열어 짐을 꺼냈다. 넷이서 짐을 이고 지고 넓은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계곡은 마을에서 관리하는 것 같았는데, 주차료나 입장료는 내지 않았다.
더웠다. 티셔츠가 금방 땀으로 젖었다. 임도 옆으로 계곡이 보였다. 물이 많았다. 장모님이 말했다.
"어머나, 저 많은 물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나는 거기에 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어머님 시원하라고 지장산이 막 물을 뱉고 있어요."
장모님은 웃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나를 흘겨봤다. 나는 계곡으로 눈을 돌렸다. 물이 콸콸 소리를 냈다. 평일이라 계곡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괜찮은 자리가 많이 보였는데도 우리는 계속 올라갔다.
계곡은 관광지로 쓰인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300m 간격으로 간이 화장실이 나왔고 화장실에 번호가 붙어 있었다. 느릿느릿 걷던 장모님이 말했다.
"어머, 저기 사람들 의자 펴고 앉아 있네. 우리도 의자 가지고 올 걸 그랬어. 저기 어때? 저기서 쉬자."
아내가 대답했다.
"아니야, 엄마 더 가야 해. 물이 더 깊은 곳으로. 빨리 빨리와!"
장인어른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임도 너머 계곡 위로 멋진 절벽이 보였다. '저기 위로 올라가면 멋질 것 같은데?' 생각만 했다. 조금 더 올라가자 등산 안내판이 나왔다. 임도는 6km 정도 이어져 있고 계속 가면 담터계곡이라는 데가 나왔다. 왼쪽 위에 있는 지장봉(876m)은 남한에서 등산이 가능한 가장 북쪽에 있는 산이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었다. '지장산 응회암'을 설명하는 안내판도 나왔다. 계곡 주변의 바위들은 백악기 시대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긴 재가 날아갔다가 떨어진 것들이라는 설명이었다.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 죄다 우리보다(장인 장모님 포함)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곡에서 까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계속 올라갔다. 임도는 여전히 넓었다. 장모님이 말했다.
"여기 어때? 이제 그만 계곡에 들어가서 자리 잡어."
나는 계곡으로 들어가 자리를 살폈다. 어떤 아저씨가 매트리스를 깔고 혼자 누워 있었다. 내가 그 옆으로 가서 두리번대자 아저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좀 떨어진 바위로 가서 그 위에 자리를 깔고 다시 누웠다. 나는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저씨가 원래 누워 있던 자리에 돗자리를 폈다.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면서 물방울을 튀었다. 그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우리는 교촌치킨 오리지날, 옥수수, 방울토마토, 새로 나온 먹태깡, 콜라, 사이다 등등 음식을 가방에서 꺼내어 돗자리에 펼쳤다. 음료수를 땄다. "치익!" 탄산이 터졌다. 아내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먹태깡을 뜯었다. "부스럭부스럭" 아내는 또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닭다리를 하나 꺼내 씹었다. "와그작!"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래, 이게 바로 피서지. 더위를 피하는 중에는 건드리지 않는 게 예의야. 나는 자유를 느꼈다.
"물에 좀 들어가봐!"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수영을 좋아한다. 수영복, 물안경, 발에 끼우는 물갈퀴를 챙겨왔다.
"그래, 들어가볼까?"
상의를 벗었다. 하얀 배가 볼록 튀어나왔다. 장모님이 보고 있었는데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배나온 아저씨니까. 튀어나온 배는 집어 넣을 수 없고, 이 배는 누구에게도 전혀 위협적이지 않으니까. 나는 천천히 물 속으로 들어갔다. 굉장히 차가웠다! 방금 전까지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는데! 땀이 팍 식었다. 덥다는 생각은 계곡 저 아래, 우리가 차에서 내려 출발했던 곳으로 도망쳤다. "으, 으, 차가워." 몸에 물을 뿌리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말했다.
"더, 더 깊은 데로 가봐."
나는 그 말에 따랐다. 목까지 잠기는 곳에 이르러 그만뒀다. 물이 너무 차가웠기 때문이다. 물안경을 쓰고 얼굴을 물에 살짝 담갔다가 뺐다. 그러곤 물 밖으로 허우적대면서 나왔다. 그래! 이게 피서지! 도망쳤던 더위는 죽은 것 같았다.
장인어른도 물에 들어갔다. 장인어른 역시 얼마 못 버티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도 들어갔다. 아내는 물이 허벅지까지 차는 곳에서 멈췄다. 장모님은 높은 바위에 앉아 그런 우리를 내려다봤다. 모두 합창하듯 외쳤다.
"이게 피서지! 이게 바로 피서야!"
다시 돗자리로 돌아와 옥수수를 먹고 남은 치킨과 과자를 먹었다. 배가 불렀다. 다음, 근처 마당바위로 가서 아무것도 깔지 않고 벌렁 누웠다. 모자로 얼굴만 가리고 팔과 다리를 쫙 벌렸다. 물소리, 새소리가 MC스퀘어(집중력을 향상시킨다는 음향기기)처럼 들렸다. 나는 또 생각했다. '이게 진짜 피서지.' 졸렸다. 깜빡 잠이 들었다.
꿈을 꿨다. 분홍색 새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구름이 머리에 앉았다. 분홍색 새가 자신의 등 위에 올라탄 나에게 속삭였다. '이게 바로 피서지.' 나는 잠에서 깼다. 아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나 코 골았어?" 물었다. 아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계곡 위로 드는 햇빛이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계곡에 계속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몸이 서늘했기 때문이다. 짐을 싸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까 도망쳤던 더위가 죽지 않고 돌아왔다. 그리곤 끈적거리게 들러붙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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