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작은도서관

2023. 8. 2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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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삭감 예산 서울시는 추경에, 대구시는 누락
문화활동·공동체 기능에도 행정·재정 지원 미비
도서관 예산 삭감 논란이 이어지면서 시민사회에서는 지자체가 도서관을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 픽사베이



올해 초 서울·대구·경기 등 광역지자체에서 도서관 예산이 삭감돼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는 작은도서관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가 논란이 확산하자 추경에 반영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서울시는 지난 7월 7일 추경에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을 7억8200만원 편성했다고 밝혔다.

반면 대구시는 추경 예산안에도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을 반영하지 않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시 또한 올해 본예산에서 작은도서관 지원금을 전액 삭감했다. 2012년 작은도서관 진흥법이 만들어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기준 2억2000만원 규모로 집행됐던 예산이 전액 삭감되자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대구시와 대구시의회는 추경에서 편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추경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박성원 대구시작은도서관협의회 의장은 “예년에 비해 10~20% 삭감되는 수준도 아니고,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전액 삭감됐다. 시의원들이 추경에서 반영하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반영이 안 된 과정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구시에는 260여개의 작은도서관이 있다. 시예산은 등급 등을 기준으로 작은도서관에 배분돼 장서구입비 등으로 활용돼왔다. 박성원 의장은 “사실 작은도서관은 사비를 털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월 20만~40만원의 적은 지원액이지만 주로 신간을 구입하는 등의 용도로 쓰여졌다”라며 “이 예산마저 전액 삭감하면 작은도서관을 운영하지 말라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시에서 작은도서관이 왜 필요하며 활성화돼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육정미 대구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작은도서관 예산이 추경에 반영된 줄 알았는데, 예산실에서 다시 삭감된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이 이를 놓쳐 반성하고 있다”라며 “2차 추경 때 다시 이를 반영하기로 의회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예산실에서 올라오지 않을 경우 예결위 안에서 다른 터무니없는 예산을 삭감해서라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시에서 안 하려고 한다. 중앙정부 기조도 그렇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채무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시민에게 직접 가는 작은 예산까지 삭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의 열린 공간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를 담은 작은도서관 진흥법 제3조 제1항·제2항은 국가 및 지자체는 작은도서관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행정적·재정적 지원은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2021년 작은도서관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립 작은도서관의 주요 수입원은 자부담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 작은도서관 4936개관의 수입원을 조사한 결과 자부담이 2893개관(58.6%)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행정기관 지원이 2251개관(45.6%), 후원금 971개관(19.7%), 회원 회비 및 이용료 326개관(6.6%) 순으로 나타났다.

작은도서관은 지역주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도서관법 제4조는 작은도서관을 “주민의 참여와 자치를 기반으로 지역사회의 생활친화적 도서관 문화의 향상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도서관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전국 지자체에 등록돼 운영 중인 작은도서관은 6448개다. 주택법에 따르면 500세대 이상의 아파트단지에는 작은도서관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이은주 어린이와작은도서관협회 이사장은 작은도서관은 지역사회에서 공립도서관과는 다른 독특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은주 이사장은 “작은도서관은 영유아, 어린이, 노인 등 지역에서 취약한 이들에게 가장 가까이에서 도서관 서비스를 하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1990년대 공립도서관의 수가 적었던 시기, 작은도서관은 공립도서관의 역할을 대신 해왔으며, 단순히 책을 보는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문화활동과 공동체 형성의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은주 이사장은 “공립도서관은 조용히 해야 하는 ‘학습의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작은도서관은 함께 소리내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라며 “지역사회에서 주민들끼리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행사와 사업을 통해 독서 문화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은 독서동아리도 돈을 내면서 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작은도서관은 안전한 공간에서 영유아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작은도서관 이용자는 “작은도서관에서 독서동아리 외에 책과 관련 없어 보이는 그림동아리 같은 걸 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 책과 가까워지고 지역공동체와 관계 맺기로 이어지게 된다”라며 “문화센터와 동네 주민센터에서도 취미 강습 등이 있지만, 공간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도서관에 정치적인 잣대

지자체의 잇따른 예산삭감을 두고 도서관에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017년에는 구미시가 사립 작은도서관이 ‘새마을’ 이름을 달지 않으면 지원대상에서 제외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구미참여연대에 따르면, 구미시는 2013년 조례 제정 이후 지금까지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면서 ‘새마을’이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에만 보조금을 지원하고, 개인이나 다른 법인이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에는 지원을 거부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작은도서관은 아니지만, 경기도가 용인시 느티나무도서관의 지원금을 삭감하면서 도서관을 향한 ‘정치 편향’ 공격이 이어지기도 했다. 경기도의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원금을 전액 삭감하자 도서관 회원들이 예산 복원을 위한 ‘서명 운동’에 나섰다. 서명 운동이 지역사회의 공감을 받자, 용인시가 보도자료를 내 서명 운동이 “의도적으로 용인시를 흠집 내기 위한 정치 행위”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용인시는 경기도와 매칭해 예산을 편성해 왔는데, 경기도의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용인시 또한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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