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약초 이야기]⑥ 하얀 머리도 검게 만드는 '하수오'
[※ 편집자 주 = 약초의 이용은 인간이 자연에서 식량을 얻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치할 정도로 오래됐습니다. 오랜 옛날 인류 조상들은 다치거나 아플 때 주위에서 약을 찾았습니다. 그때부터 널리 사용되고, 지금도 중요하게 쓰이는 게 약초입니다. 현재는 한방 약재뿐만 아니라 생명산업, 기능성 식품, 산업 소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2023 산청세계전통의약항노화엑스포' 9월 개최를 앞두고 우리 전통 약초와 관련한 이야기, 특성, 효능 등이 담긴 기사를 연재합니다.]
(산청=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옛날 중국 남쪽 지방에 하전아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선천적으로 몸이 허약해 58살이 되도록 결혼도 못 하고 홀로 살았다.
어느 날 집 뒤에 있는 산에 올라 넝쿨식물을 하나 캐와 곁에 둔 채 잠들었는데 꿈에서 머리카락과 수염이 눈처럼 하얀 노인이 나타나 그를 부른 뒤 말했다.
"네가 오늘 산에서 캔 뿌리는 신선이 주는 선약이니 정성스럽게 먹도록 하여라."
보통 꿈이 아니라 생각한 하전아는 자신이 캐 온 식물 뿌리를 돌절구에 찧어 가루를 낸 뒤 하루 세 번 먹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몸에 기운이 솟고 머리도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일 년이 흐르자 허옇게 센 머리카락이 다시 까맣게 바뀌고 얼굴도 어려져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젊은이 같은 활기를 되찾은 그는 예순 가까운 나이에 아내를 맞아 아들을 낳고 130살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이 식물에 '어찌(何) 머리(首)가 까마귀(烏)처럼 까맣게 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감탄의 의미로 하수오(何首烏)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밖에 하수오에 얽힌 설화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하전아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듯 대개 장수와 관련 있다.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며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이 약초에 투영돼 세대를 거듭하며 전해진 셈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하수오는 마디풀과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줄기가 가늘고 길며 서로 엉켜 자란다.
뿌리 색이 적색이라 적하수오라 부르기도 하며 뿌리가 동그랗고 통통한 모양으로 고구마를 여러 개 연결한 것과 유사하게 보인다.
꽃은 연한 황록색으로 7∼8월에 개화하며 주로 뿌리를 약용으로 사용한다.
중국 고대 의학서 '황제내경'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약재로 사용됐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강원도에서는 은조롱, 황해도에서는 새벽뿌리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렀다.
다른 약재인 백수오를 하수오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백수오는 박주가릿과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뿌리가 도라지처럼 손가락 굵기에 길쭉하고 흰색을 띠는 차이가 있다.
오늘날 하수오는 간 기능을 항진시켜 피로를 적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만들며 신경통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에게는 탈모 예방, 여성에게는 빈혈·대하증·만성변비·산전 산후 허약에 좋다.
혈장 강화 효과가 있는 에모딘 성분이 함유돼 약재로 먹을 뿐만 아니라 샴푸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밖에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고혈압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강한 생명력으로 산에 야생하기도 하며 배수가 잘되는 점질양토나 사질양토 등 전국 어디서나 재배가 가능하다.
경남에서는 2020년 기준 약 30개 농가가 7㏊ 규모의 하수오를 재배하고 있다.
산청군 지역기업인 참들애바이오푸드영농조합은 2019년 지역 내에서 재배한 하수오로 만든 '지리산 산청 하수오샴푸'를 출시했다.
이밖에 올해 밀양시 종남산에서 180년생으로 추정되는 12㎏짜리 대형 하수오 뿌리가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산청군 관계자는 "무협 소설에서 주인공이 내공을 늘리기 위한 영약으로 천년 묵은 하수오를 복용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로 효능이 뛰어난 약초"라며 "자연산 하수오는 구하기 힘들어 비싼 값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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