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에 맞서다]⑮ 공주, 온누리시민으로 '생활인구'를 늘리다
원도심도 생태하천·카페촌 조성하며 '환골탈태'…관광객으로 문전성시
온누리시민, 공주시 주민등록인구보다 많아져…"2026년까지 50만명 달성"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공주=연합뉴스) 이은파 기자 = 공주가 붐비고 있다.
주말과 휴일에 충남 공주 공산성과 제민천 주변은 전국 각지에서 온 나들이객들로 북적인다. 이른 아침부터 해가 기우는 저녁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썰렁하기만 했던 10여년 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광복절 징검다리 연휴 둘째 날인 지난 13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염이 한풀 꺾였지만, 공산성과 제민천을 둘러싼 원도심 분위기는 가족 단위 관광객과 각종 모임에서 온 나들이객들로 뜨거웠다.
나들이객들은 공산성 매표소 옆 공주시 관광 홍보부스에서 직원의 권유를 받고 온누리공주시민에 가입한 뒤 공산성으로 향했다. 일부는 원도심 주요 관광지를 누비는 '고마열차'에 몸을 실었다.
수원에서 온 정모(43) 씨는 "백제문화 탐방 차 가족과 함께 왔다"며 "조금 전 온누리공주시민이 됐는데, 공산성과 무령왕릉, 왕릉원 등 주요 문화재 관람료를 50% 깎아준다고 하니 너무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원도심을 가로지르는 제민천 주변은 온누리공주시민이 된 외지인들로 가득했다.
세종시에 사는 범모(56) 씨는 "공주의 매력은 금강을 따라 이어지는 제민천을 걷거나 주변 카페거리를 둘러보는 것"이라며 "2년 전 온누리시민이 된 후 더 자주 찾는다"고 했다.
공주시, '온누리시민'으로 인구 감소에 맞서다
백제 도읍지였던 공주는 임진왜란 직후인 1603년 충청감영이 설치된 후 300여년간 충청권의 중심이었다. 특히 교육 근대화를 선도한 교육도시로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불어닥친 인구 감소의 풍파는 공주시도 비껴갈 수 없었다. 인구는 해마다 줄어들고, 도시는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세종시 건설마저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인구 유출이란 대세를 막기 어렵다고 판단한 공주시는 새로운 길을 찾아 대안을 모색했다. 바로 '생활인구'를 늘리는 길이었다.
관광, 휴양 등을 위해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면서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생활인구'를 늘리면 인구 증가와 맞먹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온누리공주시민제'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됐다.
온누리공주시민제는 국내외 남녀노소 누구나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 가입하면 주민등록 이전 없이 공주시민에 버금가는 권리를 누리거나 활동할 수 있다.
공주시는 2008년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 15년째 이어오고 있다.
온누리시민에 가입하면 '모바일시민증'이 발급되고, 공산성, 무령왕릉·왕릉원, 석장리박물관 등 유명 관광지를 절반 값으로 관람할 수 있다.
운치 있는 하숙마을에서 20% 할인된 가격으로 묵을 수 있고, 지역 농특산물 쇼핑몰 '고맛나루장터'에서 마일리지를 활용해 저렴하게 물품을 살 수 있다.
백제문화제, 석장리구석기축제 등 지역 축제에 참여하면 입장료 할인은 물론 농특산물을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사람들을 공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공주만이 발산하는 멋과 매력이 필요했다. 공주시는 그 멋과 매력을 '원도심 재개발'에서 찾기로 했다.
원도심의 '환골탈태', 공주를 빛나게 하다
허미정(39) 씨는 공주 원도심의 제민천변에서 '미정작업실'이란 카페를 운영한다.
15평 남짓한 미정작업실은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글도 쓰고, 사람도 사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카페다.
허 대표는 "이전에 일했던 시설의 고객 소개로 공주에서 터를 잡게 됐는데, 지금의 삶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주 고객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데,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공주시민과 여행객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보람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미정작업실은 제민천변에 자리 잡은 특색 있는 카페 중 하나다.
온누리시민제와 함께 원도심 재개발을 '공주시 부활'의 핵심 키워드로 삼은 시는 제민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고, 주변 낡은 건물들을 새로 단장했다.
리모델링한 건물들은 특색 있는 정취와 풍경을 지닌 각양각색의 카페와 가게들로 탈바꿈했다. 대규모 한옥마을도 조성됐고, 한옥 카페도 속속 세워졌다.
이러한 노력은 적중했다.
온누리시민이 늘어나고, 공주 원도심이 매력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관광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시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제민천변의 한 카페에서 만난 대전 주민 이모(65) 씨는 옛 추억에 사로잡힌 듯했다.
자신을 '온누리공주시민 원년 멤버'라고 밝힌 이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공주로 수학여행 왔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카페 밖 풍경을 보니 어린 시절로 되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전남 순천에서 온 박모(46) 씨도 "고마열차를 타고 원도심 문화재를 차례로 둘러봤는데, 매우 즐거웠다"며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고도 제한 때문인지 모든 건물이 4층 이하로 낮고 한옥도 많아 정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생활인구' 늘어나며 도시 활기…"2026년 온누리시민 50만명 달성"
온누리시민제와 원도시 재개발의 효과는 수치로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달 말 기준 온누리공주시민은 11만2천559명에 달한다. 공주시 주민등록인구 10만2천692명보다 1만 명이나 더 많다.
공주시를 찾아온 관광객도 2015년 268만 명에서 지난해 320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온누리시민이 늘면서 지역 농특산물 쇼핑몰인 고맛나루장터 매출 또한 매년 10% 이상 늘어나는 등 지역경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고맛나루장터 매출액은 6억원으로, 5년 전인 2017년 12월 2억5천만원의 배 이상으로 늘었다.
시는 2026년까지 온누리공주시민을 50만명으로 대폭 늘린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현재 반값 혜택이 주어지는 공산성, 무령왕릉·왕릉원, 석장리박물관 등 관광명소 입장료는 아예 무료로 할 방침이다.
무령왕 서거·성왕 즉위 1500주년을 맞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부여와 공주 일대에서 펼치는 '2023 대백제전'도 무료입장 혜택을 준다.
온누리시민이 한옥마을에서 숙박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야영장과 사계절 썰매장, 물놀이장 등도 공주시민과 동등한 우선 예약권을 준다.
가상공간에서 지역 관광명소 6곳을 게임 방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온누리공주 메타버스'도 구축한다. 공주시 상징 캐릭터와 아이템도 제작한다.
최원철 공주시장은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소멸 문제 해결의 가장 실효성 있는 방법은 '생활인구'를 늘리는 것"이라며 "온라인공주시민제가 생활인구를 늘리는 핵심 역할을 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성은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자체들이 '생활인구 늘리기'에 공을 들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는 정확한 생활인구 데이터를 파악해 지자체에 제공하고, 지자체는 이 데이터를 가공 응용해 구체적인 정책으로 만들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적재적소에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sw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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