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유니콘’ 링글 "영어도 스타트업도 잘하는 비결은 하나" [최진석의 실리콘밸리 줌인센터]
‘실리콘밸리 줌인센터’는 이 지역의 창업자, 최고경영자(CEO), 엔지니어,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인물을 ‘줌인(zoom in)’해 그들의 성공, 좌절, 극복과정을 들여다보고 지역의 ‘주민’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앞으로 줌인센터에 가능한 많은 주민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링글’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버드, 스탠퍼드, 예일 등 미국의 상위 20위권 명문대생과 일대일로 화상 영어회화 학습을 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대학 졸업 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근무하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이 대표는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에서 수학한 뒤 동기인 이성파 대표와 2015년 한국에서 이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현재는 주로 실리콘밸리에 머물면서 서비스 개선과 튜터 채용, 신사업 발굴 등 사업 전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선정한 ‘미래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비상장기업)인 링글은 최근 낭보를 접했습니다. 지속해서 개선을 요구해 왔던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현행 학원법 시행령은 초중고생에게 외국어를 교습하는 외국인은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대학 재학생이 튜터인 링글은 성인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이죠.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가 학력 요건을 온라인 강의에 한해 ‘대학 3학년 재학 이상 또는 전문대졸’로 개선하라고 교육부에 권고했고, 시행령 개정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링글이 서비스 범위를 10대 학생들로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와 함께 내년부터 기업 임직원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직원들이 기업의 특성에 맞는 영어를 구사하는지 측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를 추가하는 것이죠.
이승훈 대표를 실리콘밸리 북부 산마테오에 있는 링글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10명이 근무하는 실리콘밸리 지사는 위워크를 사용하고 있는데, 쾌적하고 활기찬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2015년 창업한 링글은 올해 8년 차를 맞습니다. 스타트업을 오랜 기간 성장시킨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도, 영어도 잘하려면 ‘꾸준함’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시간을 훌쩍 넘긴 이 대표와의 인터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줌인센터’의 세 번째 주민입니다.
Q. 간단한 회사 소개와 현황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현재 수강하는 학생 수는 2만명입니다. 튜터 숫자는 2000명을 넘었습니다. 튜터는 상위 20위권 출신을 전체의 70% 정도로 유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튜터의 자격요건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습니다. 튜터 선발 홍보는 20위권 학교에만 합니다. 튜터 선발에 기존 튜터의 영향이 있는데요. 기존 튜터가 추천해주는 형식으로 새로운 튜터를 맞기도 하는데, 이때 튜터의 자질도 우수한 경우가 많습니다. 튜터가 링글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에 관리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에 하버드대학 바로 옆에 보스턴 오피스를 지난 4월 오픈했습니다. 튜터 관리 및 모집을 위한 공간이죠.
Q. 매출액과 누적 투자금액은 어떻습니까.
A. 올해 매출 목표는 200억원입니다. 작년에 업황이 좋지 않았는데 올해는 긍정적입니다. 매출 증가와 함께 수익률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2021년까지 시리즈A를 진행했는데 누적 투자금액이 240억원입니다. 시리즈B는 내년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Q. 링글은 한국인만을 위한 화상 영어 학습 플랫폼입니까?
A. 현재 수강생의 95%는 한국인입니다. 해외에선 대만, 일본에 수강생들이 있습니다. 홈페이지 언어지원은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영어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럽과 남미 시장을 겨냥한 언어지원 서비스를 추가할 예정입니다.
Q. 10대 학생들을 위한 링글 틴즈 서비스 출시했습니다.
A. 학원법 시행령 개정이 10월로 예고돼 있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10대 중에서 영어회화에 대한 수요는 초등학교 4~5학년, 중1이 가장 많습니다. 링글의 영어는 수능과 같은 입시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링글을 듣는 이유는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입시 위주의 영어공부를 억지로 하면 흥미를 잃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학무모 분들이 일주일 1~2번은 아이들이 재미있게 공부하는 환경을 링글을 통해서 만들어주는 것이죠. 이렇게 재미있게 공부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에 남습니다.
Q.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학교로 가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A. 서울대 경영대 01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 보스턴컬설팅에서 2008~2014년까지 6년간 일했습니다. 이후 2014~2016년 스탠퍼드 MBA를 다녔죠. 영어권 국가 거주는 이때가 처음입니다. 스탠퍼드에서 공부하는 기간이 ‘라이프체인지 모멘트’였던 것 같습니다.
스탠퍼드 출신 스타트업 대표들이 학교에 와서 강의하고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는데요. 링글을 창업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한국과 미국 중 어느 나라에서 시작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습니다. 이때 에어비앤비 공동창업자인 조 게비아(최고제품책임자)에게 물어보니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가라”라고 했습니다. 조언에 따라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죠. MBA에서 여러 창업 선배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스탠퍼드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인상 깊게 들은 말이 또 있었나요?
A. 네 조 게비아로부터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처음에 유저 100명 모으는 게 힘들다. 1000명은 더 힘들고, 10만명 죽을 만큼 힘들다. 그 이후는 쉬워질 것이다.” 실제로 창업을 해보니 정말로 이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또 “소비자가 있는 한국에서 창업한 후, 글로벌 컴퍼니가 되고 싶으면 미국으로 와라.”라는 말도 들었는데요. 공교롭게도 링글이 지금 그 궤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저는 링글을 창업하면서 2016~2020년까지 한국에 있었습니다. 미국에 온 건 2021년입니다.
Q. 스탠퍼드대는 학생들의 창업을 장려하는 제도를 갖고 있는지요.
A. 미국은 제도로 밀어주는 게 거의 없습니다. “네가 창업하고 싶으면 찾아와서 질문해. 그럼 답을 해줄게” 이런 식입니다. 커리큘럼을 만들어주고 그에 따라 공부하도록 하는 한국 교육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 미국은 알아서 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한 후로 가만히 있으면 방치됩니다. 미국에서 교수는 ‘질문하면 답변해주는 사람’입니다. 학생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교수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스탠퍼드에 창업자들이 많은 이유는 주변 환경 때문입니다. 수업에 오는 분들이 창업자들, 스타트업 종사자입니다. 실리콘밸리 문화 자체를 들여다보면 기업의 핵심인재와 함께 창업자들이 있는데요. 창업자들의 부와 명성이 더 강력합니다. 스탠퍼드 MBA 오는 친구들도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왔으니 다시 회사에 취업하는 것보다는 창업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Q. 코로나 기간에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나요.
A. 화상 영어 회화 플랫폼이니 그럴 것 같지만 아니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학원 다니던 사람들이 집에서 화상 영어를 하는 것보다는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을 합니다. 최근 여러 에듀테크가 힘들어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동안의 투자가 부채로 돌아온 것이죠.
엔데믹 상황도 문제였습니다. 지난해 2년 만에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갔을 때가 링글에는 위기였죠. 튜터 학생들이 학교에 적응하느라 링글 수업 참여율이 저조해진 겁니다. 튜터들의 강의 시간이 10시간에서 3시간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공급 쇼크’가 온 것이죠. 링글에겐 2021~2022년이 위기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AI튜터가 있으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영어회화 수업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A. 사람이 AI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용자는 AI 튜터에게 좀 더 함부로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용자가 AI를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실제 상황을 가정하고 할 텐데, 그게 안 되는 것이죠.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현재로선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람 자체가 AI를 사람으로 인지하기 전까진 AI가 잘하는 걸 AI가 하고, 사람이 잘하는 걸 사람이 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링글은 실전 상황에서 영어를 잘 쓰게 하는 서비스입니다. 때문에 AI는 수강생이 튜터와 얘기할 때 스크립트를 작성한 뒤 라인바이라인으로 틀린 점을 지적해줍니다. 수강생은 이 오답노트를 바탕으로 자신의 말하는 습관을 더 개선하고 발전시킬 수 있죠. 이것을 CAF 진단 엔진이라고 부릅니다.
Q. 한국에서 영어가 늘지 않는 이유는 영어권 생활문화가 아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A. 네 맞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네이티브가 되는 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충분히 ‘플루언트 잉글리쉬’는 할 수 있습니다. 비결은 다른 게 아닙니다.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꾸준히 하면, 실력이 크게 좋아집니다. 꾸준히 하지 않는다면 실력향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어는 절반이 자신감이라 하는데요. 자신감은 자주 영어로 말을 해야 생깁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B2B 프로그램을 개발 중입니다. 기업이 통제된 상황에서 임직원들의 영어 실력을 체크하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무역회사는 세일즈 영어를 강조하고, 컨설팅회사는 이와 관련된 영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기업의 업종별 특성에 따라 쓰는 영어도 다른 것이죠. 각 회사가 원하는 영어 분야를 기준으로 직원들의 영어실력을 체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특정 상황을 설정해서 측정해야 합니다. 공동창업자인 이성파 대표가 AI 기반 진단 엔진을 열심히 개발 중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상황에서 영어,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데모버전이 2~3개월 이내에 나올 예정이고요. 테스트를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론칭할 계획입니다.
실리콘밸리=최진석 특파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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