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노동개혁의 성공 열쇠
첫째, 주체의 문제이다. 과거에는 사회적 대화 기구를 통해 노사대표와 협의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김영삼 정부 때는 아예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적도 있다. 지금은 일부 전문가 도움을 받으며 정부가 주도하고, 당사자인 노사는 개혁 대상이거나 제3자로 밀려난 모양새다. 노조는 ‘무조건 반대’를 외치며 저항하고, 경영계는 한 발 비켜 서 있다 보니 여소야대 구조 하에서 정치적 추진력도 현장 파급력도 붙지 않는다.
둘째, 내용의 문제이다. 정부가 제시한 것은 건설노조 비리, 근로시간 유연화, 노조 회계 감시, 채용 절차 규제 강화 등이다. 모두 일리가 있지만, 각 사안을 꿰는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노동개혁을 풀어쓰면 ‘한국 노동체제의 재구성’이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제정 후 70년이 지나는 동안 엄청나게 달라진 환경과의 부조화와 내적 모순을 안고 있는 노동법, 제도, 관행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큰일이다. 하지만 계절이 두 번 바뀌어도 노동체제 혁신이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임기응변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다.
셋째, 방법의 문제이다. 일방적이고 하향식이다. 이해관계자의 참여, 소통, 설득, 타협의 과정이 없다. 개혁 의제가 현장에서 비롯되지 않고, 전문가들이 제시한 방안을 중심으로 추진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져 현장의 반발을 돌파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노동체제 개혁의 좌초는 노사, 여야, 세대, 진영을 떠나서 모두의 패배요 불행이다. 전열을 재정비해 기필코 성공해야만 하는 국가적 과제다.
첫째, 정부 혼자 뛰지 말고 기업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 경영계가 현장, 업종, 전국 등 단위별로 개혁과 대화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개별기업은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 중심으로 노사협력을 선언하고 성공적인 일터혁신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제도적 걸림돌이 있다면 그것들을 모아서 제도개혁 패키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같은 내용이라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보다 추진력이 커진다.
여론으로 반대를 압도할 수 없다면, 힘들고 더디더라도 기업 구성원 및 노조와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경영자의 몫이다. 정부는 노사가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운동장을 넓히고 반칙은 제재하며 공정한 경기 진행을 돕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등 전문가 집단은 노동체제 개혁의 종합적인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단발성 사안으로 여론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내비게이션 없는 즉흥 운전에 운명을 맡길 사람은 많지 않다. 일하는 방식과 보상체계의 혁신과 같은 킬러 콘텐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개혁의 효능을 체감토록 하는 전략은 바람직하다.
셋째, 상향식과 하향식을 결합한 투트랙 접근법이 필요하다. 혁신은 기업 생존을 위한 전쟁의 최일선인 현장에서 시작돼 현장에서 완성돼야 한다. 설사 법제 개혁이 지체되더라도 고성과 작업장 같은 혁신모델이 현장에 널리 퍼져야 한다.
제도 개편 논의 출발은 정부가 주도성을 발휘하되, 노사가 개혁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각급 레벨에서 사회적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 대화가 반드시 합의를 만들기 위한 협상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노사단체의 대표 역할은 존중하면서 비조합원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법도 열려 있다.
노사가 개혁의 주체가 되려면 자치를 주장하면서 내 편을 들어주는 관치를 요구하는 행태부터 버려야 한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 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사회적 대화를 먼저 제안한 것은 민주노총이었다. 노조는 발상을 전환해 개혁의 선수(先手)를 잡기 바란다. 경영계도 시장경제 혁신의 주도자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절실하다. 노동개혁 열차에는 무임승차권이 없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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