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위기 배경엔 ‘의도된 디레버리징’…“소비 부진이 불안 키워”

조해영 2023. 8. 21. 0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일 저녁 중국 베이징 시내의 대형 스크린에 중국군의 대만 해협 훈련 영상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부동산 시장 수급의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관련 정책을 적시에 조정하고 개선하며 (중략) 부동산 시장의 안정적이고 건전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달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한 중앙정치국 회의에선 부동산 시장 수급의 ‘거대한 변화’가 언급됐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8월10일, 중국의 최대(매출 기준)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이 만기가 다가온 채권의 이자를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1년 유동성 위기를 맞은 헝다그룹은 최근 미국 뉴욕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중국 부동산발 경제 위기에 대한 공포가 일고 있다. 헝다·비구이위안 등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채무 불이행(디폴트) 위험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의 뿌리엔 2020년부터 진행된 중국 정부의 ‘의도된’ 부동산 디레버리징(부채 축소)과 예상보다 큰 소비 부진이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넘치는 빚을 줄이기 위한 정부 정책의 변화 여부가 경제 불안 해소의 가늠자라고 입을 모은다.

■ 의도된 혼란?

중국 정부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업체와 지방정부를 주축으로 부동산 경기를 띄우며 경제 성장을 도모했다. 이에 따라 10%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이어갔으나 부채 비율 상승은 피하지 못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부채 비율은 20년 만에 89.5%(2000년)에서 162.7%(2020년)로 두배 가까이 급상승했다. 2010년대 들어 부동산 거품 붕괴 우려가 줄곧 제기된 배경이다.

중국 정부도 2010년대 중반부터 ‘과다 부채’ 위험을 언급해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6년부터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한 게 한 예다. 순부채비율 100% 초과 금지, 현금성 자산보다 많은 단기부채 금지와 같은 개발업체의 부채 수준을 직접 제한하는 ‘세 개의 레드라인 정책’이 나온 것도 2020년이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비금융기업 부채에 대한 우려가 3∼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커졌다. 그렇게 단기간에 많이 오른 나라가 거의 없었다”며 “미국과의 지정학적 갈등이 불거진 것도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 위기 요인을 철저히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발언과 ‘세 개의 레드라인’ 정책이 나온 다음 해인 2017년과 2021년에 중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비금융기업부채 비율은 소폭 하락했다.

통상적으로 부채 축소 과정에선 여러 과다 부채 기업을 중심으로 불안 양상을 띠기 마련이란 점에서 현재 불거지고 있는 중국 부동산 기업들의 채무 불이행이나 파산 신청은 예고된 수순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9년 9월17일 중국 윈난성 쿤밍에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의 건물 공사 현장. 쿤밍/로이터 연합뉴스

■ 예상 못했던 복병

문제는 예상을 웃도는 수준의 소비 부진이다. 코로나19에 따른 봉쇄 조처가 끝난 올해부터 중국 정부와 시장은 본격적으로 소비가 활성화되면서 부채 축소에 따른 성장률 둔화가 어느 정도 상쇄될 것으로 봤다. 현실은 이런 예상과 달랐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빼고 있는 가운데 시장을 떠받치던 가계 소비가 죽어버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난달 소매판매는 전년 동월 대비 2.5% 증가하는 데 그쳤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4.5%)를 한참 밑돈 수준이었다. 실업률(5.3%)은 전달보다 올랐으며, 6월에 사상 최고치(21.3%)를 경신했던 청년 실업률을 포함한 연령별 지표는 돌연 발표가 중단됐다.

가계는 부동산 자산이 타격을 받고 빚 부담이 커지자 지갑을 닫고 있다. 기획재정부 핵심 관계자는 “금융시스템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중국에선 개발업체들이 금융권 차입보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을 받아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회사나 신탁회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다른 나라에 견줘 부동산 시장 둔화가 가계의 소비 부진으로 빠르게 나타나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백은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는 투기적 수요를 줄이는 대신 실수요가 살아나기를 기대했는데 ‘제로 코로나’ 이후 민간의 정책 신뢰도가 떨어졌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돈을 안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더딘 소비 회복이 부동산 업체들의 과다 부채 문제에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뜻이다. 지난달 정치국회의에서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오래된 문구가 사라지고 ‘수급의 거대한 변화’가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 정책 기조 변경할까

소비 부진과 부채 축소 정책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불안을 어디까지 중국 정부가 감내하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기조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시점은 9∼10월로 예상된다. 9월은 신학기가 시작하는 때여서 부동산 거래량이 1년 중 가장 많은 데다가, 최대 정치행사인 공산당 당대회가 10월에 열리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정부는 큰 기조를 해치지 않는 수준의 조처들만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단기간에 정책 기조를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김경환 하나증권 중국·신흥국 담당 연구위원은 “정책 경로를 수정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움직임이 나왔어야 한다”며 “시장이 엘(L)자 모양으로 내년에 연착륙을 한다면 지금처럼 정책이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진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기존에 중국이 선택했던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한 경제 성장 정책은 지금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