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사적연금에 건보료 부과?…'이중과세' vs '형평성 제고'

서한기 2023. 8.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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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율 인상 (PG) [박은주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건강보험료를 산정할 때 공적연금뿐 아니라 사적연금까지 포함한 연금소득 전체를 파악하고 이를 다른 소득과 함께 소득금액에 반영해서 가입자의 건보료를 물리는 관리 방안을 마련하라."

감사원이 건강보험의 재정관리 실태를 샅샅이 들여다보고서 지난해 내놓은 감사 결과 보고서에서 건강보험제도와 운영을 책임진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통보한 주문사항이다.

당시 감사원은 "사적 연금소득의 규모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공적 연금소득과 달리 보험료 부과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경우 다른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더욱 늘어나는 등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해칠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수입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의 이런 요구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보험료 부과' 원칙 따라 형평성 제고에 기여

현재 연금소득의 경우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공적 연금소득에만 건보료를 부과하고 있을 뿐, 개인형 퇴직연금(IRP)이나 연금저축과 같은 사적 연금소득에는 보험료를 매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법과 소득세법 규정상으로는 사적 연금소득에도 보험료를 거둘 수 있다.

건강보험료를 산정하는 소득의 범위에는 건강보험법 시행령과 소득세법에 따른 이자소득, 배당소득, 사업소득, 근로소득뿐 아니라 연금소득과 기타소득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연금소득에는 소득세법에 따라 공적 연금소득과 사적 연금소득이 모두 들어간다.

그런데도 건보료 부과 소득에서 사적연금이 제외된 데는 사적 연금시장을 태동단계에서부터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 판단 등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적 연금소득에 보험료가 매겨진 것은 1999년 2월 건강보험법이 제정되기 이전 법률인 국민의료보험법 등에 이미 공적연금이 보험료 부과 대상으로 규정돼 있었던 게 배경으로 꼽힌다. 게다가 공적 연금소득이 2001년 1월 소득세법에 따른 과세 대상으로 전환되기 이전부터 건보료를 부과해 온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런 이유로 건보료 부과의 공평성과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사적연금 소득에도 건보료를 매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소득이 있는데도 법령 규정과 달리 특정 연금소득을 보험료 산정을 위한 기준에서 제외하는 것은 가입자 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저해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사적연금에 대한 보험료 부과 주장의 논거이다.

사적연금 정착하지 않은 상황서 준조세 성격 건보료 부과 때 '부작용'

그렇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사적 연금시장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일천한 상황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섣불리 사적연금 소득에 대해 준조세인 건보료를 부과할 경우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이중과세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 문심명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사적 연금소득에 대한 건강보험료 부과 논의 및 쟁점'이란 글에서 "공적연금은 운영 주체인 정부 등이 부담금을 지원했기에 건보료를 매기더라도 다소 수긍할 수 있지만, 개인이 월급에서 이미 보험료를 납부(원천징수)한 세후소득에서 노후를 준비하고자 자발적으로 납입한 저축성 성격의 사적연금에다 보험료를 다시 부과하면 이중 부과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적연금에 보험료를 매길 경우 퇴직자가 다층적 노후 소득원을 확보할 수 있게 사적연금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과 상충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노인소득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여전히 가장 높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적연금만으로는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이를 보완하고자 1994년부터 정책적으로 사적연금을 확대하기 위해서 세제 혜택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연금 계좌 납입액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도 있다.

문 입법조사관은 "이런 상황에서 사적연금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면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재로 노후 소득 보완 수단인 사적연금 활성화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국민이 노후 준비를 하고자 사적연금을 활용할 유인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퇴직연금은 대부분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 건보료를 부과하면 일시금 수령을 더욱 선호하게 될 것이고 중도 납입 중지나 해지 사례도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정부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사적 연금소득에 대한 건강보험료 부과는 연금소득으로 노후를 보내는 연금 생활자들의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신중하게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퇴직연금(PG) [제작 이태호] 사진합성, 일러스트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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