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법원 인프라 턱없이 부족한데… 사법입원제 이대로 도입 땐 '입원실 뺑뺑이'
저수가 등으로 정신과 병상 및 의료진 감소세
종합병원급 이상 병상 5년 새 4677개→3960개
전문가 "꾸준히 치료받게 하는 시스템 필요"
경기 분당구 서현역, 서울 합정역 등에서 정신질환 병력자의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가가 중증 정신질환자의 격리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사법입원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환자가 자신 또는 타인을 위해할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사법기관이 강제입원을 결정하거나 사후 정당성을 판단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17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강제입원을 결정해야 하는 사법부, 환자를 수용·치료해야 하는 의료계, 환자의 사회 복귀를 지원해야 할 지자체 모두 제도를 운용할 만한 인력과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게 현실이다. 실제 2018년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 2019년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을 계기로 사법입원제 입법 논의가 한 차례 불붙었지만, 이런 미비한 여건 때문에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전례도 있다. 정부의 이번 제도 도입 추진 공언 또한 요란한 말잔치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는 이유다.
가족에 내맡겨진 환자 입원… "강제력 필요"
2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우리나라가 시행하고 있는 강제입원(비자의입원) 제도는 세 종류다. ①보호자 2명이 신청하고 전문의 2명이 일치된 판단을 내릴 때 이뤄지는 '보호입원' ②전문의 또는 경찰이 지자체에 입원을 요청해 이뤄지는 '행정입원' ③전문의와 경찰의 동의를 받아 입원을 의뢰하는 '응급입원'으로, 정신건강복지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나 당국이 소송 등 우려로 강제입원 조치에 소극적이라, 현실상 강제입원은 보호입원제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제 발로 입원하지 않는 한, 환자와 극심한 갈등을 빚기 쉬운 강제입원의 부담과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보호자)이 지고 있는 셈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연간 비자의입원 2만3,856건 가운데 88%(2만1,045건)가 부양의무자, 후견인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었다. 행정입원은 2,746건, 응급입원은 65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환자 가족 사이에서도 사법입원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중증 환자 다수가 치료를 거부해 가족과 갈등을 빚고 있고, 환자를 입원시키려면 이송 전부터 난관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치료를 강제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회장은 "보호자 등 누군가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면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며 거부하는 정신질환자가 전체의 99%라고 보면 된다"며 "치료 중단이 사건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적지 않은 만큼 강제성이 있는 입원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신과 병동·의료진 부족… 뺑뺑이 심화 우려
문제는 사법입원제를 뒷받침할 만한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제도가 도입되면 강제입원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터라 입원치료 시설 확충과 환경 개선이 필요한데 이 같은 논의는 뒷전에 밀려 있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병동과 이들을 돌볼 의료진이 부족하다. 저수가와 병상 간 이격거리 확대 지침 등이 맞물려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의 폐쇄병동 병상은 2017년 4,677개에서 지난해 3,960개로 줄었다. 전체 정신과 폐쇄 병상도 같은 기간 6만7,394개에서 6만298개로 감소했고, 올해는 6만 개 이하로 떨어졌다. 2014년 광주세브란스병원, 2018년 청량리정신병원, 지난해 성안드레아병원이 각각 폐원했다.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과 용인정신병원은 병동을 축소했다.
의사 충원도 쉽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자체는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인기가 적지 않지만, 중증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점점 줄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5개 국립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원장을 포함해 30명으로 정원(80명)의 37.5%에 불과하다. 서울 국립정신건강센터는 39명 정원에 13명만 근무 중이고, 정원이 각각 11명인 국립부곡병원과 국립공주병원은 전문의가 각 3명뿐이다. 국립춘천병원은 한때 전문의가 없는 상태로 운영되다가 최근 원장이 임명된 후 전문의 1명이 충원돼 정원 7명 중 2명을 겨우 채웠다.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사법입원제가 시행됐을 때 환자들이 병상과 의사를 찾아 떠도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정석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고 병동 안전 문제 때문에 의료진 등 인원이 많이 필요하지만 수가가 낮아 폐쇄 병동이 많이 줄고 있다"며 "국립병원은 의사 부족으로 입원을 못 시키니 응급실 뺑뺑이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입원 시설 증설만큼 환경 개선도 중요하다. 입원치료 환경이 열악하면 환자가 다시 급성기를 맞아도 재입원을 거부해 병을 키우는 악순환이 반복될 거라고 보호자들은 지적한다. 이병범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수석부회장은 "여러 명 있는 입원실에서 장기간 있다 보면 환자가 재입원을 기피하게 된다"며 "자유롭게 치료받고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후관리 중요한데 정신건강복지센터 244곳뿐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은 치료 정도에 따라 예후가 달라 급성기 이후에도 꾸준한 후속 치료와 사회 복귀를 지원할 인프라가 중요하다. 그러나 치료 및 사회적응, 직업 훈련을 하는 정신재활시설은 올해 기준 전국에 349곳에 불과하다. 2021년 기준 중증 정신질환자 수가 65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역사회에서 중증 환자의 사례관리 등을 하는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도 244곳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대표적 중증 정신질환인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환자 23만 명 가운데 센터에 등록한 인원은 2만6,274명(11.4%)뿐이다. 의료기관이 퇴원 환자의 정보를 센터로 인계하는 절차도 환자 본인이 동의해야 가능하다는 점도 중증 환자 다수를 관리 사각지대로 내모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중증 정신질환은 대부분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상당히 조절되는 만큼 치료명령제처럼 꾸준히 치료를 받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촘촘하게 환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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