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결국 팩트가 진영을 이길 것이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23. 8. 2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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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에 대한 열망, 독선과 결합하면 파국의 카운트다운일 뿐
국민 눈귀 흐리는 진영 논리 난제 해결 주역은 결국 언론
언론은 정의보다 팩트 믿어야
지난 6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짜뉴스VS팩트체크 : 끝날 수 없는 전쟁'을 주제로 열린 2023 KDF 언론포럼에서 팩트체크 플랫폼 폴리티팩트을 설립한 빌 아데어 듀크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겨운 재방송 장면 같은 후쿠시마 오염수 파동, 잼버리 책임 공방, 방송통신위원장 자격 논란 등을 혼미한 정신으로 멍하니 바라보던 필자의 귀에 대고 8월 16일 자 김영수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이 외쳤다. “정신 차려!”

그는 진영 갈등으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가 목하 자살 중이라고 썼다. 그 격한 어휘들이 필자의 의식을 깨운다. 공감한다. 차제에 자못 도발적인 주장을 더하려 한다. 이 망국병은 정치 영역을 넘어 국민적 현상이 되었다. 그 뿌리에 역설적이지만 정의의 열망이 존재한다.

정의에 대한 열망은 사회가 발전하며 자연스레 자라난 국민의 집합적 심성(mentalite)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절대 쉽지 않은 정의론 저서들이 날개 돋친 듯 나가고, 눈에는 눈 식으로 악을 응징하는 드라마며 영화가 흥행 몰이를 하는 현상이 방증하듯, 그 에너지는 가공할 만하다. 그 힘이 제대로 쓰일 때 우리 사회는 도약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열망이 내로남불식 독선, 타 집단에 대한 혐오, 제도에 대한 불신과 결합될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수 있다.

그 키를 쥔 것이 사회적 소통과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언론이다. 문제는 이들 역시 진영화되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기, 서로 연대하여 권력에 맞서던 언론은, 이제 진영과 병행하며 그 관점과 논리를 증폭시키고 자기끼리 상호 갈등하는 관계를 기본 구조로 삼는다.

진영화된 언론이 국민의 의식을 오도하는 이 아찔한 상황의 중심에 공영방송이 위치한다. 진영의 이명(異名)에 다름 아닌 정의 추구 방송으로 일관한 MBC는 논외로 쳐도, KBS의 경우 2015년 3월 중요한 분기점이 있었다.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수립이 그것이다. 이때 공정성은 사실성과 불편부당을 넘어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우선 배려하고 이를 위해 직접적 현실 참여도 불사하는 원칙으로 정의되었다. 공영방송의 역할이 선택적 정의의 구현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 일이 공영방송을 망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도하지만, 공영방송이 진영을 넘어 국민의 방송으로 정립될 기회는 그때 사라졌다고 본다.

이런 문제에 대한 중립적 성찰을 제공하는 게 학계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그 논의의 대종 역시 진영 극복의 논리가 아닌, 진영 논리를 재생산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그 사례로 올해 4월, 한 진보 성향 언론학 학술단체에서 낸 ‘언론 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라는 연구서를 들 수 있다. 필자들의 면면에 끌려 정독한 책의 내용은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기억을 소환했다. “언론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수록 시민의 자유, 특히 약자의 권리가 침해된다.” “언론은 억압하는 권력에는 자유를 헌납하고 관용하는 주권자에게는 자유를 남용한다.”

필자들은 한입으로 정의롭지 못한 언론을 질타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 소유권, 심지어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급진적 주장들 속에 진영화 문제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보이지 않았다. 시민의 역할이 거듭 강조되었지만, 이 ‘순정한 그대’가 누구이고 역할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모호했다.

그 한 달 후인 5월, 뉴욕 타임스의 사주 겸 발행인인 설즈버거(A. G. Sulzberger)가 미국의 유명 저널리즘 스쿨 학술지에 이와는 사뭇 다른 관점의 글을 실었다.

“이념을 앞세우는 것이 진솔하고 존경받을 일처럼 부추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적 의견을 진리로 간주하는 맹신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정의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겐 공공연히 총기를 휴대할 수 있는 권리, 다른 이들에겐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 권리가 정의일 수 있습니다. (중략) 정의를 신봉하는 언론인은 아무리 지혜롭고 선한 의도를 지녔다고 해도 결국 세상을 밝히기보다는 어지럽게 할 것입니다.”(‘언론의 본질적 가치’ 중 ‘대안의 위험’ 발췌 정리)

2017년 3월, 진영이 모든 것을 삼킨 아득한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 같은 SNU 팩트 체크 사업을 시작하며 필자가 지녔던 생각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 하루하루가 역사였다. 올해 6월에는 75국 550여 명이 참가한 국제 대회도 치렀다. 이제 30개를 훌쩍 넘긴 제휴 언론사의 팩트 체커들은 최근 한 입장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보수를 지향하지도, 진보를 지향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팩트를 지향합니다. 격하고 거친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팩트 체커로서 진실의 세례에 조력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정리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리는 진영 논리의 극복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정의”가 아닌 “팩트”를 중심에 둔 언론이 그 주역이다. 팩트가 진영을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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