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아마추어 시인의 사명감
시인의 정체성이란 어떤 것일까? 시인의 사명감이란 무얼까? 시인은 태생적으로 아마추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프로 시인이 가능할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직업 요리사와 어머니의 차이를 떠올린다.
예전엔 어머니 음식이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역국과 깻잎무침, 직접 기른 보리로 싹을 내 만든 식혜 등은 어떤 산해진미와도 바꾸고 싶지 않다. 물론 어머니의 음식이 객관적으로 대단치는 않을 것이다. 익명의 타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테고 정해진 특정한 조리법도 없으며 대량으로 빠르게 만들어도 품질을 유지할 기술이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세상 모든 가정식이 그렇듯 우리 가족에게 특별히 아름답다. 개인이 음식을 익히기 어려워진 복잡하고 바쁜 현대에는 요리사의 존재는 필수적이며 직업적 자부심은 고귀하지만, 점점 집밥을 나누고 비법을 전수해 나가는 전통이 쇠퇴해 가는 세태는 애달프다. 식구들과 함께 양식을 직접 짓는 일은 인간의 지당하며 개별적이면서도 소중한 공동체적인 의식이며 각 가족의 개성 가득한 생존과 삶의 기저 그 자체였다.
시 역시 음식과 같다. 우리는 한때 모두 시인이었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직접 결정하고 드러내어 소통해야 했다. 하지만 현대에는 자신에 대한 표현법을 궁리하고 개발하는 대신 돈을 지불해 감동과 의견을 구입하는 사회가 되었다. 시인과 요리사의 프로화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문성과 파편화의 시대에 시와 음식 또한 서비스가 될 수 있는 재화로서 사용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시와 음식에 대한 기호 안에는 개별성과 자주성이 뒷받침된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아마추어리즘이 얼마간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쳐 돌아온 배고픈 밤 어머니가 끓여준 가족만이 맛을 아는 따스하고 담백한 소고기뭇국 한 사발과, 연인이 내 귓가에만 속삭여준 결코 대중에게 발표되지 않을 테지만 절대 잊힐 리 없는 비밀 같은 사랑의 시 한 수를,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 우리는 공존하기 위한 생존가로서 유일한 시인이자 특별한 요리사였고, 지금도 진심을 다해 자신을 표출하고 서로를 위하려는 그 정체성과 사명감은 간절하다.
채길우 시인·제약 회사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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