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北 인권과 유엔 안보리 파워게임
17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북한 인권 문제 관련 공식 회의는 세계 힘의 질서가 현재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회의가 열리기 불과 1주일 전인 10일, 8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장국인 미국은 안보리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공식 회의’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회의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매 해 한 차례씩 열렸지만 그 이후 6년간 열리지 않았다. 어느 국가도 회의를 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무관심했던 당시 한국 정부의 탓이 컸고,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국제 정세도 따라주지 않았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관심사는 과연 회의가 열릴 수 있을지, 열린다면 이사국 중 몇 개의 나라가 찬성할지였다. 안보리 공식 회의를 열려면 이사국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대 의사를 표시하는 나라가 있으면 투표를 통해 회의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15개 이사국 중 9국 이상이 찬성하면 회의가 열린다. 지금까지 열린 4차례 회의에서 계속 반대를 했던 국가는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였다. 이들의 논리는 늘 똑같았다. 안보리의 존재 이유는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인데 왜 정치적 이슈인 북한 인권 문제를 안보리에서 논의해야 하냐는 것이다.
이날 회의를 앞두고 유엔 안팎에서는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안보리가 열리니 중국과 러시아가 회의 개최에 반대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서는 이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러시아가 반대 깃발을 들면 몇 개 국이 양 국가의 의견에 동조해 함께 반대했다. 북 인권 문제를 두고 마치 미-중·러가 세(勢) 대결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엔 투표를 할 경우 예전보다 반대표가 크게 줄어 중·러의 체면이 구겨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만큼 북한 인권 문제 심각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회의가 끝난 뒤 미국이 ‘공동 발언문’을 읽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15개 이사국도 아닌 국가의 대사급 대표들이 ‘플래시몹’을 하는 것 마냥 어딘가에서부터 나타나 회견장을 메웠다. 52개 유엔 회원국과 유럽연합(EU)이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한다며 연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등장하지 않았다. 찬반 숫자 확인 될까 봐 공식 반대는 못 하지만, 공동 발언문 발표 현장에 참석도 할 수 없는 딜레마. 북 인권 문제와 관련한 2023년 유엔 안보리 힘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자, 한국이 지난 몇 년간 치우친 이념과 환상에 사로잡혀 국제적 외톨이 길을 걷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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