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11] 龍山과 龍坪
소나무 사진 작가인 고송 선생은 삼복더위가 오면 용평(龍坪)에 머문다. 고송 선생 거처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아니나 다를까 삼복 더위인데도 한낮 온도가 23~24도 밖에 안 된다. 서울보다 대략 10도가 낮은 것이다. 오후 4시쯤 짙은 운무가 밀려와서 도시를 덮으니까 고산 지대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1458m인 발왕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온도가 다시 10여 도 더 떨어져서 긴팔을 입어도 춥다. 발왕산에는 한민족이 가장 귀하게 여겼던 수령 1000년이 넘는 주목 수십 그루가 서식하고 있으니 성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시원한 용평을 어떻게 통일교가 갖게 되었을까? 고(故) 문선명 총재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1998~99년에 쌍용이 용평스키장 일대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을 때 ‘우선 당장 현찰 1000억원을 먼저 달라’가 조건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다른 재벌들도 사려고 눈독을 들였지만 현금 1000억원을 즉시 줄 수가 없었다. 문선명은 ‘바로 갖다 줘라’라고 명령을 하였다. 머뭇거리지 말라는 뜻이다. ‘발왕산은 원래 팔왕산(八王山)이다. 사방팔방에서 왕이 모이는 산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사라!’가 문선명의 콘텐츠였다. 그 뒤로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용평에 수십국 정상, 총리, 왕족들이 모였다. 이 정도 예견력은 있어야 교주(敎主)도 하는 것이다. 교주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현찰 1000억원은 어디서 났을까? 당시 용산에는 세계일보 터가 1만여 평 있었고, 용산이 개발되면서 이 땅을 3300억원에 팔았다고 한다. 피 떨고 1000억원이 남았다. ‘남은 돈 어떻게 할까요?’ ‘용평 사라!’ 용산에 있었던 세계일보 터는 원래 철도고등학교 터였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기와를 굽는 와서(瓦署)가 있었다. 임금은 용이고, 용이 거주하는 궁궐에는 아무 데서나 만든 기와를 올릴 수 없었다. 용(임금)의 머리 위에 올라갈 기와는 풍수적으로 용의 대가리 터에서 만들어야 격이 맞다. 용의 뿔이 있는 용산에서 만든 기와여야만 했다. 용의 뿔(龍角)은 2개인데 한 개가 현재의 국방부 터이고, 다른 한 개가 와서(瓦署)였다. 와서에 후일 철도고등학교가 들어섰던 것이었다. 철도고등학교 터가 1988년에 매물로 나왔을 때 역시 문선명은 ‘무조건 사라’였다. 330억원이었다. 땅에 대한 투시력을 가지고 있었던 문 총재는 용자(龍字) 들어간 지명을 좋아하였던 것 같다. 필자는 풍수사(風水史)에서 도선국사, 무학대사, 그리고 문선명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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