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파리지앵도 ‘못난이 식품’ 사… 佛 식비 최대폭 감소

파리=조은아 특파원 2023. 8.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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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는 너무 비싸 거의 안가”
팔다 남은 ‘떨이 음식’ 앱도 인기
유럽 7월 식음료 물가 10.8% 올라
“우리는 가난, 美는 부유해져” 푸념
18일 프랑스 파리의 한 할인마트에 소비자들이 북적대고 있다. 월간 물가 상승률이 최근 1년간 5, 6%대로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에선 각종 재고 식품까지 판매하는 할인마트가 유행이다. 파리=뉴스1
“탄산수 6병을 일반 마트보다 50% 저렴하게 샀어요. 1L 한 병이 0.30유로(약 440원)밖에 안 돼요.”

16일 프랑스 파리 도심의 재고 처리 매장 ‘프리마프리’에서 장을 보던 클리오 드 앙젤리스 씨는 “요즘 대형마트는 너무 비싸서 거의 가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프리마프리는 일반 대형마트에서 팔고 남은 재고를 일괄적으로 사들여 최대 80% 할인해 파는 재고 처리 매장이다. 파리 외곽에서만 영업했던 이 마트는 올 6월 이례적으로 파리 도심에 문을 열었다. 고급 레스토랑과 식자재 매장이 많은 파리에서조차 고물가 탓에 식비 절약을 위해 ‘못난이 식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가정은 최근 월간 식비를 사상 최대 폭인 10%가량 줄였다.

● 식비 지출 사상 최대 폭 감소

이날 프리마프리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매장 내에는 0.90유로, 0.80유로 등 ‘0’으로 시작되는 가격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대형마트에서 3.09유로(약 4500원)에 판매하는 케첩은 브랜드와 용량이 동일한데도 11% 저렴한 2.75유로(약 2900원)에 팔렸다. 유통기한도, 외양도 일반 마트와 큰 차이가 없다.

혼자 사는 학생 엘로디 포미에르 씨는 “장보기 비용이 1주일에 40유로(약 5만8000원)를 넘기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며 “이곳은 식비를 줄이면서도 선택의 폭이 좁지 않아서 편리하다”고 했다. 회사원 토마 리비에르 씨는 “물가가 너무 올라 고기도 더 이상 슈퍼마켓에서 사지 않고 전통시장이나 할인매장에서 산다”며 “이렇게 식비를 절약하기 때문에 전체 지출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변 마트나 음식점에서 팔고 남은 ‘떨이 음식’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투굿투고’도 인기다. 프랑스의 카페, 레스토랑, 마트, 빵집은 물론이고 호텔 등 2만2000여 곳이 재고 물량을 내놓는 이 앱은 프랑스에서 980만 명 이상이 사용한다. 재고는 맛이 없을 것이란 편견을 깨려는 듯 ‘먹방’ 유튜버들은 이 앱에서 산 음식을 시식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를 발간하는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에서마저 소비자들이 식비를 줄이면서 가정의 월간 식비 지출은 사상 최대 폭으로 줄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가정의 월간 식비 지출 총액이 2021년 12월과 비교해 올 6월에는 1년 6개월 만에 10%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이 같은 하락 폭은 사상 처음이다.

● “유럽은 가난, 미국은 부유” 자조

음식 품질을 꼼꼼하게 따지기로 유명한 파리지앵조차 식비를 긴축하는 이유는 최근 1년간 매달 전년 동월 대비 5∼6%대로 오르는 고물가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끝없이 오르는 물가에 최근 대형 유통업체들에 가격 상승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기업들은 이를 거부했다. 정부의 각종 대책으로 7월에는 물가 상승세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이를 뒤엎고 7월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설문조사 기관인 시르카나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소비자물가는 한 달 전에 비해 0.2% 상승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물가 고공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발표된 유럽연합(EU) 통계기구 유로스타트 조사에 따르면 유럽 지역의 7월 식음료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0.8% 뛰었다. 유럽 주요국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입 통로가 막힌 곡물을 중심으로 가격이 높게 뛰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에선 서방의 다른 한 축인 미국이 물가 안정과 경기 회복 조짐을 보이자 “유럽은 가난해지고 미국은 부유해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22일 “미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이 영국인들은 혜택을 볼 궁리만 했다”고 지적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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