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잼버리가 남긴 것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막을 내렸다. 온열질환에 시달리고 화상벌레에 물려 지쳐가는 세계 청소년들을 보며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숙한 대회 운영과 책임 떠넘기기로 인한 부끄러움은 덤이었다. 한편 뙤약볕에 달구어진 텐트촌 모습에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잼버리 숙영지의 원형 경관이었다.
그곳은 애초에 갯벌이었다. 새만금 갯벌은 농게, 칠게, 짱둥어, 갯지렁이, 갯우렁이 등 뭇 생명의 터전이었다. 먹이자원이 풍부하기에 철새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특히 호주와 북극을 오가는 도요새들에게 새만금은 매우 중요한 중간 기착지였다. 봄·가을로 도요새 무리가 떼지어 날아가면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짙은 날개 윗면과 밝은 날개 아랫면이 번갈아 대비돼 홀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드 섹션이 갯벌 위를 수놓았다. 주민들은 그레(갯벌을 긁어 조개를 잡는 도구)를 끌어 생합, 동죽, 모시조개, 죽합을 잡으며 갯벌에 기대어 살아갔었다.
노태우 정권의 대선 공약을 바탕으로 새만금 간척은 시작됐다. 타당성 고려보다는 일단 호남을 향한 카드가 필요했다. 이후 목적과 방향성은 왔다 갔다 하며 이 정권, 저 정권이 바통을 이어받아 둑을 만들고 갯벌을 메웠다. 투입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늘어났으나, 사업은 지지부진했으며 자연은 자연대로 망가져갔다.
잼버리대회 유치는 고착 상태에 빠진 새만금 사업의 출구전략이었다. 국제행사를 빌미로 일단 땅부터 만들고 보자는 속셈이 작용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해창 갯벌을 메꾼 대학살 현장에서 생명을 중시한다는 스카우트 대회가 열렸다. 매립지는 염분이 많아 애초에 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 동진강 하구 펄을 매립토로 썼기에 원활한 배수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8월 강렬한 태양 아래 물이 빠지지 않는 매립지는 습식 사우나나 다름 아니었다.
환경파괴와 경제적 타당성 논란 속 새만금 사업의 유일한 승자는 토건세력이었다. 막대한 세금이 재벌 건설업체에 집중돼 돌아갔으며, 정작 지역 환원 실적은 적었다. 이 같은 상황은 새만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국 곳곳이 공사판이다. 적자가 뻔히 보이는 공항, 목적을 잃은 댐, 한적한 도로 등 삽질을 위한 삽질이 이어진다. 수도권 집중에 대한 분노와 지방 소외 설움은 대규모 토목사업 유치로 발현된다. 선거철마다 지방 소멸 위기의식은 개발주의를 부추긴다. 세금은 살살 녹고 자연 생태계는 위협받는다. 실제 주민 삶의 개선, 지역 발전 지속가능성, 미래 세대를 위한 전략, 경관과 생명 보호 등 건전한 대안 모색은 어려운 구조다.
안전하게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고, 아프면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동네. 사람도 잘 살고, 동식물도 잘 살 수 있는 지역을 꿈꾼다. 물론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잼버리 실패와 도요새의 눈물을 그저 날선 책임공방만으로 때워서는 안 된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개발사업 위주 이른바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 청소년들이 빠져나가고 텅 빈, 그러나 여전히 물은 고여 있는 잼버리 대회장을 바라보며 생각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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