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
이 글이 게재되는 8월21일, 나와 동료들은 9월에 개최될 우리 영화제의 상영작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영화학도였던 시절에는 굵직한 영화제들의 라인업이 발표되길 기다렸다 열어보는 것이 중요한 이벤트였다. 거기에는 동경하는 이름들이 올라가 있는지, 기다리던 제목이 실려있는지를 보고, 올해는 누가 수상을 할지 어쭙잖은 토론을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가 볼 라인업을 발표하는 입장이 되니, 말 그대로 살 떨리고 긴장이 된다. 후회도 막급이다. 그땐 왜 그렇게 까댔을까….
많은 사람이 영화제를 기다리고, 찾는 까닭은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유명한 기대작을 먼저 볼 수 있고, 감독이나 배우를 만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극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들의 경우 전자를 기대하는 관객들이 많겠지만, 다큐멘터리에 특화된 우리 영화제는 어쩔 수 없이 대체로 후자다. 장르 특성상 상대적으로 수입과 개봉의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넓히는 것이 우리의 임무이기도 하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영화를 다른 이들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제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영화를 OTT 플랫폼으로 보는 것이 대세가 됐고, 지난 팬데믹 기간에는 극장 상영을 포기한 영화제들도 있었다. 우리 영화제의 경우에도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두기를 적용해서) 오프라인 상영의 규모를 줄일지언정 포기하지는 않았다. 바로 영화를 함께 보는 감각이야말로 영화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영화 창작자들, 특히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반응이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십수 년에 걸쳐 빚은 자신의 비전이 얼마나 이해받는지 확인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올해, 한 태국 제작진은 검열로 자국에서 틀 수 없는 영화를 우리 영화제에서 틀 수 없겠냐고 상영본을 보내왔다. 이란 여성들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리를 꼭 만들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해온 여성 감독도 있었다. 목숨을 걸고 아랍의 봄을 기록한 시리아의 젊은 저널리스트도 한국행 비자를 받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한국 영사관의 문을 두드렸다. 한국의 다큐멘터리스트들 역시 제작 현장과 편집실에서 보낸 몇 년의 시간이 담긴 노작의 상영을 기꺼이 동의해 주었다. 그 모든 창작자가 한국의 관객들을 만날 첫 창구로 우리 영화제를 선택해 준 것이다. 관객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을 고대하면서. 감사할 따름이다.
언젠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를 본다는 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그것은 위안과 연대가 되고, 나를 바꾸는 경험이 되며, 그렇게 세상도 바뀔 것이라고. 그런데 함께 들으면 그 모든 것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결론은 이렇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오는 9월14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에서 열린다는 것. 오시면 생각처럼 어렵지 않고, 예상보다 흥미롭고, 꽤 어쩌면 눈물을 쏟거나, 웃음을 터트릴 순간들이 많으리라는 것. 그리고 아주 조금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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