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주 칼럼] 기후 재난 시대, 농민의 인권을 생각한다

성지은 2023. 8. 21. 00:2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리산이 좋아 전남 구례군 용방면의 작은 마을로 귀촌한 지 4년이 지났다.

이런 기후 재난을 겪으면서 농민 인권을 생각해본다.

2018년 12월 유엔(UN·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농민권리선언은 농촌과 농민의 기후인권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국제규범이다.

기후 재난 시대에 농민의 인권을 생각한다는 것은 거대한 기술 전환보다 작지만,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의 조건을 고민하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이 좋아 전남 구례군 용방면의 작은 마을로 귀촌한 지 4년이 지났다. 그동안 동네 어르신에게 텃밭 농사도 배우고, 지역 활동가들과 농촌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잘 지내왔다. 문제는 매년 반복되는 재난 수준의 기후변화다. 2020년 사상 유례없는 긴 장마로 섬진강이 범람했다. 지난해에는 겨울부터 초여름까지 비가 오지 않아 모든 작물이 타들어가고 닭과 오리가 폐사했다. 올해는 모든 재난이 현실화했다. 집중호우에, 최악의 폭염에,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풍까지. 이런 기후 재난을 겪으면서 농민 인권을 생각해본다.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를 인권 차원에서 주목하게 된 계기는 2005년 북극의 이누이트가 제기한 청원 사건이었다. 그들은 기후변화로 이누이트의 환경이 파괴되고 생계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주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보상을 요청했다. 이때부터 기후인권이나 기후정의에 대한 개념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오며, 특히 원주민·이주노동자·아동·여성·빈민에게 생존의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 국제적으로 각인됐다.

농업은 생산구조 자체가 기후 의존적이라 농민들은 가뭄·태풍·폭염·산불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2021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손실 규모의 26%가 농업분야에서 발생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가 특히 가난한 농촌 공동체와 소농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2022년 한국농촌사회학회 연구진이 발표한 ‘기후위기와 농어민 인권에 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분야의 피해는 개별 농가가 대응(회피)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데 반해 정부의 대책은 매우 부실했다.

기후정책이 부메랑이 돼 농민의 권리를 침해하기도 한다.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소농들은 토지를 빼앗기고 원주민의 산림은 대규모로 파괴되고 있다. 태양광발전 시설이 농지를 대거 잠식하기도 하고, 마을 안에 가깝게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농촌의 거주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제대로 항의하기 어렵고 보상받기도 힘들다. 2020년 긴 장마로 섬진강이 범람했을 때 오랫동안 경작해온 과수밭 전체가 유실됐지만, 그곳이 ‘하천지정구역’이며 국가 소유 토지라는 이유로 국가 배상에서 제외된 사례도 있었다.

2018년 12월 유엔(UN·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농민권리선언은 농촌과 농민의 기후인권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국제규범이다. 선언의 서문에서는 소농이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집단임을 강조했다. 제18조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을 설계하고 이행하는 데 농민이 참여해야 한다는 절차적 권리를 명시했다. 나아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농촌의 회복력과 농민의 잠재력을 인정했다. 실제로 전세계 5%의 소농들이 지구 표면의 22%를 보살피고,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생물다양성의 80%를 보호한다. 소농의 생태적 삶이 기후변화 대응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리산 기슭의 작은 마을에서도 생태적 삶이 빛나고 있다. 밭 주변을 휘감은 돌담은 토양 유실을 막는다. 자원순환으로 건강한 농업 생태계를 만드는 유기농업, 토종 씨앗으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텃밭 농업이 대규모 단작(單作) 농업보다 장마나 가뭄을 잘 견뎌낸다. 기후 재난 시대에 농민의 인권을 생각한다는 것은 거대한 기술 전환보다 작지만,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의 조건을 고민하는 것이다.

김흥주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전 한국농촌사회학회장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