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재정건전성이 자유의 근본이다
과잉 요구와 부패·횡령의 악순환
재정건전성은 위기 때 버티는 힘
예타 면제사업 전면 재검토해야
票퓰리스트 정치인 이젠 퇴출을
김태윤 한양대 정책과학대학 교수
새만금 잼버리가 끝났다. 국민들은 입맛이 쓰다. 나라 살림이 이 꼴이어도 괜찮은가? 우리나라 정치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래도 되는가? 각자가 나라에 과잉 요구를 하고, 부패와 횡령을 일삼으며 졸속 집행을 한다. 마치 괜찮은 결과가 있는 것처럼 얼렁뚱땅 연기를 한다. 혹은 뇌물이나 마취제로 국민을 현혹하려고 드는 부조리극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곧 선거철이니 제2, 제3의 잼버리 공약을 남발할 것이다. 세수가 부족하다는 등 그야말로 ‘할리우드 액션’의 시기가 다가왔다. 재정건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세수 확충이 필요하다는 얄팍한 주장이 꽤 있다. 국세수입은 상반기에만 작년보다 40조원 가깝게 줄었다. 경제가 어렵고 세상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결과다. 하지만 재량적인 세수 확충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과 기업의 투자 여력을 줄이므로 가뜩이나 어려운 민간을 더욱 위축시키는 짓이다. 정부 등 공공부문은 계속 비대해지고 민간은 결핍에 직면한다.
재정지출을 자세히 살펴보면 낭비가 아닌 것이 드물다. 우선 재정사업 대부분이 약속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다. 고용 창출을 해보겠다고 온갖 사업을 일으킨다. 그 앞에 녹색, 착한, 아름다운, 사회적, 노인, 청년 등 갖가지 구호를 붙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실제 달성률은 10% 내지는 20%에 불과하다. 둘째,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은 이미 과잉과 중복이다. 그저 산과 강과 바다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셋째, 재정지출은 낭비의 피라미드를 자기증식, 확대 재생산한다. 일본은 350억원을 들인 잼버리를 1170억원으로 해보겠다고 하더니, 뒤로는 2조원짜리 연관 사업들을 숨겨뒀다고들 한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말하기에는 그 속담에 미안하다.
재정건전성은 세수와 세출을 맞추고 국가의 채무를 줄이는 것이다. 그 목적은 공공부문을 슬림하게 유지해 유연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사회 각 분야에 건전성을 파급시키는 것이다. 서로 해먹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양심적으로 일하자는 것이다.
건전성은 위기의 순간도 버틸 수 있게 해준다. 금융위기가 닥쳐도 강한 원화의 가치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서민들의 삶을 지킬 수 있다. 자원 위기가 와도 꼭 필요한 자원을 사와서 경제의 근간을 보존할 수 있다. 군사적 위기가 와도 필요한 무기를 확보해서 대적할 수 있다. 또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안전망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다. 그래야 국민들이 용기를 내 도전하고, 또 재도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 예비타당성조사를 정직하고 확고하게 시행해야 한다. 지난 정부 때 풀어줬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대상 사업들을 모두 다시 확인해야 한다. 사업이 오죽 말이 안 됐으면 예타마저 면제해야 한다는 말인가. 엄정하고 빠르게 조사하자.
둘째, 성과평가를 강화해야 한다. 서류상의 목표는 납득이 된다. 하지만 사업 시행 후의 결과는 그 누구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재정사업의 기획부터 완료 후까지 성과평가 및 사업평가가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실효성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부처 및 공공부문 내 연대책임 개념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부처 간 업무나 진행 시기가 조율되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 남의 성과를 빼앗으면서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다. 데이터에 기반한 논리적 사업 설계가 요즘과 같이 손쉬운 상황에서 더 이상 이런 관행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넷째, 속칭 지역 숙원사업들을 팔아서 주민들의 표를 사려는 정치인들을 더 이상 여의도나 시청, 도청에 보내면 안 된다. 그 사업들은 근처 업자들의 배를 채우는 것이지 유권자 대부분의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국민들이 이 점을 가슴 깊이 깨닫고 느꼈다면 이번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아마도 작은 의미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근검절약하고 저축하려는 가장이 집안에서 인기 있을 리 없다. 그 가장도 순간순간 가족들에게 가슴이 아프고 미안했을 것이다. 필자도 아버지에게 새 신발을 사달라고 떼쓰는 못난 아들이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과 피땀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또 굴종과 예속의 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자유를 잃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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