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20대 의사를 죽음으로 내몬 ‘한계’
3개월간 휴일도 없이 장시간 근무
과로 따른 공무원들 이직도 잇따라
적절한 휴식 보장 환경 조성 시급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해 이렇게 하지 않으려 했지만 한계예요.”
지난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카시마 신고(당시 26세)가 남긴 유서다.
환자를 돌보면서 자기 공부를 하고, 학회 발표까지 준비해야 했던 그에게 휴식은 사치였다. 꿈을 좇아 열심히 살아온 20대 청년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몬 ‘한계’의 실체다.
지난 7일 국가공무원 인사 관리를 담당하는 일본 인사원(人事院)은 ‘주 3일 휴무’가 가능한 근무 방식의 채택을 정부와 국회에 권고했다. 휴일을 하루 더 쓰면서 생기는 근로시간 부족분은 나머지 4일에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했다. 간부후보생을 뽑는 종합직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갈수록 줄고, 이 시험에 합격하고도 10년내 이직을 하는 사례가 3년 연속 100명을 넘어서는 등 장시간 근로에 따른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인사원은 현재 상황이 국가의 이익, 국민의 생활을 지키고 최고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어렵게 하는 위기라고 판단했다.
오래 일하는 자체가 성실함으로 여겨지고, 좋은 결과를 담보할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는 아니다.
충분히 쉬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쉬기 힘든 근무 환경,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카시마의 죽음은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극단적 사례다. 고위직이 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포기하는 공무원들의 이직은 국가 시스템마저 위협을 받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잘 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 주는 시스템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NHK방송은 다카시마 사례를 전하며 “일본의 의료 시스템은 의사의 자기희생적 장시간 노동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2019년 정부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의사 중 40% 정도가 ‘과로사 라인’으로 여겨지는 연간 960시간 이상 시간 외·휴일 근무를 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같은 해 발표됐다.
젊은 층에 비해 중장년층의 근로시간 감소가 뚜렷하지 않은 점도 비슷한 맥락 속에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13년과 비교한 지난해 근로시간 감소율은 25∼34세 8.6%, 45∼53세 5.7%로 세대 간 차이가 뚜렷했다. 중장년층이 오래된 일하는 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휴식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이 충분치 않다는 걸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의 지난해 주당 평균근로시간은 36.8시간으로 2013년에 비해 6.8% 줄었다. 2021년에는 미국과 같은 36.6시간이었다. 30.1시간인 프랑스, 32.2시간인 캐나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눈에 띄게 긴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 2019년 4월부터 대기업, 이듬해 4월부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연간 시간 외 근무 상한을 360시간 이내로 하도록 규제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인사원의 주 3일 휴무 권고나 내년부터 의사의 휴일·시간 외 근무 상한을 연 960시간, 월 100시간 내로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지는 것 등은 근로시간 단축에 더욱 고삐를 죄고 있다. 적절한 휴식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유효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카시마의 죽음을 통해 일본 상황을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한국 현실을 떠올릴 것이다. 지난달 공개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은 2021년 주당 근로시간이 48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자 비율이 18.9%로 평균(7.4%)보다 훨씬 높았다. 연간 근로시간은 1915시간으로 평균인 1601시간을 크게 웃돌았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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