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칼럼] 행복한 신부와 우정의 힘
서로에게 깊게 스미며 ‘나’를 일깨워
열정적으로 삶을 나누고, 꿈을 찾고
또 삶을 되돌아보는 힘으로 작용
성장한 아이들은 자기 삶을 찾아 저만치 멀어져 가고, 남편이나 아내도 부담스러운 나이가 온다. 그때는 우정이다. 황창연 신부가 이 시대 ‘행복’의 화두를 들게 만드는 죽비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가 말한다. 나이 들수록 ‘우정’이라고, 우정은 예수가 했던 것처럼 먹고 마시고 노는 일을 함께하는 거라고.
우정은 어떻게 생길까? 생각해 보면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다. 먼저일 뿐 아니라 오래, 이기도 하다. 사랑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힘이니까. 태풍처럼 강한 만큼 빨리 지나가는 힘이 사랑이라면, 우정은 난로처럼 따뜻하고 온화한 힘이다. 우정으로 승화하지 못한 사랑의 끝은 싸하기만 하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어 주는 친구가 있는 한 세상은 따뜻한 세상이고,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된다.
우정을 모르는 이는 쉽게 고립될 수 있다. 설사 그가 행복의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순식간에 불행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우정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다.
길가메시는 행복에 조건이 있다면 그 조건을 다 가진 영웅이다. 그는 우루크의 왕이었다. 고귀하고 똑똑하고 젊고 잘생긴 왕! 그 왕은 그런 조건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가장 아껴야 할 자기 백성을 향한 거침없는 폭력, 바로 ‘횡포’였다. 서사시가 말한다. “그의 횡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격해지고 있었다.”
길가메시의 변화는 우정에서 왔다. 싸울 수 있는 동등한 친구 엔키두와의 우정을 알고 나서 달라진 것이다. 더 이상 길가메시는 권력으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 당연히 나쁜 짓을 할 이유도 사라졌다. 거기서 그가 그간 나쁜 짓을 했던 이유가 보인다. 그것은 힘이 남아돌기 때문이었다. 남아돈 힘으로 심통을 부린 것이다. 심통을 부리는 사람이 엄청난 권력을 가졌다면 그가 부리는 심술은 그를 두려워하는 착한 사람들의 삶을 아작 낸다. 세상엔 웃음이 사라지고 세상은 백성들의 신음으로 뒤틀린다.
생각해 보면 신분이 고귀하다고 진짜 고귀한 것은 아니다. 신분은 외적인 것이라 사람을 외적으로만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고귀한 우정은 어떨까? 그것은 내적인 것이라 서로에게 깊게 스미며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열정을 깨워 ‘나’를 나답게 한다. 그 열정으로 이들은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다. 친구와 함께이니 자신감도 붙었다. 그들은 신성한 산, 삼목산을 정복하기로 한다. 우정의 힘이다.
레바논에 있다는 삼목산은 성전을 짓고 궁전을 짓는 데 쓰는 향백나무 숲이었다. 거기는 바람의 신 엔릴이 임명한 훔바바가 지키고 있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그 훔바바를 물리치고 삼목산의 주인이 된다. 우정은 이렇게 열정적으로 삶을 나누고, 꿈을 찾고 이루며, 삶을 돌아보는 힘으로 작용한다.
니체도 ‘유고’에서 말했다. 행복의 진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가꿀 수 있는 뜰, 와인 그리고 우정이라고. 그 우정을 위해서는 재력과 지위와 나이를 따질 필요는 없겠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친구는 삶의 선물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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