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승련]산불이 할퀸 하와이는 ‘X의 섬’
▷하와이주는 1인당 소득이 5만 달러를 넘는다. 하나의 국가로 간주한다면 독일과 네덜란드 사이쯤 되는 부국(富國)이다. 그런 곳에서 목격된 산불 초기 대응을 보면 미스터리(X)가 하나둘이 아니다. 제주도 크기인 마우이섬은 상주 인구 16만 명에, 고급 리조트를 찾는 관광객이 넘치는 휴양지다. 소방대원은 모두 65명. 소방차가 13대, 사다리차는 2대뿐이었다. 소화전 수압이 낮아 초기 진화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여기가 미국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화재 직후 대피 사이렌도 울리지 않아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악몽 이후 옥외 사이렌을 설치해 왔고, 지금은 80개나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마우이섬 재난·방재 책임자는 “사이렌을 울렸다간 쓰나미 경보로 오인한 주민들이 (불이 난) 산 쪽으로 피할까 걱정해 그랬다”고 말했다가 하루 만에 물러났다. 홈페이지에는 “산불과 쓰나미를 위해 사이렌을 가동한다”고 적혀 있었다. 산불과의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꾼 것도,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후임자 지명을 않는 것도 재난대응의 ABC가 맞는지 의문이다.
▷초기엔 미지수(X)였던 화재 원인은 발화 지역의 조류보호센터 보안 카메라 영상이 공개되면서 윤곽이 잡혔다. 어둠 속에 튄 섬광이 촬영된 것이다. 당시 하와이에는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시속 100km의 강풍이 불었다. 강한 바람에 나무가 쓰러져 송전선을 건드렸거나, 송전선이 바람에 끊기며 불똥이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 옮겨붙었을 것이란 추정이 유력해졌다. 매년 봄 우리가 겪는 백두대간 산불과 흡사하다. 더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만 존재하는 하와이는 지금(5∼10월)이 건기다.
▷하와이는 탄식의 섬이 됐다. 휴대전화가 되살아나면서 연락이 닿아 실종자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1000∼1200명이나 된다. 불에 탄 시체도 신원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 통상 치아나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지만 치과 진료 기록도 불탔고, 시신 훼손이 심해 지문 채취도 어렵다고 한다. 현지에선 불에 탄 마우이를 두고 “9·11테러 직후 같다”고, 잿더미 때문에 “흑백사진 같다”고 말한다. 마우이섬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마음도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지금 그곳에는 우리가 아는 하와이는 없다. 자연이 만들고 인재(人災)가 키운 재난이 이렇게 무섭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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