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조은아]파리에서 만난 ‘슬기로운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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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있는 딸 가족을 찾아오신 친정아버지가 최근 갑자기 몸에 이상 증세가 생겨 파리의 한 대형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의사가 많으면 아무래도 한 환자에게 더 집중할 여유가 생긴다.
한국보다 의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프랑스는 여전히 '의사 증원'을 고민 중이다.
한국도 밤샘 근무와 격무가 몰려 신입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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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속도 1위’ 韓, 의사 증원 속도 내야
지옥 같았던 중환자실에서의 긴 시간, 그나마 위안이 된 건 프랑스 의료진의 친절이었다. 의사들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반복되는 보호자의 질문에 성의껏 응했다. 의사와 다시 대화하고 싶을 때 다시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퇴원 수속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아버지의 질환이 무엇인지, 재발을 방지하는 법 등을 담은 내용이었다. 환자뿐 아니라 환자 가족에게까지 따뜻한 위로와 당부의 말을 전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형병원에서 겪은 기억이 자꾸 떠올랐다. 두 국가의 의사들이 대조됐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 한국 의사들은 대형병원에서 ‘신(神)’처럼 여겨졌다. 환자가 마주하기 어려운 건 기본, 만나더라도 질문에 대한 답은 짧았다. ‘다음 환자를 봐야 하니 빨리 나가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곤 했다. 대개 인턴과 간호사들이 의사를 너무 어려워해 필자까지 불편할 정도였다.
모든 한국 의사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진심과 성의를 다해 대해준 ‘슬기로운 의사’들도 기억한다. 하지만 의사 대부분이 친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초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외래진료 의사 서비스에 대한 긍정적 평가 비율’은 83.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86.6%)에 못 미쳤다.
반면 프랑스에서 만난 지인들은 흔히 의사들이 친절하다고들 말한다. 프랑스 의사들은 왜 한국 의사들보다 친절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의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점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프랑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4명. 반면 한국은 2.6명으로 OECD 회원국 37곳 중 꼴찌에서 두 번째다. 의사가 많으면 아무래도 한 환자에게 더 집중할 여유가 생긴다. 의료시장 경쟁을 유도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의사 증원은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심각해진 의료진의 과로를 덜어 줄 것이다.
한국보다 의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프랑스는 여전히 ‘의사 증원’을 고민 중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일찍이 2018년 의대생 정원을 제한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그런데도 올해 초 보건의료 개혁 방안을 내놨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했고 지방 의료 인력은 워낙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의료 보조 인력을 현재 4000명에서 2024년 말 1만 명까지 늘린다는 목표가 담겼다.
OECD ‘고령화 속도 1위’인 한국은 고령 환자가 불어날 미래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을까. 국내 의사 수는 2030년 1만4000여 명, 2035년 2만7000명 부족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의대 증원 논의는 매번 의사들의 모임인 대한의사협회 안에서만 맴돌다가 흐지부지됐다. 이제 의사뿐 아니라 외부 인사를 논의에 참여시킨다니 늦었지만 반갑다. 논의를 더 미루면 의료계가 ‘밥그릇 지키기’에 매몰되는 바람에 과로하는 의사도, 의사에게 불만스러운 환자도 모두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료의 질을 높이는 데도 힘써야 한다. 마크롱 정부의 이번 개혁안에는 의료진의 주 35시간 근무제를 유연화하면서 근로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 담겨 눈길을 끈다. 한국도 밤샘 근무와 격무가 몰려 신입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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