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흉기난동, 사이버 공간에서 자란다

김수연 2023. 8. 20.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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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시사국 28회 II] 흉기난동, 사이버 공간에서 자란다

연이은 무차별 흉기 난동, 일본에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관련 기사를 검색해봤습니다.

서현역 사건은 일본에서도 상당한 뉴스거리였습니다.

“한국에서 거리의 악마 사건 발생”

무차별 흉기난동범을 일본에서는 ‘도리마’, 즉, ‘거리의 악마’라 부릅니다.

최악의 ‘도리마’ 사건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하라다 다카유키/ 츠쿠바 대학 심리학과
“젊은 남성이라는 존재의 사회적 고립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어요.”

청년층의 좌절에 기름을 부은 건 사이버공간이었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가네자와 노도카/ 일본 도쿄
"지금은 인터넷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서 비관하기 쉽잖아요. 그러다 점점 우울한 감정이 생겨나서 폭발하면서 그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 15년 전 일본의 무차별 살상 사건, '아키하바라 사건'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

전자상가 상인들은 아직도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쿠치 다카시 / 당시 목격자
"창문으로 내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7~8명? (현장은) 저쪽인데 사람들이 많이 쓰러져 있었어요."

2008년, 당시 25살이었던 가토 도모히로가 일으킨 최악의 무차별 흉기 난동사건이었습니다.

김수연 기자/도쿄 아키하바라
15년 전 가토는 사건을 위해 빌린 화물차를 타고 사람들로 가득 찬 이곳으로 돌진했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매년 6월이 되면 피해자 가족들이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일요일 정오가 되면 아키하바라 거리는 차량 통행이 제한되면서 ‘보행자천국’으로 바뀝니다.

(2008년 6월 8일 CCTV 화면)
바로 이때쯤, 화물차 한 대가 달려와 보행자들을 덮쳤습니다.

순식간에 다섯 명이 쓰러졌습니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흉기를 들고 거리를 내달립니다.

당시 목격자
“차에 치인 사람을 도와주려는데 사람들이 쓰러졌어요. ‘찔렸다’ ‘찔렸다’ 하는 소리가 났어요.”

황급히 골목으로 몸을 피하는 사람들

보행자들의 천국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돌변한 순간,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쓰러진 사람들을 도우러 달려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택시 운전수 유아사 히로시 씨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가토는 부상자를 도와주던 착한 사람들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습니다.

유아사 히로시/피해자
“흉터는 많이 아물었지만 아직도 상처 부위는 빨갛습니다.”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유아사 히로시/피해자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그렇게 죽인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유를 말해줄 유일한 사람 가토 도모히로.

아키하바라의 어느 뒷골목에서 경찰과 마주쳤습니다.

권총을 겨눈 경찰 앞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모든 걸 체념한 듯 흐느껴 울었노라고, 가토를 체포한 경찰관은 훗날 털어놓았습니다.

기쿠치 다카시/목격자
“마침 TV를 보고 있었는데 경찰이 범인을 체포한 곳이 이 골목이에요. 점심 먹으러 갈 때 매번 그 골목을 지나가는데, 그날은 그 길로 가지 않고 저쪽으로 갔어요. 운이 좋았죠.”

주변 상인들은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기쿠치 다카시/목격자
“시대가 변해서 그런 분위기가 되어버렸어요.
(시대가 변했다?)
네, 그래서 이상한 사람이 나온 거예요. 그 사람은 정신이 이상해요. 정상이 아니에요.”

구치소에서 가토를 여러 번 면회해본 사람들은 조금 다른 말을 합니다.

사토 히데유키/ 비평사 대표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이 사람이 왜?’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런 사건을 일으킬 인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가토가 구치소에서 쓴 원고를 책으로 출판한 사토 씨, 책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가토 도모히로, <해> 중에서
'유족과 피해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반성문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으로 다음 사건을 막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키하바라에서 사람을 죽일 것이다”

그날 새벽 5시 21분, 가토는 인터넷 게시판에 아키하바라에서 일을 저지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시간이 됐습니다”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종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홀로 타향살이를 하던 가토에겐, 세상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 이용자들이 가토의 흉내를 내며 장난을 치기 시작하면서, 가토는 무너져갔습니다.

사토 히데유키/ 비평사 대표
"우연히 들어간 직장이 그런 곳이었어요. 여러 가지 괴롭힘을 당했고. 하지만 고향 아오모리현을 떠났기 때문에 부모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어요 더구나 인터넷 세상에서 게시판 이용자들에게 무시를 당하면서 더 궁지에 몰렸던 것 같아요."

가토는 책에서 게시판에 대한 강한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가토 도모히로, <해> 중에서
'저는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다툼으로 인하여 제 행세를 한 이용자들을 심리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그 수단으로 이용한 큰 사건이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대한 복수, 그 수단이 바로 아키하바라 사건이었습니다.

그날 정오쯤, 가토는 화물차를 빌려 아키하바라 쪽으로 몰았습니다.

가토 도모히로, <해> 중에서
'본래는 아키하바라 보행자천국에 화물차로 돌진할 작정이었지만 왜인지 저는 그 입구 교차로에서 멈춰버렸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돌진하려 했지만, 몸이 제멋대로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화물차의 진행 방향으로 사람이 보였을 때에서야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하고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교차로 근처를 세 바퀴나 돌면서 끝까지 주저했던 가토.

하지만 마지막 순간 게시판에 대한 분노가 가토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가토 도모히로, <해> 중에서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을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 이용자들에 대한 심리적 공격을 개시해 버렸다는 것, 즉 (인터넷) 게시판에 아키하바라 사건을 이미 선언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교차로를 네 바퀴째 돌았을 때, 트럭은 굉음과 함께 폭주를 시작했습니다.

가토 도모히로, <해> 중에서
'거기에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눈은 ‘왜?’라고 묻는 것 같았고 죽어있었던 저의 마음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부딪혀 있었습니다.'

조화행/현지 코디
"복잡한 심경이 나타나 있네요."

김수연/취재 기자
"세 바퀴째에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요."

사토 히데유키/ 비평사 대표
"그러게 말입니다. (가토는) 인터넷에서 익명의 네티즌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을 품었어요. 그 인물을 특정할 수 없으니까 더 분노가 치밀었다고 해요."

사형 선고가 내려진 가토는 도쿄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충격에 빠진 일본 사회는 ‘거리의 악마’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가토가 보인 반응은 또 한 번 일본 사회를 놀라게 했습니다.

가토는 한 잡지사에 옥중수기를 보내왔습니다.

시노다 히로유키/ 월간 <창> 편집장
"처음으로 가토의 수기를 실었을 때 인터넷에 여러 가지 댓글이 달렸어요. 제멋대로 말을 내뱉는다는 비판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요. 거기에 가토가 일일이 답변을 했어요."

월간 <창> 2014년 12월 호, <아키하바라 사건의 범인이 세상의 비판에 대답하다> 중에서/
'정확한 비판이 의외로 많아 세상은 아직 쓸만하다고, 그렇게 희망을 가졌습니다.'

시노다 히로유키/ 월간 <창> 편집장
"비판은 많았지만 그런 비판으로 사회가 자신에게 대답해준 것은 기뻤다고 쓴 것이죠. 가토는 스스로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40년 정도 강력범들의 수기를 잡지에 게재해왔다는 시노다 씨.

20년쯤 전부터 이런 사건들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시노다 히로유키/ 월간 <창> 편집장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비교적 그런 사건들이 눈에 띄었어요. 젊은이들의 자살이 늘어난 것과 상당히 관련이 있어요. 즉,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예요."

일본 법무성 산하 법무종합연구소가 주요 무차별 흉기난동범 52명을 분석한 결과, 20살에서 39살까지가 59%나 됐습니다.

하라다 다카유키 교수/츠쿠바 대학 심리학과
“젊은 남성이라는 존재의 사회적 고립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에서도 큰 문제가 되었어요. 취직이 잘 안 된다거나 결혼을 할 수 없다거나, 그리고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하지 못해서 친구도 없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은둔 상태가 되는 거죠. 이런 건 안타깝게도 남성이 많아요.”

정말로 심각한 건, 사형 같은 강력한 처벌로도 막기 어렵다는 겁니다.

시노다 히로유키/ 월간 <창> 편집장
“나라초등학생 살해 사건에서는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법정에서 주먹을 쥐고 승리의 포즈를 취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어요. 본인이 사형을 원했죠. 죽음을 바라는 사람에게 사형은 처벌이 아닌 거예요.”

범죄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라다 다카유키 교수/츠쿠바 대학 심리학과
“자신은 이 사회에서 살아봤자 아무런 즐거움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 버리죠. 공격성이 자신을 향하면 자살이 돼요. 적대감이 밖으로 향하면 이런 범죄가 되는 겁니다.”

1년쯤 전인 지난해 7월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가토가 구치소에서 그린 그림, 언뜻 보기엔 밝은 분위기 같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확대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자 하나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우울하다’는 뜻인 ‘울(鬱)’ 자입니다.

가토 도모히로, <해> 중에서
'사회적 죽음, 고립이라는 공포를 견디기 어려웠고 그보다는 육체적인 죽음이 오히려 은총이라고 생각했던 것뿐입니다.'

■ 무차별 사건의 비극…"범죄로 주목받으려는 과시욕 개입돼"

남현종/아나운서
"가토의 얘기를 듣다 보면 한편으로는 사회적 고립이 그렇게 심각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아까 피해자를 도와주다가 공격을 당했던 택시기사 말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라는 거죠."

김수연/취재 기자
"그렇죠. 가토의 말을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가토는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최악의 가해자거든요.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끼친 고통은 말로 하기도 힘들고요. 가토의 가족들도 굉장히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토의 외할머니는 사건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고요. 가토의 동생도 가토 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장생활도 제대로 못 하고, 결혼하려던 상대와도 파탄이 나면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니까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비극과 불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 겁니다."

남현종/아나운서
"그리고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더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데 거기서 책을 4권이나 내고, 자신에 대한 비판에 일일이 대답까지 해준다, 이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김수연/취재 기자
"자기과시욕 혹은 자기현시욕이 개입되어 있다고 범죄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토가 말한 것처럼 고립되어서 너무 힘들었다, 이건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런데 힘든 사람들이 다 저런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잖아요? 뭔가 다른 요인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과시욕이라는 얘깁니다. 대형사건을 일으켜서 세상에 자신을 과시하려는 거죠."

하라다 다카유키/츠쿠바 대학 심리학과 교수
“범죄를 저질러서 사회적 주목을 받으려는 이른바 인정욕구 같은 것을 범죄로 표출하는 범죄자는 안타깝게도 늘 있었어요. SNS가 발달하기 전에는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거나 일부러 협박 전화를 걸었어요. 그런데 SNS 시대가 되어 비교적 쉽게 주목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사건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사이버 공간의 행적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꼭 피해자였던 것만은 아니었습다.

한 유튜버는 자신이 고소한 악플러가 조선으로 밝혀졌다는 충격적인 연락을 받았습니다.

루인 / 유튜버
“검사님은 차분하게 ‘신림동 사건 관련자가 악플을 단 거로 확인돼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악플은 잠재적 살인마라는 생각을 정말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고 그런 경각심이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런 고소를 통해 문화를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사이버공간에 만연한 혐오와 괴롭힘이 현실 공간으로 터져 나온 게 이번 흉기 난동이라고, 범죄심리분석가들은 분석합니다.

배상훈 / 범죄 심리 분석가
"최원종도 거기 참여했다고 본인이 얘기해요. 조선 사건이 됐을 때 자기도 칼을 올리고 그랬다고. 그런 커뮤니티가 그런 것의 소위 발진기지나 경유지가 되는 이유가 그겁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소재가 됐든 혐오라든가 타인에 대한 괴롭힘의 수단으로 삼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하며 방치할 게 아니라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배상훈 / 범죄 심리 분석가
"이런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런 사람들이 모인 사이트라든가 이런 혐오 사이트라든가 혐오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기 전에 미리미리 차단해서 흐트러뜨리는 작업이 먼저 돼야 하고 그런 부분을 계속 방치하면 일본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죠.”

취재기자: 김수연
촬영기자: 심규일
외부촬영: 조선기
영상편집: 이상미
자료조사: 김동하
조연출: 유화영 정현주
현지 코디: 조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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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기자 (sykb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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