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줌인/임현석]신뢰가 무너진 세상에서의 생존 수칙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2023. 8. 2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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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이른바 빅4(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이 질문이 중요한 건 한국 사회가 공존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회적 리더십은 정치 공학에만 매몰돼 있고, 각자도생 외에 뚜렷한 답이 없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과거를 다룬 영화 두 편(밀수, 비공식작전)은 신뢰가 무너지고 공존을 모색하지 않는 세상에서 개인 단위에서의 구원이 더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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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공식작전’에서 피랍된 동료를 구하러 레바논에 간 외교관 민준(하정우·위)이 현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와 함께 동료의 흔적을 쫓던 중 무장세력 간 총격전이 벌어지자 벽 뒤에 숨는다. 와인드업필름 제공
올해 여름 한국 영화 블록버스터 이른바 빅4(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있다. 자기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재난과 난리통 속에 휩쓸려갈 때 개인은 어디에 의지해야 하나? 국가와 공권력, 더 나아가 공동체를 믿을 수 있나?

이 질문이 중요한 건 한국 사회가 공존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회적 리더십은 정치 공학에만 매몰돼 있고, 각자도생 외에 뚜렷한 답이 없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우리 뇌리에 남은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구출 내지는 탈출 서사가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달리, 한국식 서사엔 같은 대상에 대해 우리 현실을 반영한 일정한 냉소가 깔려 있다.

이 빅4 영화는 신뢰가 사라진 세상을 다룬다. ‘밀수’가 다루는 공간은 국가 주도 산업 정책과 환경 오염으로 말미암아 삶의 터전이 사라지고 공권력이 비루한 악으로 전락한 곳이다. ‘비공식작전’도 국가가 위험에 처한 개인을 정치적 계산에 따라 외면하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삼는다. 여기에선 나와 가깝게 부둥킨 이들과의 신뢰가 중요하다.

‘더 문’은 달 탐사 중 우주에서 조난당한 대원을 구하기 위해 시스템이 아니라 전 우주센터장의 소명감에 의지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 한 동을 지키려는 중산층 주민들의 악다구니와 회의감으로 어수선하다.

상대적으로 미래 SF적 상상력이 더해진 영화 두 편(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이 공동체의 역할과 의무를 보다 첨예하게 묻는 쪽이다. 영화 속 미래 재난과 절망 속에서 싸우는 인간을 그리며 공동체를 회복하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반면 과거를 다룬 영화 두 편(밀수, 비공식작전)은 신뢰가 무너지고 공존을 모색하지 않는 세상에서 개인 단위에서의 구원이 더 부각된다. 동료애를 통해 보람과 위안을 구한다. 밀수와 비공식작전 두 편이 SF에 비해선 소박하고도 유머러스하지만, 들여다보면 냉소는 더 짙다.

빅4 영화 속 SF적 세계관 속에선 적어도 진실이 드러나면 세상이 회복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진실이 중요하다는 믿음이 극을 끌고 간다. 반면 과거를 다룬 두 영화는 공권력이 진실도 손쉽게 은폐할 수 있는 시대를 그린다. 여기에선 개인이 짊어져야 할 부담의 크기가 더 크다. 대체로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을 때 개인 단위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 수준이 낮을 때, 우리가 짓는 표정이 냉소다. 이런 관점에서 가장 냉소적인 작품은 비공식작전이다. 김성훈 감독의 전작인 ‘터널’이 그랬듯 이 역시 위험에 처한 국민이 등장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 그려진다.

레바논에서 우리 외교관이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지만 정부는 부처 간 기 싸움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구출 작전을 벌이지 못한다. 구출 작전에 투신하는 개인들도 처음엔 거창한 대의와는 일견 멀어 보인다. 외무부 중동과에서 5년간 근무한 외교관 민준(하정우)이 납치 외교관을 구하는 일에 자원한 것도 미국 발령이라는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우연한 계기로 민준을 돕는 현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도 철저하게 돈벌이라는 자기 동기에 충실하다.

그들이 배신과 불신을 거쳐 마음을 바꿔 맞손을 잡는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지지만, 개개인 단위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일수록 역설적으로 국가 시스템에 대한 냉소는 더욱 깊어진다. 영화는 망가진 시스템 속에서도 자기 윤리에 충실한 개인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고, 자기 일에 몰두하면서 그때그때 만나는 인연에 대해 호의를 품는 것은 값진 일이라고 말한다. 그건 현실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이상적이진 않은 현실적인 조언. 현실적이지 않지만 이상적인 조언. 지금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무엇이 더 유효한 것일까. 요즘 한국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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