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사적 요새, 아파트를 ‘삐딱하게’ 살펴보다[한국 사회를 읽다/박해천]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콘크리트 유토피아’ 저자 2023. 8. 2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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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한 장면.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고 남은 황궁아파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욕망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대지진으로 세상을 뒤집어엎고 시작한다. 무너져내린 건물들로 거대한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 그 한복판에 한 동의 아파트만이 유일하게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서 있다. ‘삼영빌라’와 ‘드림팰리스’ 사이에 자리 잡은 ‘황궁아파트’ 103동이 그것이다.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콘크리트 유토피아’ 저자
흥미로운 대목은 이 아파트 주민들이 선택한 생존의 방식이다. 그들은 바깥 세계의 엄동설한 속 지옥도를 애써 모른 척한다. 그들은 그 지옥에서 구해온 식량과 물품으로 궁핍한 삶을 이어가지만, 그래도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이전처럼 중산층의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의 이기심을 끝없이 부풀리는 이 착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바로 아파트의 실내 공간 덕분이 아닐까? 주민대표 영탁의 말을 빌리자면, 신발을 꼭 벗고 들어가야 하는 그곳 말이다. 실제로 베란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세계의 풍경을 외면할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베란다 창을 조망이 아니라 채광을 위한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아파트의 실내 공간이 사적인 요새로 기능하는 셈인데, 이 공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일까? 그 연혁(沿革)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하던 1970년대 중후반의 서울 강남으로 향해 보자.

이 시기에 아파트 거주를 시작한 중산층 주부들은 부엌과 식당을 주방으로 통합해 가사노동의 공간을 현대화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였다. 이들에게 지원군 역할을 한 것은 조리대, 개수대, 수납장을 일체화한 시스템 키친이었다. 한편 거실은 텔레비전과 소파의 도움을 받으며 극장의 형태로 제 모습을 갖춰 나갔다. 한쪽 벽면에는 텔레비전이 자리 잡고, 반대편에는 소파가 놓였다. 한옥의 대청마루나 양옥의 응접실과는 다른 모양새였다. 이처럼 거실과 주방이 만들어 내는 ‘현대적 문화생활’의 경관은 중산층 가족의 정체성이 투사되는 스크린의 역할을 담당했다.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바탕으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가족의 정체성을 바로 이 실내 경관을 통해 표현할 줄 아는 것을 의미했다. 이 시기에 “남부럽지 않은 삶”에 대한 욕망은 아파트 실내 공간에 무엇을 어떻게 채워 넣을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되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사회는 ‘3저 호황’을 근간으로 본격 소비사회로 진입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아파트는 이제 중산층 문화의 표준적인 주거 모델로 자리 잡았다. “주택 200만 호 건설”의 구호 아래 등장한 수도권 신도시와 지방 신시가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수많은 베이비붐 세대의 젊은 부부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내 집 마련”의 욕구를 실현할 기회를 제공했다. “보통 사람들”이 아파트 보유를 통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중산층의 정체성은 아파트의 실내 공간을 무대로 삼아 라이프스타일의 형태로 세밀하게 연출되어야 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본격적으로 보급된 승용차, 에어컨, VTR, 진공청소기, 전자레인지 등은 이 라이프스타일에 디테일을 더했고, 아파트 실내 공간은 한층 더 많은 물건으로 채워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형 가전제품’이라는 색다른 유형의 가전제품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중 최고의 히트작은 ‘김치냉장고’였다.

이렇게 사반세기에 걸쳐 전국 각지로 확산되던 아파트의 실내 공간은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이전과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20세기가 황궁아파트의 전성기였다면, 21세기는 드림팰리스가 우세종으로 급부상하는 시대였다. 수출 대기업 중심 경제 체제 본격화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 폭등세로 중산층의 양극화가 가시화되자 아파트 역시 양극화 흐름에 올라탔다. 먼저 래미안, 자이, 캐슬, 힐스테이트 등 대기업의 아파트 브랜드들이 “당신의 이름이 되겠다”며 강남을 비롯해 전국 주요 지역에 고급 대형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지펠, 디오스, 하우젠, 트롬, 휘센 등 고급 가전들이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겠다며 속속 출시되었다. 바야흐로 상위 중산층을 고객으로 상정한 ‘자칭 명품’의 시대였다. 거실은 브라운관 대신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납작한 대형 텔레비전과 함께 몸집을 불려 나갔고, 주방은 양문형 냉장고, 김치냉장고, 드럼 세탁기로 중무장을 하고 아일랜드 작업대를 배치했다. 상위 중산층의 주부들 역시 자기 계발, 자녀 교육, 재테크에 능숙한 가정 경영의 전문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공간이 바뀌니 그 안의 사람도 바뀌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영화의 결말부, 카메라는 대뜸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장면을 보여준다. 대리석 벽면과 대형 텔레비전, 그리고 소파로 치장한 멀쩡한 아파트 거실의 모습이다. 부부와 그들의 자녀가 현관문을 열고 등장해 웃는 얼굴로 각자의 배역을 연기한다면, 곧바로 중산층 가족의 행복한 일상을 펼쳐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영화는 화면을 90도 회전시키며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다. 실제는 대지진으로 땅 위에 드러누운 아파트의 실내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직으로 기울어진 공간으로 생존자들이 걸어 들어온다. 흥미롭게도 여기에서 베란다 창은 그들에게 출입구가 되어준다. 앞서 살펴본 아파트 실내 공간의 변천 과정을 떠올려 본다면, 혹시 영화는 대재난 장르가 지닌 파국의 상상력을 빌려서 정작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바로 이 실내 공간의 해체와 재구성이야말로 중산층의 확대 재생산이 사실상 불가능한 시대에 새로운 형식의 삶을 모색하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말이다.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교수·‘콘크리트 유토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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