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시드니…스페인, 잉글랜드 꺾고 월드컵 ‘첫 우승’

박강수 2023. 8. 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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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여자 월드컵]20일 잉글랜드와 결승전서 1-0 승
스페인 여자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0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시드니/AFP 연합뉴스

결국 축구는 ‘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라 로하’(La Roja·붉은 팀) 스페인이 시드니를 붉게 물들였다.

호르헤 빌다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 여자 축구대표팀은 20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유럽 챔피언’ 잉글랜드를 1-0으로 누르고 역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이 세번째 월드컵 본선이고 이 대회 전까지 최고 성적은 16강에 불과했던 스페인이 동화를 완성했다. 여자월드컵 사상 다섯번째 챔피언이다.

전반 시작부터 스페인의 게임이었다. 이날 선발로 나선 11명 중 7명이 FC바르셀로나 소속인 만큼 출중한 조직력을 선보이며, 유려한 탈압박 빌드업으로 잉글랜드 선수들의 그물망을 빠져 나왔다. 스페인은 소유에서도 능했고, 전개에서도 능했다. 전반전 점유율을 53-31로 앞섰고(16% 경합), 슈팅 숫자에서도 6-3 우위를 점했다. 특히 상대 공격 진영(파이널 서드) 침투 횟수에서 20-8로 압도했다.

스페인의 올가 카르모나가 20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잉글랜드와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시드니/AP 연합뉴스

선제골은 경기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전반 29분께 잉글랜드의 수비수 루시 브론즈(바르셀로나)가 중원에서 스페인 선수 셋에 둘러싸이며 공을 뺏겼다. 스페인 미드필더 테레사 아벨레이라(레알)가 정확한 방향 전환 패스를 마리오나 칼덴테이(바르셀로나) 발 앞에 떨궜고, 왼쪽을 파고들던 올가 카르모나(레알)가 왼발로 골문 구석을 찔렀다. 준결승에서도 결승골을 넣었던 카르모나는 우승 주역이 됐다.

사리나 비그만 잉글랜드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로렌 제임스(첼시), 클로이 켈리(맨체스터 시티)를 투입하며 수비 전형을 백쓰리에서 백포로 바꾸는 플랜B를 가동했다. 잉글랜드는 16강 나이지리아전(0-0 승부차기 승)에서 한 명이 퇴장당한 채 연장전 30분을 버텼고, 8강전에서는 콜롬비아에 선제 실점한 뒤 뒤집기에 성공했다. 4강에서도 호주의 압도적인 안방 이점까지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20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스페인에 패한 뒤 허탈해 하고 있다. 시드니/AFP 연합뉴스

잉글랜드는 다시 결정적 파도를 넘어섰다. 후반 19분 돌파하는 칼덴테이를 막아서는 과정에서 잉글랜드 미드필더 키이라 윌시(바르셀로나)의 손에 공이 맞았고, 주심은 온 필드 리뷰(비디오 판독) 뒤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키커는 이번 대회 3골을 넣은 헤니페르 에르모소(파추카)였으나 잉글랜드 수문장 메리 어프스(볼프스부르크)가 완벽하게 방향을 읽어내며 에르모소의 킥을 막아냈다.

다만 한 골 문턱은 높았다. 후반 추가 시간 13분이 주어졌으나, 잉글랜드는 변변한 공격 기회를 만들지 못하며 스페인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점차 말렸다. 셀마 파랄유엘로와 아이타나 본마티(이상 바르셀로나) 등이 공을 잡을 때마다 상대 진영을 헤집으며 갈 길 바쁜 잉글랜드의 수비 라인을 뒤로 밀어냈다. 마지막 코너킥이 카탈리나 콜(바르셀로나) 골키퍼 손에 안기면서 종료 휘슬이 시드니 밤하늘을 갈랐다.

스페인 여자 축구대표팀 코치진과 선수들이 20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한 뒤 뒤엉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시드니/AFP 연합뉴스

스페인은 이번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8경기 동안 무실점 53득점 전승을 거두는 모자람 없는 페이스로 본선 티켓을 쥐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일본에 0-4 참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차근차근 승리로 팀을 추슬렀다. 불과 1년 전 빌다 감독의 지도력에 의문을 품고 집단 반발했던 선수 15명 중 3명 만이 이번 대회 부름을 받았고, 내홍 속에 스페인은 ‘원 팀’으로 뭉쳤다. 이 중 17명은 이번이 첫 월드컵이다.

스페인의 본마티가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영플레이어상은 파랄유엘로에게 돌아갔다. 골든글러브는 잉글랜드의 어프스가 받았다. 득점왕은 8강에서 탈락한 일본의 미야자와 히나타(센다이·5골). 무적 잉글랜드를 만든 사령탑 비그만 감독은 2019년 프랑스 대회에서 네덜란드를 이끌고 준우승한 데 이어 이번에도 마지막 한 걸음을 딛지 못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7만5784명 관중이 모여 역사를 지켜봤다.

스페인 여자 축구대표팀의 헤니페르 에르모소가 20일(한국시각)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2023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잉글랜드를 꺾고 우승한 뒤 엎드려 있다. 그는 후반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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