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팔아 꿀꺽, 밥먹듯 무단결근, 감사는 깜깜이...망가진 공기업

송광섭 기자(opess122@mk.co.kr), 연규욱 기자(Qyon@mk.co.kr),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2023. 8. 2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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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직원들, 승진시험 준비위해 무단 결근
자신들 복리후생만 눈독...LTV 무시한 대출 특혜도
지자체 산하기관은 컴퓨터 되팔아 이익 챙기기도
자체 감사체계 한계 드러나 ‘외부 감사제’ 도입 목소리
지난해 징계받은 공무원도 9% 늘어 2230명 달해
[일러스트 출처 =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아파트 단지를 지으며 무더기로 철근을 누락한 사태를 두고 2년4개월 전 상황의 데자뷔라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LH 스스로 비리를 근절하고 기강을 바로 세울 자정능력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LH는 대한주택공사(주공)와 한국토지공사(토공)을 통합해 2009년 출범시킨 공룡 공기업이다. 자본금 40조원 전액을 정부가 출자했다. 공공 주택은 물론 신도시 건설까지 담당하는 LH에는 현재 8885명의 임직원이 속해 있고 정규직 1인당 평균보수는 7500만원을 넘는다.

2021년 3월 LH 직원들이 줄줄이 신도시 땅투기에 나섰다가 적발되자 당시 정세균 국무총리는 “기존 병폐를 도려내고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불과 2년여 만에 LH 출신 ‘전관(前官)’들이 시공·감리·설계 업체 요직을 장악하고 LH로부터 일감을 받아가는 관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에 대해 이한준 LH 사장은 최근 “내부 자력만으로 혁신이 어렵다고 판단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LH 내부통제가 무너진 것은 징계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5년간 뇌물이나 금품수수와 음주운전 등으로 임직원이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22건에 달했다. 2년 전 직원들의 땅투기 사건 이후 여러 차례 쇄신 방안을 내놓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또다른 공룡 공기업인 한국전력도 현재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다. 임직원 180여 명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태양광 사업을 벌였다는 비위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내부 규정을 어기고 배우자 등 가족 명의로 ‘차명 법인’을 세운 뒤 태양광 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LH의 땅투기 사건과 닮은 꼴이다. 이들 가운데는 심지어 태양광 업무를 직접 담당했던 직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한전은 지난 6월 전 직원에게서 ‘태양광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받아야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승진시험 준비를 위해 무단 결근한 직원들을 징계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는 데도 출근하지 않고 집 근처 독서실에서 승진시험 준비를 하는 사례가 적발됐다. 무려 14일간 무단결근한 직원도 있었다.

한국조폐공사에선 해마다 음주운전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5월 음주운전을 한 직원은 정직 1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음주운전으로 다른 직원에게 감봉 처분이 내려졌다. 2021년과 2019년에도 동일한 사례가 있었다.

주요 공기업에서 이 같은 직원들의 비위 행위가 잇따르면서 공공기관의 기강 해이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모든 공공기관이 자체적으로 감사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감사 대상이 동료들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내부 직원들이 업무를 돌아가며 맡는 경우가 많아 감사 기능이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자체 역량만으로는 이같은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감사 업무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 번만 걸려도 큰 일이 날 수 있다는 ‘핫 스토브(열풍가마) 원리’를 활용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개개인의 소양 강화 등이지만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그보다는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부 조직에서 주기적으로 감사를 실시하는 체계를 정립하고 강도도 더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공공기관이 복리후생 잔치를 벌이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복리후생 제도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직원들에게 시중 금리보다 낮게 특혜 대출을 해주거나 잘못된 규정을 방치한 공공기관이 점검 대상 134곳 중 47곳(34.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도로공사 등 16곳은 무주택자가 85㎡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 한해 주택자금 대출을 지원하도록 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LH와 한국전력거래소 등 27곳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준수하지 않거나 근저당권을 설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의 기강 해이도 심각하다. 파주도시관광공사는 자체 감사에서 한 직원이 납품 받은 수억원대 컴퓨터를 사적으로 시중에 되팔아 거액의 금품을 챙긴 사실을 적발했다. 이후 해당 직원을 지난 2월 횡령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소규모 지방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임 교수는 “애초부터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기 위해 만든 기관도 많다”며 “향후 설립 조건을 엄격히 하고, 현재 운영 중인 기관은 구조조정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공무원의 비위 행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징계를 받은 공무원 수는 2021년(2039명)보다 9.3% 늘어난 2230명에 달했다. 징계 수위별로 보면 견책(706명), 정직(669명), 감봉(517명), 해임(179명), 강등(102명), 파면(57명) 순으로 많았다. 징계 사유로는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1459명으로 가장 많았고 성실의무 위반(584명), 청렴의무 위반(53명) 등이 뒤를 이었다.

또 공직유관단체 및 지방자치단체, 국립대 등에서 근무하는 공직자들의 청탁금지법(부정청탁·금품수수 등) 위반 사례도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청탁금지법 위반 공직자는 416명으로 법이 시행된 2016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 외부위원으로 위촉된 A교수는 평가대상 공공기관 직원으로부터 80만원 상당의 호텔 객실 이용권을 수수했다. 공직유관단체 팀장 B씨는 계약 담당부서가 진행하는 제안서 평가에서 특정 제품을 선택하라고 계약 업무 담당 직원들에게 청탁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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