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란 소각, 종교 넘어 ‘문명 충돌’
‘신의 말씀’ 쿠란 절대적 상징
유럽, 이슬람 비판 위해 ‘소각’
표현의 자유·신성 모독 상충
아랍권 반발에 테러 등 우려
스웨덴 등선 “국가안보 위기”
금지 방안 논의…극우는 반발
쿠란 소각을 둘러싼 유럽과 아랍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잇따라 쿠란 훼손 시위가 발생한 스웨덴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이슬람 극단세력의 보복을 우려해 테러 위험 등급을 3단계에서 4단계로 상향했고, 덴마크도 공항 등 공공장소에서 무작위 검문을 하는 등 경계 강화에 나섰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안보 위기에 처했다”고 할 정도로 후폭풍은 거셌다.
외신은 쿠란 소각으로 인한 유럽과 아랍의 갈등이 단순 종교분쟁이 아닌 문명과 가치의 충돌이라고 지적한다. 일찌감치 신성모독법을 폐지한 스웨덴과 덴마크 등 서방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쿠란 소각을 원천 봉쇄할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아랍권에선 쿠란 훼손을 신에 대한 모독일 뿐 아니라 이슬람을 무시하는 행위로 본다.
■ 쿠란이 뭐길래
이슬람교도들이 쿠란 소각에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쿠란이 곧 ‘신의 말씀(Word of God)’이기 때문이다. 알자지라는 “쿠란은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지침이자 법의 원천”이라며 “문자 그대로 신의 말씀으로 존엄과 존경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슬람교도들은 쿠란을 만지기 전 손을 깨끗하게 씻고, 조용한 장소를 찾아 반듯한 자세로 앉은 후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겨야 한다. 알아라비아 등 아랍권 매체에 따르면 쿠란은 대중서와 철저하게 구분해 별도 공간에 보관해야 하며, 아무리 낡고 해져도 함부로 처분해선 안 된다.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 배수구에서 50권 이상의 쿠란 사본이 발견돼 사우디 전역이 충격에 빠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2012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선 일부 병사가 쿠란과 이슬람 종교서적을 태웠다가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당시 미국 정부는 “탈레반 죄수들이 책을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받아 취한 조치”라면서도 “쿠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부주의한 소각에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 왜 하필 쿠란을 태우며 시위할까
이 때문에 쿠란 소각 시위는 명백히 이슬람의 분노를 고의적으로 겨냥한 시위 방식이다. 쿠란을 불태운 시위자들은 이슬람권 국가들의 여성과 동성애자 탄압,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폐쇄된 사회 등에 대한 항의 표시이자, 이슬람교도들을 분노하게 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 쿠란 소각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서방을 겨냥한 테러도 한몫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활동하는 목사 테리 존스는 9·11 테러 9주기인 2010년 9월11일 ‘국제 쿠란소각의날’을 만들자는 캠페인을 펼쳤다. 존스는 이듬해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 있는 본인 교회에서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쿠란을 불태웠다. 이에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존스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20명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쿠란 소각 시위를 빌미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막아서자 이에 대한 반발로 쿠란 소각 등 반이슬람 운동이 전개됐다.
■ 가치의 충돌…골치 아픈 유럽
스웨덴과 덴마크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쿠란 소각 시위의 완전 차단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스웨덴은 이미 1970년대 신성모독법을 폐지했고, 덴마크는 2017년 해당 법을 없앴다. 마티아스 왈스트롬 스웨덴 예테보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미 시사주간지 타임에 “특정 인종 증오를 선동하는 행위는 금지할 수 있지만, 종교적 상징물에 대한 공격엔 현행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이슬람교도에게 사회적으로 각종 ‘낙인’이 찍힌 상황에서 종교 전체를 모욕하기 위한 의도적 공격을 방관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외교 문제로까지 불이 옮겨붙은 만큼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라크 출신 살완 모미카는 지난 6월28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한 모스크 외곽에서 쿠란을 불태운 데 이어 지난달 20일에도 동료 살완 나젬과 함께 쿠란을 짓밟고 소각했다. 이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성난 시위대가 스웨덴대사관에 난입해 불을 질렀고 이라크 정부도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추방하며 맞불을 놨다.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국가 안보에 명백한 위협이 있을 시 경찰이 쿠란 소각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질서법 개정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외교장관도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쿠란 소각 등 선동 행위를 막기 위한 법적 도구를 찾겠다”고 했다. 하지만 극우 성향 스웨덴민주당이 “이상하고 웃기는 일”이라고 반발하는 등 법안 마련까진 진통이 예상된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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