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돌아보는 마음
김치를 제대로 담그려면
배추의 숨부터 죽여야 한다
굵은 소금으로 뻣뻣한 기운 눌러주고
풀어진 숨구멍마다 소금기 배어들면
준비는 다 된 것이니
누구에게나 영광의 시절은 있었노라
읊조리며, 숨죽인 배춧잎에
붉은 양념을 버무리는 손길들
잘 익은 김치를 먹을 때마다
온순한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
먹고 살겠다는 이유로
다른 생명의 숨부터 끊어놓고 보는
오랜 습속은 잠시 잊고
흐뭇한 미소부터 짓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돌아보는 마음이 없으면
경배하는 자세는 모두 헛것일진대
박일환(1961~)
김치를 담그기 위해 “굵은 소금”을 뿌려 “배추의 숨”을 죽인다. 파종이나 잎차례, 결구(結球), 묶어주기, 수확 단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시인이 직접 기른 배추는 아닌 모양이다. 손수 김치를 담그는 것도 아닌, 곁에서 지켜보는 듯하다. 배추를 수확할 때, 포기를 옆으로 슬쩍 밀고는 칼로 밑동을 자른다. 그 순간 배추의 숨이 끊어진다. 수확한 배추는 칼로 적당히 등분한다. 소금으로 “뻣뻣한 기운”을 눌러 숨을 죽이는 건 남아 있던 날숨마저 빼내는 게 아닐까.
“풀어진 숨구멍마다 소금기 배어들면” 절인 배추를 물로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뺀다. “숨죽인 배춧잎”은 부드러워진다. 죽어야 부드러워지는 몸이라니! “붉은 양념을 버무”리는 것을 지켜보던 시인은 “영광의 시절”을 호명한다. 배추는 고갱이 꽉 찬 때 잘린다. 시인은 “잘 익은 김치”에서 “온순한 인간”을 떠올린다. 누군가 자신의 몸에 소금을 뿌려 온순해졌다는 상념이다. 시인은 그 순간이 언제인지 돌아본다. 반성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생은 다 “헛것”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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