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영화 <밀수>(사진)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가수 장기하가 맡은 영화음악은 그 당시의 히트곡들로 채워졌다. 최헌의 ‘앵두’, 펄시스터즈의 ‘님아’,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비롯해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 옛날 감성이 충만한 노래가 등장한다.
‘옛날에는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납량용 액션물에 가깝다. 영화가 끝난 뒤 내용보다는 노래가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는 좀처럼 영화관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꿈길을 가듯 나 홀로 떠나네/ 미련 없이 떠나가네/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난 외롭지 않다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박경희는 복싱선수 출신 작곡가인 김기웅이 만든 이 노래로 동경가요제에서 동상을 받았다. 원래 워커힐호텔 쇼무대에서 활동하던 박경희는 카펜터스, 톰 존스 등의 팝송을 잘 부르던 가수였다. 가창력과 무대매너를 갖춘 가수를 찾던 김기웅에게 발탁돼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로 1974년 한국 국제가요제 대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2위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송창식이었다. 박경희는 ‘제2의 패티김’으로 불리면서 예명도 ‘○○박’으로 지으려 했지만 마땅한 이름을 찾지 못해서 포기했다. 그 대신 야마하 국제가요제, TBC 세계가요제 등에서 잇따라 입상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비슷한 이름과 국제가요제 수상경력 때문에 ‘곡예사의 첫사랑’을 노래한 박경애(작고)와 혼동하기도 했다.
결혼과 함께 고향인 경남 창원으로 내려가 노래교실 등을 운영했던 그는 이따금씩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면서 가수활동을 이어왔다. 그러나 2004년 5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패혈증과 신장 질환이 있었지만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서 많은 이들을 아쉽게 했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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