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서 전통이라도 빼주오” 망신 걱정하는 전통주 대회

최상원 2023. 8. 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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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찹쌀), 누룩, 물만 있으면 우리 전통주를 빚을 수 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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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가 주최하는 ‘제1회 경남 술도가 전통 으뜸주 선발대회’의 출품 자격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주를 뽑는 대회인데 일본식 개량 누룩인 입국과 인공감미료 아스파탐을 넣은 술 등에 대해 출품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무늬만 전통주 대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경남도는 지난 17일 “전통주 생산자 의욕 고취, 전통주 품질 향상과 소비 활성화를 위해 ‘2023 제1회 경남 술도가 전통 으뜸주 선발대회’를 연다. 오는 25일까지 출품작을 받아서 네차례 심사를 거친 뒤, 11월 농업인의 날 행사 때 시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남도는 탁주, 약·청주, 과실주, 증류주, 리큐르 등 5개 부문의 부문별 으뜸주를 뽑고, 으뜸주 가운데 하나를 최고 으뜸주로 선정할 예정이다. 으뜸주나 최고 으뜸주로 뽑히면 경남도지사 상패와 인증 현판을 받는다. 재료의 절반 이상이 우리 농산물이고, 전통주 제조 면허를 갖고 경남에서 생산하며, 최소 출품 3개월 전부터 시중에 유통하는 제품이면 출품할 수 있다.

경남도가 공식적으로 첫 전통주 대회를 여는 것은 최근 전통주 시장의 빠른 성장세에 발맞춰 경남 전통주 산업을 육성하면서 지역 농산물 소비도 촉진하기 위해서다. 최영조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외식산업과 사무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통신판매가 허용되는 전통주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면서 이른바 홈술·혼술의 유행 덕택에 시장 규모를 4배 이상 키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전인 2019년까지는 전통주의 연간 출고액이 300억~400억원이었으나, 2020년 626억원, 2021년 941억원, 2022년 1629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2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전통주 제조 면허도 해마다 100~150개씩 늘어 지난달 말 기준 1561개에 이르렀다. 고급화 전략에 따라 가격도 계속 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경남도는 ‘제1회 경남 술도가 전통 으뜸주 선발대회’가 경남 전통주 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 ㄹ마트 주류 코너에 진열된 다양한 막걸리. 이곳에는 26종의 막걸리가 있었는데, 입국과 아스파탐 등 인공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막걸리는 1종뿐이었다. 최상원 기자

그러나 전통주 전문가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경남도는 전통 누룩이 아닌 일본식 개량 누룩인 입국으로 빚은 술도 출품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전통주 전문가 대다수는 입국으로 빚은 술을 전통주로 인정하지 않는다. 입국을 사용하면 전통 누룩보다 쉽고 빠르게 술을 빚을 수 있다.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술을 생산해야 하는 상업 양조업자들이 입국을 선호한다.

또 입국으로 빚은 대부분 술과 알코올 주정을 희석한 술에는 신맛과 쓴맛을 싼값에 잡기 위해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이 들어간다. 지난달 14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스파탐을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했다. 발암 가능성이 있지만, 증거가 아직 충분하지 않은 물질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는데, 경남도는 아스파탐 사용을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 소주는 알코올 주정에 물을 부어 도수를 낮추고 각종 감미료를 섞어 맛을 낸 희석식 소주이다. 이것은 증류주인 우리 전통 소주와는 재료부터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경남도는 희석식 소주에 과실을 우려낸 혼성 과실주도 허용하기로 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경남도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 전통주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을 속이려 한다.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대회 이름에서 ‘전통’을 빼야 한다. 이대로 대회를 추진한다면 입국주를 생산하는 대형 주류업체들만 좋아할 것이며, 진짜 전통주 생산자들은 출품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인태 막걸리문화촌장도 “입국과 아스파탐을 넣은 술이 어떻게 전통주인가? 전통을 팔아먹는 명분 없는 대회이다. 전국적 웃음거리가 될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경남전통주진흥협회장을 지낸 류충호 경상국립대 교수(식품공학부)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입국주에 길든 많은 사람이 입국주를 전통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런데 경남도가 첫 공식 대회를 열면서 입국주에 전통이라는 이름을 달고 상을 주면, 입국주를 전통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입국주 출품을 끝끝내 허용하겠다면, 전통주 부문과 입국주 부문을 나눠서 대회를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회를 준비하는 경남도 담당자는 “주세법 등 전통주 관련 현행법은 입국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다. 전통주 제조 면허를 가진 업체들도 입국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 현행법에 따라서 면허를 받았다. 아스파탐의 유해성은 아직 명확히 확정되지 않았고, 사용이 금지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입국과 아스파탐 사용을 제한하는 기준을 만들어서 대회를 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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