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흉악범죄에 ‘치안강국’ 명성 흔들리는 한국… 현장선 순경 ‘구인난’

조희연 2023. 8. 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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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만 4600여명 결원
“20년 전 얘기인데 아직 해결 안돼”… 치안 최전선 ‘구멍’
입직해 기동대 차출, 인력 공백
귀찮은 일 도맡아 파출소 기피
근속 승진에 현장서 빨리 떠나
업무 환경·인력구조 개선 목소리
신림동 성폭행범 강간 등 살인 적용
피해자 ‘공무상 재해 인정’ 추진
잇따른 흉기난동 사건에 이어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까지 발생하며 ‘치안강국’이라는 한국의 명성이 흔들리고 있다. 연이은 흉악범죄에 시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는 가운데 지역 치안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지구대와 파출소의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 경찰청이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은 3만1623명이다. 정원 3만1559명보다 64명이 많은 수치다. 그러나 이를 직급별로 나눠서 보면 경위 이상 직급에 인원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총경과 경정 등 고위직 간부는 현원이 정원 대비 각각 17명, 67명 많았다. 경감은 5059명으로 정원(2020명)보다 3039명 많았고, 경위는 8456명으로 정원(3821명)보다 4635명 많았다.

반면 낮은 직급에서는 현원이 정원에 크게 못 미쳤다. 경사는 정원(6640명)보다 949명 적은 5691명, 경장은 정원(7985명)보다 2018명 부족한 5967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순경은 정원(9535명) 대비 절반이 결원인 4909명만이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순경 직급의 현원은 전국 18개 시도경찰청 모두 정원보다 부족한 상황이다.

순경 직급에서 1000명 이상의 결원이 발생한 지역은 서울을 포함해 부산(1967명), 대구(1253명), 인천(1210명), 경기남부(3444명), 경기북부(1157명), 경남(1224명) 등 모두 7곳이다. 경장의 경우 경기북부, 경사의 경우 경기남부를 뺀 나머지 모든 시도경찰청에서 결원인 상태다.
현장 목소리도 이 같은 수치를 뒷받침한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에서 인사관리를 담당하는 A 경찰관은 “올해 하반기 인사에서 (관할 지구대·파출소의)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구대·파출소 인력 부족 문제는 특정 관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곳이 공유하는 전반적인 문제”라며 “모든 지구대·파출소가 다 ‘균질하게’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선서에서 112신고사건 및 치안상황을 담당하는 B 경찰관은 “모든 경찰서에서 다 그렇게(인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순찰차 3대를 보유한 지구대·파출소를 기준으로 볼 때, 한 팀이 운영되려면 순찰차당 2명씩 총 6명에, 지구대·파출소 안에서 근무할 2명, 총 8명의 근무인원이 유지돼야 한다. 여기에 야간근무시 휴게에 들어가거나 휴가·병가를 가는 인원까지 고려하면 최소 10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B 경찰관은 “현재 ‘최소’인력을 8명으로 보고 그렇게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누구 한명이 휴가를 가게 되면 다른 팀에서 지원 근무를 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구대·파출소 인력 부족 문제는 대한민국 경찰의 고질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의 한 파출소장은 “지구대·파출소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20년 전부터 나오던 얘기”라면서 “치안 문제가 대두된 것도 처음이 아닌데, 아무리 얘기를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안전 위해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20일 서울 관악구의 한 공원 입구에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권고하는 구청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 17일 이곳 등산로에서 최모(30)씨가 일면식이 없는 여성을 성폭행 후 살인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현장 경찰들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크게 △기동대 차출 △잔업 기피 △근속승진 3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순경은 경찰에 입직 후 기동대로 차출돼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 기간 지구대·파출소 인력에 공백에 생긴다. 지구대·파출소 기피 현상도 있다. 지구대·파출소가 치안 유지를 담당한다고 하지만, 주취자 대응 등 ‘귀찮은 업무’를 떠맡고 있기 때문에 지방경찰청이나 경찰서로 배치되길 원한다는 설명이다.

근속승진 기간이 단축되면서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경찰이 너무 빨리 승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경찰공무원 승진임용 규정에 따르면 현재 순경·경장·경사는 승진을 위해 1년 이상 근무해야 한다. 경위도 1년 이상이고, 경정 및 경감은 2년 이상, 총경은 3년 이상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일선에서 경찰 활동을 하는 사람은 순경·경장·경사인데 지금은 1년만 있으면 승진 시험을 보고 금방 경위가 될 수 있다”며 “일선 경찰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 교수도 “지금은 근속승진을 많이 장려하다 보니 경찰 조직이 에펠탑형 구조가 됐다”며 “피라미드형이나 종형 구조로 가야한다”고 꼬집었다. 간부보다는 현장을 누비는 낮은 직급의 비중이 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역경찰의 업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한국은 집회시위를 막거나 국회·대통령실 등을 지키기 위해 배치한 경비 경찰이 너무 많은데, 그보다 지역경찰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지역경찰에 잔업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지역경찰을 제대로 교육하고 훈련해 전문화된 지역경찰을 만들고 승진시키는 체계를 만들어 이탈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 이송되는 피의자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 피의자 최모(30)씨가 지난 19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뉴시스
한편 경찰은 전날 신림동 등산로 성폭행 사건 피의자 최모(30)씨를 구속한 데 이어 이날 최씨 혐의를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상해에서 강간등살인으로 변경했다. 피해자가 전날 사망한 데 따른 조치다.

초등학교 교사인 피해자는 사건 당일 교직원 연수 업무를 위해 출근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사건 장소에서 1㎞가량 떨어진 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교사로, 운동삼아 등산로를 걸어 출근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피해자 빈소를 찾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취재진을 만나 “유족 말씀을 들으니 (피해자가) 어느 정도 공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청 소속 노무사와 사실관계를 확인해 (공무상 재해가 인정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행 당시 상황을 정밀히 재구성하고 이전 행적을 분석해 최씨가 성폭행뿐 아니라 살인의 의도까지 있었는지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최씨는 성폭행을 하려고 너클을 샀다고 인정하면서도 범행 당일 성폭행은 미수에 그쳤고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흉기를 동원해 의식을 잃을 정도로 폭행한 만큼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는 입증할 수 있을 것으로 경찰은 판단했다. 경찰은 오는 21일 피해자 시신을 부검해 구체적인 사인을 규명하고 폭행 피해와 사망의 인과관계를 확인하기로 했다. 피해자 휴대전화와 컴퓨터도 분석해 과거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조만간 최씨의 신상공개와 사이코패스 진단검사 여부도 결정할 방침이다.

조희연·김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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