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 정반대 증언을 하는 과학, 과학자

한겨레 2023. 8. 20. 18: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모든 박사학위에는 동등하고 반대되는 박사학위가 있다.'

필자는 진지한데 혹여 조롱으로 받아들일 독자를 위해 나름의 '과학적' 증거를 대자면, 2000년대 대통령 중 취임 첫 15개월 동안 과학과 이렇게 깊은 연을 맺은 대통령은 없었다.

이편에도, 저편에도 동등하고 반대되는 박사가 있다면 과학은 과연 중립적인가.

제목만 보면 과학이 정치와 얽히는 걸 터부시하는 것 같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지로의 인류세 관찰기][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과학적 검토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다. 연합뉴스

윤지로 | 에너지·기후정책 싱크탱크 ㈔넥스트 미디어총괄

‘모든 박사학위에는 동등하고 반대되는 박사학위가 있다.’

이른바 ‘깁슨의 법칙’이다. 법정에서 뭐라 증언하는 박사가 있다면, 그 반대로 증언하는 박사도 있다는 뜻이다. 같은 사안에서 왼쪽이 참이라는 전문가가 있으면 오른쪽을 참이라고 하는 전문가도 있는 법. 미국 과학사학자 로버트 프록터가 자신의 책에 인용하면서 과학계에도 통용되는 용어가 됐다.

우리는 지금 ‘제2의 과학입국’ 시대를 살고 있다. 필자는 진지한데 혹여 조롱으로 받아들일 독자를 위해 나름의 ‘과학적’ 증거를 대자면, 2000년대 대통령 중 취임 첫 15개월 동안 과학과 이렇게 깊은 연을 맺은 대통령은 없었다. 기사에서 현 대통령 이름과 ‘과학’의 상관계수(1에 가까울수록 연관성이 높다)는 0.63이나 된다. 미국과 북한(0.59), 기후변화와 탄소중립(0.68)만큼이나 끈끈한 관계다. 과학방역부터 과학적 환경·에너지정책 등을 꾸준히 강조한 결과다. 그 정점에 후쿠시마 오염수가 있다. 방류가 얼마나 과학적이면 정부 고위관계자들이 매일 브리핑하고, 전문가들은 ‘마셔도 된다’고 호응하겠는가.

이 지점에서 깁슨의 법칙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이편에도, 저편에도 동등하고 반대되는 박사가 있다면 과학은 과연 중립적인가.

학술지 ‘네이처’는 2020년 ‘과학에 충실하라: 과학이 정치가 될 때’라는 3회짜리 팟캐스트 기획을 선보였다. 제목만 보면 과학이 정치와 얽히는 걸 터부시하는 것 같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오늘날 과학은 연구비 지원부터 주제와 우선순위 선정,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을 설정하는 방식까지 전방위로 ‘가치’의 영향을 받는다. 그 가치란 개인의 신념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통념일 때도, 무엇보다 돈과 권력의 원천인 정권의 이념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를 믿고 싶지 않은 미국의 한 의원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모든 연구비 조사에 나서자 ‘지구화학 순환’, ‘생물지화학 순환’이라는 단어로 일종의 위장막을 쳤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나온다. 과학은 진공 상태에 놓인 게 아니며 옳든 그르든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게 네이처의 결론이다.

최고 권위 학술지가 과학의 순수성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이유가 뭐냐고 시리즈 기획자 닉 하우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더니 이런 답이 왔다.

“솔직해지자. 과학계가 속세를 떠난 수도승처럼 남길 바라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이상향일 뿐이다. 과학이 어떻게 사회와 얽히는지 직시해야 객관적인 눈을 얻을 수 있다.”

과학과 정치를 별개로 보게 되면 내가 좋아하는 건 과학이라 부르고, 싫어하는 건 정치적이라고 폄하하게 된다는 의미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논란이 ‘과학 아니면 괴담’으로 굳어진 것 역시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이미지만 차용한 결과가 아닐까. 하지만 정치인의 결정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그들이 고른 과학도 정치의 중력권을 벗어나기 어렵다.

아…. 순수함의 보루라 믿었던 과학이 혼탁한 세상과 손을 잡고 있었다니! 하고 실망하긴 이르다. 과학이 가치와 얽혀있다고 해서 객관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과학철학자 케빈 엘리엇은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에서 과학과 가치를 직조할 때 객관성을 지킬 수 있는 세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투명성, 대표성 그리고 참여다. 연구에 동원하는 데이터와 가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여러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며 사회·윤리적으로 보다 우선적인 가치를 포함하라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투명성과 대표성, 참여를 보장하는 과학적 판단을 마지막까지 기대해 본다. 전문가는 저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이편에도 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