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학 칼럼] 이지송 사장이 그리워지는 LH 사태 해법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9월 어느날 오후 .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지하 1층. 국회의원만 들어갈 수 있는 목욕탕 입구에서 한 70대 남성이 한 의원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의원님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의원이 난처한 듯 "그럼 나중에 생각해 봅시다"라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70대 남성은 문틈에 대고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십시오"라고 애걸했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 문 앞에서 허리를 90도 숙이는 '폴더 인사'까지 했다.
한 달 넘게 국회로 출근하다시피한 그는 올봄 작고한 LH(토지주택공사) 이지송(당시 70세) 초대 사장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이 곤두박질치며 LH는 부채과다로 시달렸다. 경기도의 파주 운정, 양주 옥정 신도시처럼 전국에 벌여놓은 지역개발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해당 지역주민들과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런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목욕탕 앞에서 읍소한 것이었다, 118조원의 LH 채무를 재조정하기 위해서도 의원들의 입법 협조가 절실했다.
당시 이지송 사장은 "선거가 걸려 있는 지역구 의원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를 한다"면서도 "지역구가 아니라 나라를 생각해 달라고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에선 "저렇게 몸 던지는 사람 몇 명만 더 있어도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송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중동시장 진출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할 때 현장에서 뛰었던 불도저 같은 인물이다. 몸을 던지는 그의 추진력은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구조개혁의 상징으로 출범시켰던 LH(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의 재무구조개혁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하루 이자 100억원, 부채 100조원 넘는 부실 공기업의 대명사'였던 LH의 순익구조를 취임 2년만인 2011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접대골프금지 같은 윤리강령도 엄격하게 실행했다.
이지송 사장의 개혁을 떠올리는 건 최근 LH의 철근 누락 사태가 오버랩돼서다. 좌파가 집권한 노무현, 김대중, 문재인 정권 때 LH(예전 주택공사)는 임대주택을 무리하게 늘리느라고 적자를 키웠다. 시공비보다 싸게 임대료를 받다보니 적자가 쌓이는 구조다. LH가 공공임대주택 한 채를 지어 임대하면 1억2000만원의 적자를 본다. 좌파 부동산정책을 이끌며 국토부 장관까지 영전했던 변창흠 LH 사장(임기 2019년 4월~2020년 12월)은 재임기간 중 LH 출범 이후 가장 많은 31만3000호의 임대주택을 공급했다고 자랑했다. 그만큼 빚은 늘어났다. 올해 170조를 넘길 LH의 부채는 원가보다 싼 전기료를 받는 한국전력의 순익구조와 똑같다. 좌파정권은 생색내기용 정책을 펼치며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건설 사업장이 많다보면 여기저기 구린내가 나기 마련이다. 문재인 정권말인 2021년 3월 LH 임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지역에서 개발정보를 알고 100억원대 땅을 투기매입했다는 사실이 탄로났다.
이런 문제가 터지면 역대 정부는 제도를 손질할 생각부터 한다. 2년전 LH 직원의 땅 투기 사건이 터졌을 때 LH는 전관예우 관행을 막기 위해 취업제한 대상을 임원급 7명에서 부장급 500여명으로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런데도 철근 누락 아파트(일명 순살 아파트)가 나왔다. 설계·시공·감리업체로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얽힌 '전관예우 카르텔'은 여전했다.
시스템이 아니라 운용이 문제여서다. 도둑을 극형시키는 형법을 만든다고 도둑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운용의 핵심은 리더와 리더십이다. LH처럼 방대한 공기업엔 전문가를 사장으로 임명해도 문제가 터진다. 비전문가를 공기업 수장에 논공행상식으로 앉히면 개혁은 거리가 멀어진다. 윤 정부도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되풀이한다.
현장을 누비며 개혁을 이끈 이지송 사장은 은행관리이던 현대건설 사장 때 130억원 스톡옵션을 포기했다. LH 사장 퇴직금 5700만원도 회사에 기부했다. LH 철근 누락 사태의 전말을 보면서 고 이지송 사장을 떠올린다.
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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