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포커스] "차용했지만 저작권 침해아냐" 표절기준 없는 게임업계 `소송전쟁`
웹젠 '리니지M' 아이콘 등 모방
1심 'R2M' 게임 복제·배포금지
유사게임들 구성요소 수정할듯
침해여부 판단기준 필요성 대두
국내 게임업계 곳곳에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 침해 등을 두고 게임사 간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다.
각 게임사는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에서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 기업에 저작권은 총성 없는 전쟁 속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핵심 무기다. 이는 게임업계에서 저작권 소송전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늘어나는 게임 저작권 분쟁 속에 지난 18일 1심이지만 또 하나의 선례로 남을 판결이 나왔다. 2년 넘게 이어져 온 엔씨소프트와 웹젠 간 소송 결과다.
게임은 산업 특성상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콘텐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렇다 보니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 사례가 드물고 소송도 장기화한다. 엔씨소프트 역시 웹젠과 재판에서 승소했지만 저작권 침해는 인정받지 못했다. 콘텐츠 전반에서 저작권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게임 분야도 표절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씨소프트, 웹젠 상대 'R2M' 분쟁 1심서 승소…법원 "저작권 침해는 아냐"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61부는 지난 18일 엔씨소프트가 웹젠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웹젠의 'R2M'이 엔씨소프트 '리니지M'을 모방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웹젠은 엔씨소프트에 10억원을 지급해야 하며 'R2M' 이름으로 제공하고 있는 게임과 광고의 복제·배포·전송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2021년 웹젠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부정경쟁행위에 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웹젠의 'R2M'이 엔씨소프트 '리니지M'을 표절했다는 이유에서다.
엔씨소프트는 웹젠의 'R2M'이 '리니지M'의 구성 요소와 구성 요소 간의 밸런스, UI(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표절했다며 "두 게임을 보면 버전만 다른 동일한 게임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반면 웹젠은 "모바일 MMORPG(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는 UI 형태가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고 게임의 규칙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다"고 맞섰다.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엔씨소프트의 저작권 침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게임 전체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게임과 전체적 분위기에 있어서 매우 유사한 느낌이 있다고는 보이나 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 아이디어와 이를 게임화하는 데 있어 공통적·전형적으로 수반되는 표현 형식을 차용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웹젠이 'R2M' 개발 과정에서 '리니지M'의 종합적인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해 모방했고 엔씨소프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아울러 이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니지M'이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은 아니지만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인 만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R2M'은 '리니지M'만의 특징적 요소와 아이콘 구현 방식까지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등 시스템의 모방 정도가 강하다"며 "이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게임업계에서 굳이 힘들여 새로운 게임 규칙의 조합 등을 고안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엔씨소프트와 웹젠이 모두 항소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이번 소송의 최종 결론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엔씨소프트의 경우 1심의 청구 금액이 일부 청구 상태로, 항소심을 통해 청구 금액 범위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웹젠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장을 제출했다. 웹젠은 "엔씨소프트가 제기한 2건의 청구 중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청구만을 인용한 것으로, 제1심 재판의 주된 쟁점이었던 저작권 침해 주장은 기각됐다"며 "그럼에도 1심 법원은 부정경쟁행위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했는데 이에 즉각 항소해 다툴 예정"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게임저작권 침해 분쟁, 어제오늘 일 아냐…"건전한 제작 노력해야"
게임을 둘러싼 저작권 침해 논란은 수십 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 국내 기업 간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과의 분쟁도 수시로 벌어졌다. 최근에도 게임업계에서는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엔씨소프트는 웹젠 외에도 지난 4월 카카오게임즈와 개발 자회사인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부정경쟁행위에 관한 민사소송을 냈다.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고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한 '아키에이지 워'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M'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게 골자다. 넥슨은 아이언메이스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다크앤다커'가 자사 미공개 프로젝트 'P3'를 유출해 개발했다며 형사 고소하는 한편 영업 비밀·저작권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넷마블은 마상소프트와 '세븐나이츠'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놓고 다투고 있다.
그러나 잇단 소송에도 참고할 만한 선례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엔씨소프트와 웹젠 간 소송 판결이 향후 있을 저작권 침해 소송을 비롯해 게임업계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엑스엘게임즈 간 소송에서 유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넥슨과 아이언메이스 간 '다크앤다커' 분쟁 또한 이번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철우 게임·엔터테인먼트 분야 전문 변호사는 디지털타임스와의 통화에서 "'다크앤다커'도 미공개 프로젝트 'P3'의 에셋이나 개별 구성 요소들이 부정경쟁방지법상 보호 대상에 해당하는가가 핵심 쟁점"이라며 "이번에 법원이 ('리니지M'을) 부정경쟁방지법상 보호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부분은 '다크앤다크'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에 출시돼 있는 '리니지 라이크(유사)' 게임들의 변화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게임 시장에서는 MMORPG가 주류 장르로 자리 잡으며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BM(수익모델)과 시스템 등을 따라한 소위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이 범람하고 있다. '리니지M'이 저작권을 100% 인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유사성을 놓고 경제적 이익을 침해당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진 만큼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게임의 각 구성 요소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소송을 떠나 저작권 침해 논란이 업계의 성장과 발전에 저해가 되는 요소인 만큼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가운데 게임업계에서는 저작권 침해 여부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사, 이용자,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임업계 내에서 저작권 인식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필요성도 크다. 이재홍 숭실대 교수(한국게임정책학회장)는 "저작권 침해를 둘러싼 논란과 소송은 국가적인 손실이기도 하다"면서 "그동안 장르적 유사성 아래 비슷한 형태의 게임들이 많이 개발돼 온 것은 사실로, 저작물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인 만큼 침해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건전한 게임 제작 풍토 조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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